포문을 연 건 현대‧기아차다. 최근 카드사 5곳에 대해 가맹 계약해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카드 수수료를 두고 대형 가맹점이 계약해지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해지 대상 카드사는 업계 상위권인 신한‧KB국민‧삼성‧롯데‧하나카드 등이다. 현대차에선 오는 10일부터, 기아차에선 11일부터 앞서의 5개 카드로는 차를 살 수 없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카드사들의 수수료율 인상에 반대하면서 카드사 5곳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카드사들은 이달부터 연매출 500억 원이 넘는 대형 가맹점에 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두 차례 이의제기 공문을 발송했지만, 명확한 답변은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계약 해지 상황만큼은 피하기 위해 카드사들에게 수수료율에 대한 근거자료 제시를 수차례 요청했다”며 “그러나 카드사들은 수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 답변으로만 일관하면서 일방적으로 수수료 인상을 강행했다. 기존 수수료율을 유지한 상태에서 수수료율을 협의하자는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현대차의 카드 수수료율은 1.8%. 카드사의 요구대로 수수료율을 0.12~0.14%포인트 올리면 추가 부담액은 연간 270억~315억 원으로 늘어난다. 현대차 측은 “영업이익률을 비교해도 카드업계 1위 이익률이 자동차 업계 1위보다 높다. 신한카드의 지난해 총자산이익률(ROA)는 1.88%다. 현대차는 자동차부문의 영업이익률은 1.4%였다”며 “수수료 원가의 토대가 되는 조달금리도 최근 하락세라는 점도 카드 수수료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계약이 해지된 카드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카드업계에서 현대차는 ‘슈퍼갑’으로 통한다. 2017년 기준 현대·기아차의 국내 매출은 약 30조 원. 이 가운데 70%에 가까운 약 20조 원이 카드 사용액이다. 카드사 입장에선 수익성 악화는 물론 업계 점유율까지 흔들릴 수 있을만한 규모다.
현대차는 계약 해지 후라도 카드사와 수수료율을 협상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문제는 다른 대형 가맹점들도 줄줄이 가맹 계약해지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현대차를 제외한 자동차 업체들도 카드사-현대차 협상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카드사 마케팅이 자동차 매출에 기여한다는 논리에 회의적인 시각이다.
여기에 이동통신 3사와 유통업계, 항공사들까지 카드사 수수료 인상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은 카드수수료를 인상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낮춰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드로 통신비를 결제하는 비중도 적고, 이용자들의 통신비 연체율도 낮다는 게 통신사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현대차의 ‘조달금리 하락’ 주장에 대해 통신사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밖에 롯데마트, 이마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도 ‘수수료 인상 수용 불가’ 입장이다.
카드사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영세‧중소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를 낮추는 내용의 ‘카드수수료 개편안’이 지난 1월부터 시행되면서 줄어든 수입은 대략 5800억 원.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를 최대 0.3%포인트 인상하면 연간 5000억 원의 수입이 늘어난다는 계산이지만 현대차 계약해지 사태를 기점으로 실현이 불투명한 방안이 됐다.
정부가 추진한 카드 수수료 개편안 탓이라며 고개를 돌려보지만, 정부는 오히려 대형 가맹점 수수료 정상화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카드사에게 물러서지 말라고 등을 떠미는 모양새인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카드사-대형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은 민간 업체 간의 계약이라 금융당국이 나설 순 없다”면서도 “오는 2분기 중 카드수수료 산정 현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대형 가맹점이 부당하게 수수료를 낮췄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들끼리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발목을 잡는다. 현대‧기아차는 앞서의 카드사 5곳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했지만, BC·NH농협·현대·씨티카드와는 기존 수수료율 유지한 채 수수료율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저마다 사정이 다른 만큼 카드사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다. 일부 카드사들이 대형 가맹점 입장을 수용하면 결국 다른 카드사들도 줄줄이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드사들은 각각 이달 말까지 수수료 인상에 반대하는 대형 가맹점과 협의할 방침이다. 그러나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들의 주장이 맞서는데다, 정부나 정치권에서 중재하는데도 한계가 있는 만큼 카드 수수료 협상은 난항을 겪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