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 자금과 관련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동부그룹에 특혜지원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파문이 예상된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최근 동부전자에 총 5천1백억원의 자금을 제공하는 신디케이트론의 주간은행인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참여연대의 청구내용은 동부전자가 3천5백억원의 외자유치를 해야 총 5천1백억원의 신디케이트론을 해준다는 당초 계약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산업은행이 대출조건 충족시한을 연장시켜준 행위가 주간은행 및 주채권 은행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인가 하는 여부.
또 산업은행이 동부그룹이 계열사인 아남반도체를 동원해 동부전자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부분이 ‘계열사간 순환출자’라는 편법임에도 산업은행이 이를 실질적인 외부자금 유입으로 인정한 것이 적정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먼저 동부전자의 외자유치 무산 건.
반도체사업에 새로 진출한 동부그룹은 투자재원 마련에 고심하다가 금융권의 신디케이트론 지원을 성사시키면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동부전자는 2001년 11월 11개 금융기관으로 신디케이트론 지원단(대주단)을 구성, 총 5천1백억원의 자금지원 계약을 맺었다.
2천6백억원은 계약 체결 직후 인출했고 나머지 2천5백억원은 2002년 3월 말까지 외자 3천5백억원을 유치하면 대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동부는 외자유치에 실패했다. 그러자 동부전자는 대주단을 상대로 재협상을 벌였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재협상은 그해 6월 조건을 바꿔 대주단이 동부전자에 7백억원을 추가로 대출해준 것. 대신 대주단은 동부전자에 2002년 12월 말까지 5백억원을 증자하도록 요구했다. 문제는 이 증자요구를 아남반도체가 동부전자에 6백억원을 출자해 충족시켰다는 점. 아남반도체는 지난해 여름 동부화재, 동부생명, 동부건설 등이 인수해 동부 계열사가 된 상태다.
참여연대는 이 6백억원이 지난해 7월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이 아남반도체에 출자했던 돈으로, 고스란히 동부전자에 재출자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계열사들이 아남반도체를 인수하기 위해 출자했던 돈이 다시 동부전자 지원을 위해 투입되는, 계열사간 순환출자로서 동부전자가 유상증자를 통해 신규 외부자금을 조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이 이를 동부전자의 잔여대출금 인출(7백억원)을 위한 국내 유상증자로 인정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데 이는 특혜라는 것이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쪽에선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남반도체의 증자 참여액은 아남의 현금흐름상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돈이라는 것. 또 아남이 동부에 투자한 것은 비메모리반도체 조립생산의 차세대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아남반도체가 ‘생존 차원에서 동부전자에 투자한 것’이라 하등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것.
동부전자는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해 투자재원을 마련하는 처지라 동부가 인수한 아남반도체와의 시너지 효과 차원에서라도 아남반도체의 동부 출자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 동부쪽의 해명이다. 또 신디케이트론의 계약조건 변경에 대해서도 동부쪽에선 “동부전자의 지분을 헐값에 넘길 수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신디케이트론이라는 것 자체가 금융기관이 투자수익성을 보고 독자적으로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수익성에 대한 판단이 우선이지 여신 회수 가능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동부에선 외자유치 실패도 9•11테러 직후 미국 등 해외자본이 극도로 위축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에 조심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동부전자처럼 비메모리 반도체칩 위탁생산을 하는 대만의 반도체업체가 9•11테러 이전 외국 투자기관의 투자를 받으면서 프리미엄을 받고 지분 투자를 받아줬지만 동부는 투자 타이밍이 나빠 프리미엄 인정을 못받았다는 것. 동부에선 프리미엄도 인정받지 못하는 외자 유치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외자 유치 포기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또 반도체 경기가 나빠 충북 음성의 동부전자 제3공장의 설비 확대규모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대규모의 외자유치 필요성을 무의미하게 했다는 것. 이들은 추가 2천5백억원의 대출 조건으로 3천5백억원의 외자유치 전제 조건을 풀어주고 추가 대출해주면 음성 제3공장의 설비를 애초 5천 장에서 2만 장 규모로 확대하는 대신 1만 장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1만 장 규모로 확대하고 나면 외자유치 협상이 훨씬 유리해진다는 논리를 편 것. 하지만 동부의 이런 해명에도 동부전자와 신디케이트론의 주간은행인 산업은행이 애초 대출계약을 변경하는 과정에 대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동부쪽에선 계약조건을 두 번이나 바꾼 셈이고 채권단이 끌려간 입장으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채권단에 포함됐던 국민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쪽에서 계약조건 변경에 부정적이었던 점에서도 그렇다.
때문에 참여연대쪽에선 산업은행의 이런 대출계약조건 불이행에 대한 부실한 대처 및 순환출자가 국책은행으로서 적정한 업무집행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신디케이트론 계약이 맺어진 직후 산업은행이 동부그룹의 주채권은행이 된 경위 및 그 이후 과도한 편중대출이 이뤄진 과정에 대해서도 동부와 산업은행간의 특혜의혹이 없는지 감사원에서 밝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8월16일 산업은행이 동부전자의 추가대출금 인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후속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이유와 기존의 대출금 인출조건을 대폭 경감시켜주려 한다는 의혹에 대해 공개질의 했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기존의 대출금 인출조건에서 유상증자 5백억원을 추가함으로써 결국 대출금 인출 조건을 더 강화하는 등 어떤 특혜성 조건변경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하지만 이후 아남반도체의 출자금을 외부자금의 유치 및 신디케이트론이 대출조건 충족요건으로 볼 수 있느냐는 참여연대의 공개질문에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