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 LG 구본무 회장, SK 최태원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 ||
노 당선자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부터 국내 재벌그룹들에 대해 ‘안티’ 성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각 그룹사들은 향후에 전개될 재벌개혁방안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여오던 터였다.
이런 와중에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재벌에 대한 개혁 방향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 중 일부 정책들은 현재 각 그룹이 직면한 문제와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어 그룹 총수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인수위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얘기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재벌개혁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 상속증여에 대한 포괄주의 도입 여부와 금융계열사 분리, 구조조정본부 철폐 등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포괄주의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는 재계 4인방의 희비가 역력하다.
삼성과 현대차는 아직까지 3세에 대한 경영승계가 확실히 이뤄지지 않아 울상을 짓고 있다. 반면 LG그룹은 지주회사로 그룹경영구조의 변신을 꾀하고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먼저 요즘 삼성그룹의 분위기는 암울 그 자체다. 인수위가 내놓고 있는 포괄주의 도입, 금융계열사 분리, 구조본 정책 등이 삼성그룹 손보기가 아니냐는 얘기마저 돌 정도다.
이같은 얘기가 나오자 인수위 측은 서둘러 “우리는 특정 기업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반박했지만, 인수위측이 내놓은 정책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삼성의 현재 시스템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삼성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고 있는 부분은 상속, 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 도입여부.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상무보에 대한 지분 정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황이다.
이 상무보는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주식 6백27만3천90주를 보유(25.1%)한 대주주이며, 삼성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지분도 96만1천5백73주(0.62%)를 갖고 있다. 경영권 확보 측면에서 안정적이라는 점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마음이 한결 가벼울 것이라는 것이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측이 상속, 증여세의 포괄주의를 도입할 경우, 이 상무보의 증여 케이스가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삼성그룹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이 규정이 적용될 경우, 이 상무보가 추가로 수백억원대의 증여세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안에 대해 결정권을 갖고 있는 재경부 산하 국세심판원이 “이재용 상무보에 대한 증여세 부과결정은 옳다”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알려짐에 따라 삼성측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세심판원으로부터 정식으로 통보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결정이 내려진 것이 사실이라면 미리 얘기를 흘린 것은 조심스럽지 못한 처사”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게다가 인수위가 검토중인 금융계열사 분리 역시 삼성그룹의 자금 창구였던 삼성생명의 계열분리를 뜻하는 데다가, 구조조정본부의 철폐 역시 삼성그룹을 겨냥하고 있어 이래저래 난감한 표정이다.
▲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 ||
이는 노 당선자가 재벌 그룹에 대해 안티성향이 강하다고는 하나, 인수위에서 거론되는 얘기를 종합하자면 LG그룹과 직접 관계가 있는 내용을 찾기는 어려워 상대적으로 느긋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재벌들에게 가장 예민한 문제인 포괄주의와 관련해서도 LG그룹은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LG는 국내 재벌그룹 중에서는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의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는 3월 1일자로 전자를 중심으로 묶은 LGEI와 화학을 중심으로 묶은 LGCI의 합병 법인인 LG그룹의 통합지주회사 ‘(주)LG’가 출범할 예정이다.
(주)LG의 주주구성은 아직까지 정확히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구본무 회장과 허씨 일가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LG관계자의 설명이다. 인수위측이 검토중인 포괄주의나 금융계열사 분리 등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 더욱이 노 당선자의 아들인 건호씨가 LG전자에 근무하고 있어 한결 마음이 가볍지 않겠냐는 말도 항간에 떠돌고 있다.
인수위의 잇따른 재벌개혁 방안에 현대차는 무표정한 모습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우리는 비서실 역할을 하는 구조본부도 없고, 그룹을 이끄는 금융계열사도 없다”며 애써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또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혼란에 빠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초 임원인사에서 정의선 전무를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시키며 3세 시대를 앞당겼다. 정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는 했지만, 정 부사장은 현대자동차 주식 6천7백43만주(0.23%)밖에 보유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어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는 실질적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의 주식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더욱이 지난해 6월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본텍(옛 기아전자)의 합병을 통해 정 부사장이 2%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기회가 있었으나, 합병을 포기한 적이 있어 정 부사장의 경영권 확보를 두고 고민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SK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SK그룹 관계자는 “지난 98년 최태원 회장에게 상속이 끝난 상황이라 포괄주의가 도입돼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SK그룹은 지난 98년 7백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고 최 회장이 상속을 받은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JP모건과의 이중계약’ 파문이 재벌그룹의 부도덕성으로 비쳐짐에 따라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특히 SK는 이번 JP모건 파문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고발로 다시 불거졌다는 점에서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지난 2000년 참여연대가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C&C 지분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지분의 30%를 (주)SK에 무상증여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백기를 든 적이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이 문제가 계속 확산될 경우 SK로서는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아, 신정권 출범 목전부터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이번 일은 최태원 회장의 입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SK의 표정은 여간 침울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