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는 1조7천억원에 이르는 부채가 화근이 돼 화의에 들어간 지 5년 만에 결국 증시에서조차 퇴출되기에 이르렀다. (주)진로가 상장폐지되는 것은 2003년 1월10일. 1973년 6월27일 처음 증시에 상장됐던 이 회사는 29년6개월 만에 증권사 객장에서 간판을 내리게 됐다.
증권거래소는 지난해 12월10일 진로가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을 폐지키로 했다고 공식 밝혔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지난해 12월16일부터 2003년 1월9일까지15일 동안의 매매일을 거친 뒤 1월10일 퇴출했다. (주)진로의 상장폐지는 증권거래법상 3년 이상 외부감사인의 의견거절 결정이 나올 경우 시장에서 퇴출한다는 조항에 따른 것.
이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주류업체인 진로는 영욕의 반세기 기업역사에서 또 한 차례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특히 이번 증시퇴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1조7천억원의 막대한 부채더미에 깔린 진로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재계와 일반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주)진로는 지난해 주세 등 세금을 공제하기 전 기준으로 매출 5천9백4억원을 올려 9백59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장사는 그런대로 잘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막대한 부채에서 비롯된 3천4백32억원의 영업외 비용이 발생하면서 오히려 거꾸로 1천9백38억원의 영업손실과 1천6백2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가장 문제가 된 부채규모는 유동부채 6천8백42억원을 포함해 모두 1조8천19억원을 기록, 전년도인 2001년의 1조7천7백56억원보다 3백억원 가까이 늘어났다. 줄어도 시원찮을 빚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진로는 외자유치라는 특단조치에 매달려왔다. 오너인 장진호 전 회장이 앞장서 이를 추진하고는 있지만, 가시적 성과는 지금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로 그냥 방치할 경우 진로그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더미로 인해 더 큰 우환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상장폐지까지 된 마당에 진로에 대한 특단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로그룹의 오너측은 자신의 몫만 챙기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진로의 침몰을 책임져야 할 장진호 전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여전히 대주주로 남아 있으며, 당초 약속한 외자유치를 통한 기업회생 등은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장진호 전 회장 일가족이 보유한 (주)진로의 지분은 2002년 9월30일 현재 장진호 전 회장이 8.14%, 장 전 회장의 동생 장준용씨가 1.73%, 장학형씨(장진호 전 회장의 삼촌)가 0.23%를 보유하고 있는 등 오너 일가족이 10% 가까이 보유중이다. 더욱이 장 전 회장은 비록 대표이사권은 없지만, (주)진로의 상근회장(회사측은 부인하지만)으로 등재돼 있을 뿐 아니라 지난해 12월 개최된 제50기 정기주주총회에서 3년 임기의 등기이사로 재선임되는 등 여전히 진로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특히 증권거래소가 이 회사의 상장폐지를 확정함에 따라 이 회사에 투자한 많은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 상황에서도 오너 경영인은 제몫만 챙긴 부분에 대해 상당수 투자자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게다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 것으로 알려졌던 장 전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재선임된 부분은 어딘지 석연찮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원래 이사로 돼 있던 대주주를 임기가 만료돼 재선임한 것으로 어떤 특별한 의미는 없다”면서 “장 회장이 직접 경영에 관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장 전 회장은 외자유치 등으로 경영을 정상화시키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회사가 정상화된 후 그가 경영에 복귀할지 여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재계와 주류업계는 무리한 확장 경영과 옛 진로그룹 부실화의 책임론에 밀려 공식적으로 ‘경영일선 퇴진’ 입장을 취해온 장 전 회장이 이사직을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비슷한 입장이던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의 경우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완전히 떠난 부분과는 형평성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여전히 개인 최대주주인 장 전 회장이 오너십을 그대로 유지한 채 등기이사로 돼 있을 경우 회사매각이나 경영문제에도 간섭이 불가피해 경영정상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