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련은 재벌총수들이 회장 자리를 고사할 만큼 위상이 현저히 흔들리고 있다. 사진은 2000년 정기총회 장면 | ||
DJ 정부 이전까지 기득권층의 대표적인 권익 대리인 역할을 했던 재계단체의 몰락은 시민단체들이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성장한 것과 비교할 때 너무나 명암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경제단체 중 가장 고립무원에 처한 곳은 전경련. 80년대까지만 해도 ‘재계의 본산’으로 불리며 막강 영향력을 행사해오던 전경련은 DJ 정부 초기 위기를 맞았으나, 재벌 구조조정의 주체로 자리잡으며 나름대로 입지를 유지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경련은 재벌의 이익단체라는 딱지를 떼내지 못한 채 왕따당하는 듯한 인상이다. 물론 전경련의 왕따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다음달 초 새 회장 선출을 앞두고 삼성 이건희 회장, LG 구본무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등 주요 그룹 회장들이 ‘고사’하면서 위기감이 팽배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두산중공업 노사문제와 관련해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에 대한 연임 불가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 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경우 지난해 산업계 최대 이슈인 주5일제 근무를 두고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무용론에 직면해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한국무역협회는 자금지원 기능 부족, 문어발 출자 등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데다, 회장직을 두고 갖가지 루머가 나돌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권 차원에서 시민단체를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부상시킨 반면, 재계단체는 소외되고 있는 현상이 경제단체의 위상을 쪼그라들게 만들고 있다”고 푸념했다.
경제단체간 업무중복도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전경련과 대한상의가 대표적인 사례. 65개 업종별 단체와 3백80여개 회원사를 두고 있는 전경련은 회원사들 대부분이 유사한 기능의 대한상의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또다른 수출진흥기관인 KOTRA 기능과 중첩돼 있다.
이로 인해 전경련 등 경제단체 내부에서는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전경련 사무국이 업무량에 비해 덩치가 지나치게 크다며 구조조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사무국 직원이 1백40여명인데 반해 임원은 자그마치 14명이나 된다. 7만여개 회원사와 63개 지방상의를 두고 있는 대한상의는 올해 지방상의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단체간 알력과 불화도 내부적으로 재계의 역동성과 건전성을 좀먹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단체에 관료주의적 폐해가 있다는 경고도 있다.
반면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 시민단체 대표가 다수 참여한 데 반해 재계단체 인사는 단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한 것도 이같은 실례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출범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주장해온 집중투표제나 소액주주운동 등을 상당 부분 수용할 뜻을 비쳐 향후 시민단체가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잡을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시민단체의 이같은 비대화가 자칫 새로운 보수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시민운동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권력집단으로 변질될 경우 부작용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에 밀린 재계의 반격도 만만치는 않다. 재계 일각에서는 “경제단체들간의 통폐합을 통해 ‘진정 대표성 있는’ 단체를 새롭게 출범시켜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