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이 사건은 1백조원의 천문학적인 부채와 4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초대형 경제사건이기에 더욱 의혹을 남기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의 핵심이던 김 전 회장은, 1999년 말 베트남 자동차공장 순방을 이유로 한국을 떠난 지 만 3년 동안 해외에 체류하며 귀국하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대우침몰은 수많은 의혹 속에서 각종 억측만 남겨 왔다.
그러나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김 전 회장은 최근 잇따라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대우 침몰에 얽힌 비화를 공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권 말기를 맞아 김 전 회장이 ‘기획폭로’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최근 문화일보에 실린 도올 김용옥 기자와의 인터뷰,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과의 인터뷰 등이 그것이다.
그는 현재 국내 3~4개 언론과도 인터뷰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정•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김 전 회장이 반격의 카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3년 동안 침묵하고 있던 그가 대우침몰에 얽힌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침묵을 깨고 입을 열기 시작한 김우중 전 회장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걸까. 또 그는 왜 DJ 정권 말기에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일까. 그가 풀어놓을 비밀의 보따리엔 무엇이 담겨 있을까.
김 전 회장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 최신호(2003년 2월3일자)에 게재된 단독 인터뷰에서 ‘나는 DJ의 권유에 따라 해외로 나갔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청와대는 즉각 “일고의 가치도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실패한 재벌총수’의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폄하하는 견해도 많다. 그러나 김 전 회장 발언의 파장은 엄청나다.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정부의 도덕성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 DJ 정부의 경우 초기에 재벌개혁을 강력히 추진했고, 부실기업주에 대해 가혹하게 처리했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충격을 준 대우그룹 침몰의 책임자인 김 전 회장에 대해서는 최고통치권자가 해외 출국을 권유했다면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 지난 99년 7월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던 대우문제와 관련해 당사자인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이 침울한 표정으로 기자 회견을 갖고 있다. | ||
그런데도 김 전 회장이 그동안 DJ의 경제정책 측근인사들을 거론하다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DJ를 물고들어간 부분은 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감지하게 하는 부분이라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의 측근들도 매우 당황스런 표정이다. 정•재계 인사들은 이 부분에 대해 몇가지 해석을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포천>지에 보도된 것처럼 김 전 회장은 현정부 고위층으로부터 뭔가를 보장받고 해외로 나갔으나 나중에 상황이 점차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울어져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 역공을 취한 것이라는 추측이다.
사실 김 전 회장은 지난 99년 베트남으로 출국한 이후 재기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정부는 그 이후 대우에 대한 처리방향을 부도로 몰고갔고, 공중분해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이 부분에 대해 김 전 회장은 당초의 약속과 달라지고 있음을 감지, 강력히 반발했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의 반발에 대해 현정부는 경제사범으로 규정지은 뒤, 국제수배를 내리는 등 압박했다. 김 전 회장은 이런 상황에 처하자 장기 해외체류를 결심한 뒤 프랑스, 독일 등지를 전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이 현정부에 배신감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당초 약속한 경영복귀 부분을 지키지 않은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김 전 회장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자동차 경영권을 돌려주기로 했다”고 주장해 일부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나 정부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때문에 과연 김 전 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영복귀에 대한 약속을 실제로 했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단정지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김 전 회장의 측근은 “당시 DJ측은 김 전 회장에게 대우차뿐만 아니라, 무역, 건설, 중공업, 조선 등의 경영복귀도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강력 부인했다.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입을 열기 시작한 김 전 회장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 전 회장을 잘 아는 인사는 “그의 성격상 비밀을 간직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라며 비화들이 줄줄이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 인사도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공세에 나선 배경과 관련해 정•재계 인사들은 ‘경영복귀’보다는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우가 부도처리된 이후 대우자동차를 비롯해 대다수 계열사들이 매각되거나 정리돼 사실상 그의 경영복귀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를 김 전 회장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 전 회장은 올해 66세라는 고령과 주변여건을 충분히 인식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관측이다.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대우 침몰의 부당성을 부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분석인 것이다.
정•재계 일각에서는 ‘대우그룹 침몰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백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부채와 4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 침몰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