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FX사업이 논란의 중심에 선다. 단독 후보에 오른 전투기가 단 하루 만에 전면 취소되더니, 기준 미달인데다 도입을 결정하면 막대한 손해까지 예상되는 다른 경쟁 전투기가 일사천리로 최종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말이 바로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였다.
이 사업은 현재까지 한국 무기도입 사업 가운데 한 순간에 결정이 뒤집힌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여기에 더 비싼 가격에 다른 전투기를 사오면서도, 일부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당해 특혜, 굴욕 협상 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불거진 ‘최순실 연루설’도 여전히 프로젝트 주변을 맴돌고 있다.
논란이 가장 뜨거웠던 2017년 4월, 감사원은 FX사업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19년 4월 25일 감사위원회에 감사 결과를 의결하고 5월 21일 외부에 공개했다. 감사원은 참고 자료를 통해 “FX사업 협상 과정에서 방위사업청이 관련 법령을 준수하지 않았으며,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협상 결과를 사실과 다르게 보고했다”며 “방사청에 관련자 문책 및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위반 내용은 ‘군사 기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감사원의 감사 대상은 2014년과 2015년 FX사업을 두고 방사청이 벌인 협상 과정이다. 김관진 전 장관의 ‘정무적 판단’ 발언은 감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FX 사업을 둘러싼 논란의 출발점은 김 전 장관의 발언으로부터 촉발 됐다는 사실은 과거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여러 차례 다뤄졌다.
최근 ‘일요신문’과 접촉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이 이 발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관계자들 중에는 김 전 장관이 ‘정무적 판단’ 발언을 했던 장소에 참석했던 인물들도 포함돼 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 하루 만에 뒤집힌 FX사업
FX사업은 해외 주요 무기업체 간의 3파전으로 전개됐다. 한국의 주력 전투기인 F-15K와 호환성에서 강점을 보인 보잉의 ‘F-15SE’와 2011년 NATO의 리비아 공습에서 97%에 가까운 타격 성공률을 보인 에어버스(구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첨단 스텔스 기술을 앞세운 록히드마틴의 ‘F-35A’ 기종이 경쟁했다.
2012년 1월 첫 사업공고 이후 후보 전투기 결정까지 1년 8개월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유찰과 재공고가 나오는가 하면, 시험평가부터 절충교역(해외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대신 핵심기술 이전 등을 받는 것), 가격조율까지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횟수를 세기 벅찰 만큼 수많은 협상이 벌어졌다.
그리고 방위사업청은 2013년 8월, FX 3차 사업 후보 기종으로 미국 보잉의 F-15SE를 선정한다. F-15SE는 여러 차례 진행된 입찰에서 방사청이 제시한 기준과 가격조건(당시 8조 3000억 원)을 경쟁 기종 가운데 유일하게 충족했기 때문이다.
한 달 뒤인 같은 해 9월 24일,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방위사업추진위원장)의 주재로 군과 민간 위원 등을 포함해 총 23명이 참석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F-15SE 차기 전투기 기종 선정안’이었다. 이 안건이 회의에서 가결되면 F-15SE를 중심으로 하는 3차 FX사업이 본격적인 거래에 돌입하게 된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온다. 방추위가 F-15SE 선정안을 부결하면서 도입을 취소하고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진행된 방위사업청의 선정 과정이 이날 회의 2시간 30분 만에 뒤집혔다.
이날 회의에서 김 전 장관은 “차세대 전투기 기종 선정은 정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줄곧 이 발언에 대해 부인했지만, 201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김 전 장관의 후임인 한민구 전 장관이 뒤늦게 “그런 표현이 있었다”고 밝혀 ‘정무적 판단’ 발언 논란이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보잉의 F-15SE. 사진=일요신문 DB
# ‘그날’ 어떤 대화 오갔나
김 전 장관의 ‘정무적 판단’ 발언 후폭풍은 거셌다. 대규모 무기 도입 프로젝트가 말 한 마디에 통째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 안팎과 국회 등에서 여러 차례 문제로 제기됐고, 각종 의혹들이 쏟아졌다. 국방부가 2015년 한민구 전 장관의 국정감사 발언에 대해 “국민적 관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최근 ‘일요신문’과 접촉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이 김 전 장관의 ‘정무적 판단’ 발언 배경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들 중에는 김 전 장관의 발언이 나온 2013년 9월 24일 방추위 회의에 참석한 군 관계자들도 포함돼 있다. 당시 참석자들을 통해 발언의 전후 사정이 구체적으로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 회의에선 ‘스텔스 기능’에 대한 지적이 주요 내용으로 올랐다. 단독 후보로 오른 F-15SE의 기능이 미흡하다는 논리였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군 관계자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오갔다. 정확한 전투기 기종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F-15SE를 부결하고 다른 전투기로 바꿔야 한다는 방향으로 회의가 진행됐다”며 “다만 당시 후보 전투기 3종 가운데 스텔스 기능을 갖춘 건 록히드마틴의 F-35A 하나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 측은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후보 전투기를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순 없다는 취지였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군 관계자는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방추위는 무기 도입에 대한 최종 의사 결정을 하는 행정기관의 한 기구인 만큼, F-15SE 선정이 회의 안건이었다면 선정 여부만 ‘O, X’로 결정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다른 대안이 돌연 거론됐고, 이 대안이 회의 안건에 대한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당시 방사청 측은 다른 전투기를 선정하더라도 F-15SE처럼 각종 평가와 협상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새 후보를 선정해야한다면 F-15SE를 부결해 원점으로 돌릴 게 아니라 보류하고, 특히 핵심 기술 이전 등과 관련해 확실한 약속을 받거나 강제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했다”며 “이 문제제기를 들은 김 전 장관이 했던 말이 바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였다. 그리고 F-15SE 선정안이 부결됐다”고 말했다.
# ‘정무적 판단’ 이후 ‘정부 대 정부’ 사업으로
이후 2013년 11월 14일, 청와대에 FX사업 재추진 방향이 보고된다. FX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했던 당시 국방부 태스크포스(TF)는 11월 20일 합동참모회의에서 △ F-35A 40대 구매 △ F-35A와 다른 기종 혼합구매 △ F-35A 60대를 30대씩 두 번에 나눠 분할 구매하는 방안 등 F-35A를 중심으로 한 3가지 안을 상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F-15SE 선정안이 부결 된지 불과 두 달 만이었다.
특히 군 당국은 이 과정에서 F-35A 도입을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FMS는 미국 정부가 우방국 등에 기술 보호가 필요한 자국 무기를 수출할 때 적용하는 방식이다. 한국과 같이 무기를 사려는 정부가 미국 방산업체와 직접 접촉하는 대신 ‘판매를 보증하는’ 미 정부로부터 제품을 사들이는 일종의 수의계약이다. FMS를 적용하는 순간부터 사업이 국가와 방산업체 간의 거래가 아니라 ‘한국 정부 대 미국 정부의 사업’이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서 경쟁을 벌였던 보잉과 에어버스는 입찰 자체에 참여를 할 수 없게 됐다.
이후 F-35A 계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군 당국은 향후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필요한 25개 기술 이전을 약속 받고서도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4개의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당했다. 절충교역의 일환이었던 군사 통신위성 제공도 지연됐다. 미국 의회가 자국 기술 보호를 이유로 거부했는데,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은 이에 따른 지체상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록히드마틴의 F-35A. 사진=일요신문 DB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군 당국의 F-35A 도입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투기 성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F-35A 선택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2013년 9월 방추위 회의에 참석했던 앞서의 군 관계자는 “당시 세계 각국의 군비 감축으로 하락세였던 세계 무기시장에서 한국이 수 조 원 단위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슈퍼 갑’으로 떠올랐다. 특히 경쟁 입찰제로 사업을 개시하면서 3개 업체가 각축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가격과 기술 이전 등을 둔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실제 보잉과 에어버스는 가격과 기술 이전 등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정무적 판단‘에 따라 F-35A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수의계약 형태로 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돈은 돈대로 주고 기술 이전은 받지 못하는 ‘슈퍼 을’로 전락했다. 당시 군과 정부는 FX 사업이 지체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FMS 방식을 추진했다고 발표했지만, F-35A 거래 전반이 ‘굴욕 외교’였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종 선정 목전에서 방추위의 부결 결정으로 주저앉은 F-15SE 제작사 보잉의 후속 대응도 눈길을 끈다. 2013년 9월 부결 당시 법적 대응을 고려한다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지난 2018년 6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보잉의 해상초계기 ‘포세이돈(P-8A)’을 사기로 했다. 사업비는 1조 8000억 원이며, FMS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 중이다.
# 감사원, 감사 결과 “공개 불가” 입장에 논란 불씨 여전
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F-35A 도입과 절충교역 협상 전반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미국 측과 벌인 협상 과정에서 방사청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기술 이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보고를 했는데, 감사원은 이 보고가 허위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술 이전은 미국 의회로부터 승인이 필요했는데, 방사청이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국 기술 보호를 이유로 승인하지 않은 만큼 문제가 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구체적인 허위보고 내용과 전후 사정은 알 수 없다.
따라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지만 F-35A와 관련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군 안팎의 의견이 갈리고 있어서다. 사업이 뿌리째 흔들렸던 근본적인 원인을 보면 방사청에만 문제를 제기하고 그칠 게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정부 대 정부’로 이뤄지는 대규모 사업은 국방 분야뿐만 아니라 외교와 대외 정치 등도 감안해야하는 만큼 감사원 역시 ‘정무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방사청과 감사원 측은 이번 감사 결과 등에 대해선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양 기관 관계자들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감사 결과와 관련 내용에는 군사 기밀이 다수 포함돼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