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나산그룹이 부도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안 전 회장은 그룹 회장 재직 당시 7백억원대의 계열사 자금을 빌려쓴 뒤 갚지 않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안 전 회장 일가 재산내역에 따르면 안 전 회장의 부인 박순희씨가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부림비엠(옛 나산패션마트)이 지난해 2월 수백억원대로 평가되는 나산그룹의 알짜 부동산을 인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안 전 회장은 부림비엠의 옛 상호인 (주)부림이 설립된 지난 1992년 11월 이 회사의 등기이사로 등재됐으며, (주)나산이 부도가 난 시점인 1998년 10월14일까지 이 회사의 등기이사로 재직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설립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회사 이름을 바꾼 점과 나산그룹이 부도난 뒤 부인과 아들이 이 회사의 등기이사로 갑자기 등장한 부분.
(주)부림은 설립된 지 4년 뒤인 1996년 (주)새들로 상호를 바꾸었고, 안 전 회장이 등기이사 명단에서 빠진 시점인 1998년 10월엔 강산케이엔에스로, 이어 한 달 뒤인 1998년 11월에는 현재의 부림비엠(주)로 세 차례에 걸쳐 상호를 변경했다.
▲ 안병균 전 나산 회장 | ||
이와 함께 2000년 3월 안 전 회장의 부인 박순희씨(52)가 이 회사의 등기이사 명단에 등장했고, 이듬해인 2001년 10월엔 아들 안필호씨(29)가 등기이사로 명부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박씨는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안 전 회장이 이 회사의 등기이사로 있을 경우 그룹 부도에 따른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가족 명의로 변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남기고 있다.
부림은 현재 납입자본금이 60억원이며, 지난 2001년 영업보고서를 보면 6백45억원의 매출을 올려 5억5천만원의 순익을 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매출대비 순익률이 1%에도 못미쳐 경영상황은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회사의 주요 사업은 세종문화회관의 세종홀과 커피숍 운영, 광명클레프 운영, 포천의 나산골프장 임차운영 등이다.
부림비엠이 주목받는 것은 지난해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광명클레프 백화점 경매에 참가, 낙찰받으면서부터. 당시 부림비엠은 이 백화점을 3백25억원에 낙찰받았다.
이에 앞서 부림비엠은 2000년 10월에는 수탁경영중이던 포천 나산골프장을 3백30억원에 낙찰받기도 했다. 이 건은 자금문제 등으로 나중에 무산됐다.
뿐만 아니다. 부림비엠은 광주 나산클레프가 건설중인 여수점 인수에도 나섰다. 여수점인수건은 막판에 나산클레프측이 계약을 취소하면서 소송전으로 치닫고 있기도 하다.
나산클레프는 “부림비엠이 나산클레프 여수점을 제 값을 안내고 가져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부림비엠측은 나산클레프를 상대로 여수점 마무리 공사에 들어간 공사비 50억원을 돌려달라며 공사비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일각에선 부림비엠이 사실상 안 전 회장의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안종표 전 나산실업 대표이사가 이 회사 사장을 역임한 부분도 그 같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부림비엠의 현재 대주주는 안 전 회장의 부인 박순희씨. 박씨가 보유한 지분은 전체의 86.67%에 이르고 있다. 사실상 박씨 개인회사인 셈이다.
의혹을 부추기는 또 다른 점은 부림비엠의 납입자본금이 단기간에 급증한 부분. 이 회사의 자본금 내역의 변동을 보면 93년 설립 무렵에 8억원이었지만 나산이 부도가 난 이후인 98년 10월14일 17억원으로 늘어났고 이어 10월30일에 26억원, 11월3일 38억원, 11월6일 50억원, 99년 1월 초 60억원으로 늘어났다.
안 전 회장은 지난 98년 8월 한 월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부도 당시 회사에 개인재산을 주면서 부도를 막아보려고 했다. 내 처도 4만3천달러를 보탰다. 내놓을 만한 것은 다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했던 안 전 회장과 부인 박씨가 부림비엠의 증자를 위해 98년 10월부터 무려 52억원을 단기간에 동원했던 부분은 의문이다.
안 전 회장의 재산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의혹은 안 전 회장의 자택. 안 전 회장의 자택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3xx-4xx번지. 대지 3백평의 2층 양옥집이다.
이 집은 지난 2000년 5월 경매로 임아무개씨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안 전 회장 부부는 여전히 이 집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부림비엠이 이 집을 담보로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에 1억9천2백만원의 돈을 빌리고 근저당을 잡았다는 점. 부림은 세종문화회관의 세종홀을 운영하고 있다. 안 전 회장은 98년 8월 인터뷰에서 개인재산으로 “주택과 개인사업할 때 마련했던 상가 등이 있다”고 공개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성북동 집이 그의 소유였던 것.
하지만 그는 부도 뒤 집이 경매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뒤에도 여전히 그 집에 살며 2001년 9월 집을 담보로 근저당까지 잡는 ‘이상한 거래’를 했다.
1998년 나산 부도 당시 차입금을 포함해 나산의 총 부채액은 8천5백억원 정도 된다. 유통부문 4백억원, 패션부문 6백억원, 건설부문 5백억원과 차입금 7천억원이 내역이다(안 전 회장의 주장).
예금보험공사(예보)는 안 전 회장이 나산종합건설에 7백56억원의 단기대여금을 빌려간 뒤 갚지 않는 등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다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예보는 안 전 회장의 재산은닉의혹에 대해 해당 재산이 조사대상이 됐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예보의 입장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는 것.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