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70년 한국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검찰 과거사 청산 기구다. 과거 검찰이 권력을 남용하고 인권을 침해한 사례를 찾아 바로잡기 위해 출범했다. 2017년 12월 첫 활동을 시작한 과거사위는 지난 5월 29일 정례회의를 끝으로 18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검찰 과거사위에 오른 사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다. 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2013년, 검찰이 석연치 않은 ‘무혐의’ 결론을 내면서 6년 동안 각종 의혹과 구설이 쏟아져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사위가 대검 진상조사단의 중간보고를 토대로 검찰에 ‘재수사 착수’ 의견을 냈고, 지난 4월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 관련 대규모 수사단을 구성하면서 이번 과거사위 최종 결론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지난 29일 오후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정부과천청사에서 정례회의를 마치고 김학의 전 차관의 별장 성범죄 의혹 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 과거사위 “김학의 사건 수사 총체적 부실” 결론
과거사위는 마지막 정례회의를 마치고 김학의 전 차관 사건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 검찰 수사는 총체적 부실수사였다는 게 이번 결론의 핵심이다. 과거사위는 결과 발표와 함께 공개한 자료를 통해 과거 검찰의 수사가 진상 규명 보다는 ‘회피’와 ‘봐주기 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과거사위는 윤중천 씨와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와 일명 ‘별장 성접대’ 사건 등 기존에 알려진 혐의 외에도 윤 씨와 어울렸던 다른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의혹을 이번 최종 결과 발표에서 처음 제기했다. 이번 과거사위 최종 결과 발표의 중심 내용인 셈이다. 현재 검찰 수사단은 이 의혹 대부분에 대해선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과거사위는 “이 사건은 검찰 관계자와 건설업자 간의 유착에 기반한 일명 ‘스폰서 문화’의 전형”이라고 설명하며 윤 씨와 가까우면서 사건에 개입하거나 지휘했다는 의혹이 있는 전직 고위 검찰 관계자들의 ‘리스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상대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차장검사 출신 박 모 변호사를 특정했다.
과거사위에 따르면 한 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윤 씨가 일명 ‘한방천하 사건’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윤 씨의 진정서를 받고 수사 주체를 변경해 줬다. 윤 전 고검장은 윤 씨가 ‘김학의 사건’으로 2014년 2차 수사를 받던 당시 담당 부서였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를 지휘하던 대검찰청 강력부장이었다. 박 전 차장검사에 대해서는 변호사 개업 이후 윤 씨가 소개한 사건의 수임료 중 일부를 리베이트로 지급해 변호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 과거사위는 왜 ‘수사권고’ 안했나
그런데 과거사위는 이번 최종 결과 발표에서 ‘수사 권고’를 하지 않았다. 대신 수사 ‘촉구’라는 모호한 단어를 썼다. 과거사위는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진 과거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 씨 사건 전반에 총체적 부실수사와 봐주기 수사가 있었다”며 “검찰 내 스폰서 문화의 실체와 그 폐해 등 진상을 파악해 이를 단절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검찰에 수사를 ‘촉구’ 하는데 그친 것이다.
단순히 단어만 바꿔 쓴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사위가 내리는 ‘권고’와 ‘촉구’ 결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수사 권고는 과거사위가 가진 가장 막강한 권한이다. 과거사위 한 외부위원은 “앞서 검찰은 과거사위 출범 당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사 권고 결정이 나오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경우 이의제기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앞서의 대규모 검찰 수사단 구성도 이 수사 권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촉구는 권고 정도의 강력한 수단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일요신문DB
일부 과거사위 관계자들과 법조계 관계자들은 과거사위가 수사 ‘권고’를 하지 못한 이유는 이번 결과 발표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과거사위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명확한 증거 등 객관적 근거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결국 이번 과거사위의 최종 결론은 의혹제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실제 윤중천 씨와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의 연루 의혹과 부실·봐주기 수사 결론에 대한 근거는 대부분 대검 진상조사단 조사 과정에서 윤 씨의 진술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윤중천 리스트’에 거론된 인물들을 특정한 근거는 윤 씨의 다이어리에서 그들의 명함이 발견됐고, 윤 씨 운전기사가 특정 인물을 지목했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진술을 기록한 조서나 녹음, 또는 다른 증거 자료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윤 씨 진술의 신빙성이다. 앞서 김 전 차관에 대한 과거사위의 뇌물수수 혐의 수사 권고 역시 “김 전 차관에게 수천만 원을 줬다”는 윤 씨 진술에 기반 한 것이었는데, 당시에도 법조계에선 여러 차례 번복된 윤 씨 진술만으로 수사에 착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대검 진상조사단의 소환 통보를 거부한 김 전 차관이 심야 출국을 시도하다가 긴급 출국금지를 당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된 듯 보였지만, 이후에도 검찰 수사단이 과거사위의 중간 수사 권고 등을 토대로 사기·알선수재·공갈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별건 수사’라는 이유로 기각된 바 있다. 윤 씨는 지난 5월 16일 결국 구속됐으나 그 직후부터 현재까지 진술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과거사위는 결과 발표 자료에서 이러한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의심된다” “정황이 발견된다”는 표현을 주로 썼다. 과거사위는 다른 사건 발표 자료 대부분에선 “확인됐다”라는 표현을 썼다. 서초동의 한 법조계 관계자는 “조사 결과를 압축하는 과정에선 핵심 근거와 명확한 증거 등만 남게 되는 게 상식이다. 적어도 윤 씨나 윤 씨 리스트에 언급된 인물들에 대한 혐의라도 특정이 돼야 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모두 빠져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결국 과거사위가 사실상 진상규명에 실패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며 “특정된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의혹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결국 이번 결과 발표는 과거사위가 심의 끝에 내린 결론이라기 보단 한 쪽의 ‘주장’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비판했다.
과거 ‘김학의 사건’ 조사팀에서 활동했던 박준영 변호사 역시 5월 29일 자신의 SNS에 게시한 글을 통해 “수사는 구체적인 혐의와 증거 등 처벌 가능성이 있어야 개시할 수 있다”며 “원주 별장의 용도가 접대뿐이었는지(가족 모임 등), 의혹 대상자의 별장 출입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성접대 등을 받았는지, 대가관계는 인정되는지, 공소시효는 남았는지 등 여러 의혹 등을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어야 수사를 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학의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 씨. 사진=임준선 기자
# “과거사위 결론은 검찰에 책임 떠넘기기” 지적
이번 과거사위 결과 발표 후폭풍은 거셀 전망이다. 한상대 전 총장과 윤갑근 전 고검장 등은 결과 발표 직후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이를 보도한 언론사와 대검 진상조사단 관계자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 전 총장은 “중앙지검장 재직 시절은 2011년 2∼8월이었는데 그 사건을 보고받은 바 없고, 중앙지검이 그 사건을 수사한다는 사실 자체도 몰랐다. 이에 대한 확인도 없이 수사를 촉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이어 “금품수수 의혹 등 근거 없는 보도가 나오더니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근거 없는 추측만으로 수사촉구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으며 음해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갑근 전 고검장도 5월 29일 입장문을 내고 “윤중천을 전혀 모르므로 골프를 치거나 별장에 간 사실은 더더욱 없다. 따라서 윤중천 관련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한 사실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사실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조사단과 과거사위에서 윤중천과 수회 만나서 골프를 치거나 별장에도 간 적 있으며 수사 당시 결재권자로서 윤중천과 유착돼 사건을 봐준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조사단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해 무책임한 행동에 엄중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과거사위의 결론은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단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과거사위가 ‘윤중천 리스트’ 등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찰 수사단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검찰은 뇌물 혐의로 구속된 김 전 차관을 오는 6월 4일 이전까지는 재판에 넘겨야 한다. 수사를 지휘하는 문무일 검찰총장 임기 역시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윤 씨와 김 전 차관 등은 수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 전직 검찰 관계자는 “과거사위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보해 넘겼다면 몰라도, 이번에 나온 의혹이나 정황만 가지고서는 압수수색은커녕 수사 착수 자체도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검찰 과오를 바로잡을 목적으로 출범한 과거사위가 오히려 진상규명부터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검찰에 ‘알아서 열심히 해보라’는 식으로 수사단에 떠넘긴 셈이다. 과거사위가 마지막 성과를 내고 유종의 미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검찰 수사단이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다른 결론을 내리면 또 다른 의혹이 재생산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당히 무책임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