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 3일 MBN TV의 PD 장아무개씨와 L증권 소속 오아무개 투자상담사 등 일곱 명을 허위사실 유포, 증권거래법상 위계행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MBN TV의 프로그램 <고수들의 투자여행을 통해 근거없는 사실을 보도해 9억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라는 것.
다음은 경찰이 공개한 이들의 주가조작 사례.
이들이 관련된 <고수들의 투자여행>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방송된 프로그램.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을 주로 출연시켜 투자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인기가 높았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2월 안아무개씨(사이버 애널리스트)가 이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이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고 프로그램 출연진 및 관계자들과 모의하면서부터.
모의 내용은 방송중 증권 종목에 대해 추천하면서 근거없는 사실을 일부러 슬쩍 흘리거나, 방송멘트를 애드리브, 시청자들의 매수주문을 유도한 것.
예를 들어 이들은 지난해 3월4일 방송에서 ‘하이트론’이라는 회사를 추천하면서 “이 회사의 올해 순익은 1백50억원으로 전년 대비 93% 증가 예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년보다 150% 증가한 93억원을 일부러 수치를 바꿔 말했다는 것.
얼핏 보면 이 같은 잘못된 멘트는 출연자가 수치를 잘못 읽은 것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 같은 멘트가 9개월 동안 1백여 건에 이르러 적발됐다.
이보다 한술 더 뜬 황당한 멘트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지난 5월22일 방송에서는 “무디스 관계자가 곧 대구은행 본점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허위였고, 더구나 무디스 관계자는 한국에 오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특정종목과 관련된 거짓 멘트를 내보낸 뒤 시청자들이 이들의 말을 믿고 주식을 매수해 주가가 오르면, 이들은 재빨리 자신들이 미리 사둔 해당 주식을 방송중에 팔아버리는 수법이었다.
이들은 9개월 동안 무려 46개 종목을 대상으로 이런 형태의 허위 사실을 유포했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동호회나 차명계좌 등 67개 계좌를 통해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에는 각자 차명 계좌를 갖고 거래를 하다가 나중에는 범행 수법이 더욱 대담해졌다는 것.
예를 들어 이번에 구속된 사람들 중 5명은 공동으로 M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한 뒤 대량 거래를 하면서 스스로 ‘독수리 5형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계좌가 적발된 뒤 경찰에서 “서로 의형제처럼 생각하자는 뜻에서 계좌 이름을 ‘독수리 5형제’로 붙였다”며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가늘고 길게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의 신종 주가조작수법이 처음 경찰에 꼬리가 잡힌 것은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3개월 뒤인 지난해 5월. 이 방송사의 다른 증권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애널리스트가 경찰에 제보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5개월 동안 내사를 벌인 끝에 지난해 10월 프로그램의 PD, 애널리스트 등 7명을 긴급 체포했다. 그러나 이들은 특별한 혐의점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풀려났다.
이후 경찰에서 4개월 동안 정밀 보강수사에 들어가 지난 2월 다시 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는 관련자 전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이 사건이 터진 이후 MBN 내부에도 상당한 여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의 입장은 “프로그램 제작자 개인의 잘못이기 때문에 회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고 “문제의 PD가 지난해 사표를 냈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는 것.
그러나 노조측은 “이번 사태는 내부 통제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인 만큼 보도국 간부들이 책임져야 한다”며 회사측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MBN 관계자는 “이 사건으로 연일 시청자들의 항의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며 “그러나 몇몇 증권프로그램을 경제 뉴스로 전환시킨 것 등을 제외하고 나면 이 사건 이후 회사측이 세운 근본적인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