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환율을 예측하는 일 자체가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고 말하는 우리은행 박종엽 자금팀 부장의 탄식은 외환시장의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박 부장은 지난 94년부터 우리은행(합병전 한일은행) 국제금융부에서 환딜링 업무를 전담해온 베테랑. 지난해 1월부터 이 은행의 외환자금팀(현 자금팀)을 이끌고 있다.
베테랑 딜러인 그가 최근의 외환시장을 ‘전례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거와 달리 시장의 움직임이 예측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된 지난 3월20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종가는 1천2백46원. 이라크전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달러는 강세기조를 보이며 전날보다 7.2원이 높은 1천2백64원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그 후 시장에는 달러를 팔겠다는 매도물량이 대량 유입되면서 전날보다 낮은 가격으로 밀렸다. 결국 이날 종가는 전날보다 10.8원이 떨어진 1천2백46원으로 마감됐다.
박 부장은 장이 끝난 후 “최근 들어 오늘처럼 전화가 폭주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특히 이 날의 달러 약세화 급반전의 경우는 “그 원인에 대해 시장 자체가 해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이라크 전쟁을 단기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 당분간 달러 강세가 예상됐으나, 오늘 같은 경우는 오히려 약세로 돌아서 하루종일 갈팡질팡이었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근의 달러 강세장 속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달러 약세추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게 그의 분석.
요즘 환 딜러들의 하루 일과는 긴장 그 자체다. 지난 2월까지 1천1백원대에서 머물던 원달러 환율이 지난 3월5일을 기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난 3월5일 1천1백99.2원이었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6일 1천2백10.5원(이하 종가기준)을 기록, 하루 사이에 11.3원이 껑충 뛰어오르더니, 지난 10일에는 전날보다 무려 19.8원이나 오른 1천2백38.8원에 장이 마감됐다.
이후 지난 11일에는 1천2백30원, 지난 12일에는 1천2백44원으로 올랐고, 이어 지난 18일에는 1천2백50원대를 깨고 올라섰다. 지난 3월초부터 달러 값이 급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박 부장은 “북핵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국내외 경제환경이 악화돼 원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환율이 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태와 카드회사의 부실이 원화 약세를 부추겼다는 것.
그는 “카드채 값이 하락하고, 카드사 부실이 은행 부실로 옮겨 붙을 것이라는 우려가 대두됨에 따라 자칫 금융 시스템 전반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게다가 석 달째 지속되고 있는 무역수지 적자도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을 했다는 것. 이런 환율 급상승세는 자칫 경제 전반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고 박 부장은 우려했다.
그는 “환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원자재 수입에 대한 부담이 커져 결국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며 “향후 금리상승, 기업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면 실업문제 등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환 딜러들이 보는 하루에 적절한 환율 변동폭은 5∼6원 정도. 같은 팀에서 실제 거래를 담당하고 있는 황정한 대리는 “하루 가격 폭이 10원을 넘어서면 어지럼증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이라크전과 북핵문제가 대두한 이달 들어 하루 변동폭이 19.8원에 이르는 등 10원 이상의 등락이 잦아 환 딜러들이 좌불안석이라는 것.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기업체들의 문의 및 주문 전화도 빗발치고 있다. 황 대리는 “보통 1천1백90원대가 기업체에서 주로 사자 주문을 내는 가격대”라고 전했다. 통계적으로 환율이 1천1백90원대로 진입하면 기업들의 달러 매수 주문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최근에도 H, S 등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매수주문이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늘(이라크전이 터진 날)의 경우는 달러를 사달라는 기업과 팔아달라는 기업이 거의 반반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환율은 어떻게 움직일까. 박 부장은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처럼 환율이 2천원대까지 치솟을 확률은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경제에 충격을 준 SK글로벌 사태가 채권은행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외환보유고가 3월20일 현재 1천2백40억달러 가량으로 IMF 때보다 높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2천원대에 진입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따라서 향후 환율이 오르더라도 1천3백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