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탕사진은 ‘KUHO’의 광고. 가운데 인물은 이건희 회장 차녀 서현 씨 부부로 왼쪽이 김재열 제일모직 상무보. | ||
이는 여성복 시장이 LG, 코오롱 등 대기업들이 수차례 진출했으나 한 번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 시장이라는 점과, 김재열 상무보가 지난 1월 중순 제일기획에서 제일모직 경영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긴 뒤 처음으로 시도된 변화라는 점 등에서 주목된다.
제일모직은 지난 3월25일 (주)에프앤에프의 여성캐릭터 정장 부문인 ‘구호’ 브랜드의 사용권 및 올해 봄, 여름 제품, 매장시설물 등 자산을 약 25억원에 매입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또 ‘구호’의 창시자이자 과거 (주)쌈지의 경영인이었던 정구호씨를 영입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다른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복 브랜드를 단기간 내에 일류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 회사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국내 의류시장은 지난 2002년도를 기준으로 대략 17조원 정도. 이중 여성복 시장은 전체의 20% 정도인 3조6천억원대의 규모이지만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정연우 대신증권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여성복은 대량 생산체제가 아니고 소량을 다양하게 생산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대기업의 생산체제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여성복 시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이너 부티크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을 이끌어왔다.
실제로 과거 LG, 코오롱 등 대기업들이 여성복 시장에 전격적으로 뛰어들며 경쟁력 확보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사업을 철수한 적이 있어, 업계에서는 이 시장을 ‘대기업의 불모지’라고 빗대어 부르기도 했다.
당시 이 시장에 진출했던 코오롱 관계자는 “여성브랜드의 경우 대기업에서 성공한 전례가 없다”며 “영업이익률도 다른 기성복에 비해 낮고, 최신 트렌드에 빠르고 소량을 생산해야하는 점 등에서 대기업 스타일과는 안맞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일모직은 대기업들이 꺼리고 있는 여성복 시장의 문을 다시 한 번 두드리고 있는 것. 더욱이 각종 경제 연구소들은 올해 의류시장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국내 의류시장은 구매호조로 인해 전년 동기대비 11.9%(8조2천30억원)이나 성장했으나, 하반기에는 12.7%(9조2천6백30억원) 이상이 줄어버렸다.
올해 의류시장도 소폭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소비 패턴의 양극화가 두드러질 전망.
업계에 따르면 제일모직의 여성복 시장에 대한 애착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는 것. 이는 제일모직이 지난 1월 인사를 단행하면서 이탈리아 패션회사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이정민씨를 전격 영입하면서부터 가시화됐다.
당시 영입된 이씨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30대 여성 임원이라는 이유로 화제가 됐었다. 제일모직은 이 상무보의 발탁을 계기로 여성 패션사업의 메카로 불리우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최고급품의 여성복을 생산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업계에서는 제일모직이 이 같은 공격경영을 나서고 있는 배후에 이건희 회장의 차녀 서현씨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시선을 던지고 있다.
이 회장의 차녀 서현씨는 현재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재직중이다. 이 같은 업계의 추측은 서현씨가 예전부터 유달리 20대 이상의 여성복 패션 브랜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데다, 서현씨의 남편이자 이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상무보가 지난 1월 중순 제일기획에서 자리를 옮긴 뒤 처음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이기 때문.
김 상무보는 현재 제일모직의 중장기 경영전략 플랜을 담당하는 경영기획 담당 중역으로 근무하고 있고, 서현씨는 연구소에서 시장조사, 트렌드 분석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제일모직이 여성복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과 관련해 (주)한섬, 데코 등은 아직까지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경쟁업체 한 관계자는 “제일모직이 그동안 여성복 패션시장에서는 약세였고 대기업은 의사소통이 늦다는 약점이 있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여성복 시장에서 정확한 포지셔닝을 잡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트렌드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오너의 감각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일단 시장에서는 제일모직의 진출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정연우 대신증권 선임연구원은 “종합패션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의 여성복 사업확대가 불가피하다”며 “이번에 인수한 ‘구호’를 징검다리 삼아 향후 외국제품 등과 함께 연계해 자사의 브랜드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대기업의 불모지’인 여성복 시장 진출을 계기로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 제일모직의 플랜이 성공할지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