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은행은 증권사 사장이었던 김정태 행장(사 진)의 ‘금융감각’을 믿고 주식투자를 한다고. | ||
문제의 발단은 지난 4월29일 삼성증권이 내놓은 보고서였다. 증시분석지인 데일리 리포트에서 삼성증권은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이 주식시장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은 “은행도 수익사업을 하는 곳인 만큼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문제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두 금융사의 갈등은 은행가의 선두주자격인 김정태 국민은행장과 증권가의 큰손으로 불리는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의 자존심 문제로까지 비화될 소지를 안고 있다. 게다가 김 행장이 과거 증권사 사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시중은행의 주식투자가 정당하냐는 논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금융가 일부에서는 “국민은행이 주식 시장에 1조원의 자금을 푼 이면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
논쟁이 시작된 것은 국민은행이 지난 2월 중순 주식시장 안정화를 위해 총 1조원의 자금을 증권가에 투입키로 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 이후 국민은행은 지난 2월18일 총 3천억원, 3월11일과 19일에 각각 2천억원과 3천억원, 4월28일 2천억원 등 총 1조원을 증권시장에 투입했다. 국민은행은 이 자금을 삼성, 대신, 프랭클린 템플턴 증권사 등 국내외 투신사에 각각 맡겨 전문적으로 운용토록 했다.
그러나 1조원 중 마지막 자금이 투입된 다음날인 지난 4월29일 삼성증권은 데일리 리포트에서 “국민은행이 주식시장에 자금을 투입한 것은 은행 주가에 부정적이다”며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삼성증권은 “은행은 기본적으로 대출 및 은행 수수료가 주수입인데 주식에 1조원이나 되는 자금을 투입한 것은 기본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라며 국민은행을 비판했다.
국내 최고의 증권사가 비난을 하자 국민은행측도 발끈하고 나섰다. 국민은행은 “증권사가 각 기업에 대해 리서치를 하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개인 의견일 뿐이지 않느냐”며 삼성증권에 맞공격하고 나섰다.
국민은행과 삼성증권의 갈등은 시중은행이 주식시장에 투자해 수익을 남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옳은가 하는 부분과 은행의 주식투자가 은행의 주주들에게 과연 유리할 것이냐 하는 부분에서의 입장차가 원인.
삼성증권의 입장은 “국민은행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주주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점 때문이다.
삼성증권 리서치 유재성 은행담당팀장은 “투자자들은 은행이 대출과 수수료 수입 등을 통해 수익을 낼 것을 기대하지 주식에 투자를 해서 돈을 벌기를 원치는 않는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1조원이라는 규모가 국민은행의 자산과 비교할 때 큰 금액은 아니지만, 만일 주식투자에 실패할 경우 돌아오는 피해는 크기 때문에 자금 투입은 주가에 부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국민은행의 현재 총 자산이 1백70조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은행이 주식시장에 투입한 1조원은 약 0.6%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 미미한 수치가 은행의 순익과 직결된다는 것이 삼성증권의 주장. 삼성증권이 추정하는 올해 국민은행의 순익 예상치는 1조4천억원. 만일 국민은행이 주식에 투자해 10%의 손해라도 보면 1천억원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셈이고, 결국 이는 고스란히 순익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다는 주장이다.
유 팀장은 “국민은행이 향후에 주식시장이 하락했을 때 시장안정기금 등을 통해 의무적으로 증시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 등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다른 은행들도 일부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데 삼성증권이 왜 국민은행에만 시비를 걸고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수익목적도 있지만, 주식시장 안정 등의 공공적 문제를 고려해 증시에 투자를 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리딩뱅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은행이 주식투자를 통해 이윤을 얻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리스크가 있기는 하지만 증권사 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정태 행장이 ‘금융감각’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국민은행의 이 같은 반론에도 불구하고 다른 은행들의 시각은 싸늘한 편. A은행 관계자는 “우리도 1천억원 정도의 규모 내에서 자체적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민은행과 같이 투신사를 통해 전문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며 “차익을 얻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라면 지탄받을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주식투자는 수익변동성이 워낙 커 은행 주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선호할 리는 없다”며 “증시부양이라는 공익성에 기여할는지는 두고볼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가 일각에서는 국민은행이 1조원의 거액을 주식시장에 투입한 것과 관련,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음모론도 오가고 있다. 이라크전 전후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자금투입 발표를 한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여기에 올 들어 국민은행의 순익이 전년도에 비해 급감하고 있는 데다, 국민은행과 자회사인 국민카드의 합병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김정태 행장의 거취 문제가 표면화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해석을 낳고 있는 배경인 듯하다.
국민은행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김 행장의 거취에 대해 정부나 대주주들 간에 말이 많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1조원 증시투입이라는 히든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해석인 것. 주식투자로 급감한 순익을 보전할 수 있다면 약화된 자신의 입지를 새롭게 다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같은 결정을 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