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후보자는 유리천장 깨기의 선두주자로 통해왔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첫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한국인 여성 처음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았고, 고려대 경영학과와 현재 재직 중인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첫 여성 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됐다. 이번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지명도 여성으로선 38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게 국회 안팎의 관심이 집중돼 다소 가려진 듯 보이지만, 애초에 그를 둘러싼 쟁점 자체가 많지 않다. 여성이고, 미혼이라 청문회 단골 지적 사항인 병역, 자녀 문제 등이 없다. 재산의 대부분도 예금이다. 이 때문에 청문회에선 그의 신상보다는 그가 구상하는 정책에 검증이 집중될 것으로 일찌감치 관측됐다. 조 후보자의 ‘입’에 관심이 쏠린 이유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조 후보자는 그동안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했다. 후보자 지명을 받은 지난 8월 9일, 그는 공정거래법 제1조를 읊은 후 “먼저 청문회 준비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업무 과제가 있냐는 물음에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8월 21일 기자단과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에 “대기업집단에서도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행태 등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재벌정책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청문회에서 소상히 설명하겠다”고 답하는데 그쳤다.
재벌개혁은 문재인 정부 ‘공정경제’ 정책의 핵심인데다, 조 후보자가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로 소개된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하 답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밖에 재벌 정책 외 중점 법 집행 분야와 전속고발권 폐지 등 국회와 재계 전반에서 민감한 내용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국회 차원에서 충실히 논의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관계부처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은 긴밀히 협력하면서 여러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을 집행하는 주무부처의 차기 수장이 경제 분야에서 가장 치명적인 ‘불확실성’으로 답한 셈이다. 공동 질의서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나온 반응이란 점에서 “조 후보자가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다”는 강도 높은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청와대가 후보자 지명 당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라고 소개한 점과 전임자인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1년 후배라는 점 외에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내용도 없었다. 그런데도 조 후보자가 입을 좀처럼 열지 않으면서 공정위 안팎에서는 과거 후보자가 쓴 논문을 바탕으로 정책 방향을 추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조 후보자의 가장 최근 논문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다른 논문들은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에 썼던 만큼 현재 경제 상황에 반영하기 어렵다. 여기에 조 후보자의 침묵이 길어지고, 논문과 원론적인 답변에선 김상조 실장이 그동안 일관되게 강조했던 논리가 비춰지면서 ‘김상조 아바타’ 논란까지 불거졌다.
일각에선 공정위 청문회 준비팀이 조 후보자에게 “미리 언론과 접촉할 필요 없다”는 취지로 조언했다는 전언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 야권 관계자는 지난 25일 “최근엔 후보자들이 청문회 전에 정책 방향의 큰 그림 정도는 파악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회에서도 딱히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김상조 실장은 2017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지명을 받은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고 1시간 동안 질문에 답하며 “김상조가 말랑말랑해졌다는 말이 있는데, 개혁에 관한 의지는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실장은 이후 재계에서 결코 작지않은 존재감을 보였다. 앞서의 야권 관계자는 “청문회 통과에 집중하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는데, 신중함이 오히려 독이 된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침묵 깬 조성욱 후보자, 일감몰아주기 문제 여러차례 거론
조 후보자는 27일 서울 중구 공정거래조정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후보자로 지명된 지 20여 일 만이다. 전날 그가 자처해 마련한 자리였다. 김상조 실장의 영향력 아래 ‘관리형 공정위원장’에만 그칠 것이란 우려와 전문성과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조 후보자는 이날 전문성 논란에 대한 답변을 적극적으로 내놨다. 그는 “학자로서만 25년 살아온 건 맞지만 많은 경험을 했다. 학회 회장도 했고, 정부 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서 역할도 했다”며 “공정위가 변화하는 환경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목표를 설정하고 공정위 직원과 같이 나갈 수 있도록 설득할 능력이 있다. 650명의 거대한 조직을 끌어본 적은 없지만 소위 경영학에서의 리더십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담합, 기업 간 합병 등 공정위 업무에 대한 연구 경력이 없고, 기업지배구조 연구도 제한된 영역에 그쳐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최근 기업 지배 구조에 관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평판 좋은 해외 저널 중 하나에 우리나라 사외이사에 대한 논문이 들어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상조 아바타‘ 논란과 관련해선 “앞으로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는가를 보고 판단해 달라”고 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책추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 후보자는 이날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모두발언에서부터 여러 차례 언급했다. 공정위원장에 임명된다면 그가 전면에 내세울 ‘칼’로 풀이된다. 그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실효성 있는 행태 교정에 주력할 생각”이라며 “국세청 등 유관기관과의 자료공유를 통해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효율적인 독립 중소기업의 성장기회를 박탈하고, 대기업들이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에 대기업 집단의 문제는 문어발식 계열 확장에 따른 동반부실이었지만, 현재 대기업집단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집단과 재벌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 여부에 관련한 질문에는 “게임의 심판자로서 공정위는 유명한 ’스타플레이어(대기업)‘의 잘못도, 조그만 기업의 잘못도 제재해야 한다“며 ”어떤 경우에도 규칙을 지키는 것이 만큼, 경기 하강기에도 이 같은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오늘날의 재벌은 과거의 모습과 다르다”며 ”1997년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재벌은 시스템 리스크를 만드는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 생존한 재벌들은 다르다. 재벌은 몇 십 년 간 많은 성장을 해왔고 경제발전에 기여해왔다. 하지만 일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보기술(IT)산업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조 후보자는 “온라인 플랫폼 등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에서는 과도한 정부개입으로 시장이 왜곡되거나 혁신이 저해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서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부당한 독과점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제재할 것”이라며 “구글, 애플, 네이버에 대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시장 혁신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겠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선 이번 기자 간담회를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10대그룹의 한 임원은 “그동안 알려진 내용이 없어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일부 해소됐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그룹의 임원은 “전임자가 일관되게 강조해온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정책이나 업무 추진 방향 등도 구체적이지 않아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 형부 회사 감사, 한화 사외이사 재직 당시 문제도 검증대 올라
정책검증 외에도 청문회에서 조 후보자가 답해야할 내용은 또 있다. 과거 오염물질 처리 벤처기업 감사로 재직한 경력이다. 조 후보자는 2000~2012년 형부가 대표로 있는 이 회사의 감사를 지내며 학교에 겸직 신고를 누락했다. 현행법상 서울대 교수는 교육직 공무원으로, 특정 업무를 겸하는 경우 소속 기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 보고서에서도 한화와 예탁결제원, 마사회 등에서 사외이사 또는 비상임이사를 지낸 경력은 썼지만 형부 회사에서 감사를 지낸 사실은 누락했다. 이에 대해 조 후보자 측은 “규모가 작은 업체에서 무보수, 비상근으로 일했던 것이라 겸직 허가 대상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한화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회사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처분을 받은 점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지난 8월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인사청문회 자료를 보면, 한화는 조 후보자가 사외이사였던 2010년 3월부터 2014년 4월까지 3차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
2012년 2월 계열사인 한화폴리드리머 지원을 위해 판매 수수료를 과다 지급한 부당지원 혐의(과징금 14억 7700만 원), 장보고-Ⅲ 전투체계 및 소나체계 입찰에서 다른 사업자들과의 입찰 담합(시정명령 및 과징금 4억 1700만 원), 2011년 12월 한화가 계열사 6곳과 함께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한 공시 의무 위반(경고 처분) 등이다.
조 후보자는 한화 사외이사에 재직한 기간 열린 의결 안건이 있는 회의 45회 중에 34회 참석해 출석률은 75.6%다. 그는 단 한 번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당시 그가 사외이사로서 받은 월보수(400만 원)와 교통비(50만 원) 등은 총 1억 7100만 원이다.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일정은 지난 8월 27일 오후 늦게 확정됐다. 오는 9월 2일이다. 국회 정무위에 따르면 당초 청문회 일정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측은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시한인 9월 2일을 제시했고, 자유한국당 측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시작되는 2일을 피해 3일에 청문회를 열 것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2일에는 조 후보자를 비롯해 조국 후보자,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동시에 열린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