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 ||
이 불법 교통 통제는 롯데에 고용된 사설 경호회사 직원들이 임의로 도로를 막으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신 회장은 고향 마을 잔치에 참석차 전날인 3일에 내려와 별장에 머물고 있었다.
롯데쪽에선 그날 별장 앞에서 롯데제과 양산공장 해고자 김아무개씨 등 10여 명이 시위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 사설 경호원 10여 명을 동원해 해고자들의 승합차 진입을 가로막는다는 구실로 공공시설인 도로를 통제하는 불법 행위를 저질러 수많은 도로 이용자들의 통행을 막는 사태를 불렀다.
더욱이 롯데쪽에선 당시 현장에서 불법 도로통제를 하지 말라는 울산 서부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의 지시마저 거부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룹총수가 별장에 내려온다며 과잉경호를 한 것이 지역주민들에게 교통지옥을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이날 해고자가 타고간 승합차에는 세 명뿐이었다. 물론 롯데쪽에선 해고자 김씨와 부산양산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부양해복투) 양순복 위원장 등 3명의 탑승자에 대해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냈기 때문에 이들의 접근을 막은 것은 적법하다는 주장을 폈다.
지난 4월 롯데쪽에서 해고 뒤 5백일 넘게 롯데 양산공장 앞에서 1인시위를 하던 김씨와 이를 지원하는 부양해복투 양 위원장 등 3명이 신 회장 별장과 양산공장, 롯데 서울공장 등 3곳에 대해 5백m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내 법원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롯데가 이렇게까지 한 것은 김씨가 신 회장이 별장에 내려온 지난해 12월31일부터 1월9일까지, 또 신 회장 향우회 잔치가 벌어진 지난 5월1일부터 10일까지, 이어 내년 5월1일부터 10일까지 집회 및 시위 신고서를 사전에 제출하고 길목을 지키며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1년 반 전 롯데제과 양산공장 노조지부 대의원이었지만 노조지부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노조로부터 제명처분을 받았고 곧바로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 이후 해고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고 부양해복투의 지원이 뒤따른 것이었다.
▲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에 위치한 신격호 회장 별장. 신 회 장은 올해에도 마을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5월 초 이곳에 서 머물렀다. | ||
사건이 방송을 타는 등 대형사고로 번지자 롯데쪽에선 김씨와 서둘러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사건의 또다른 당사자인 부양해복투 주변에선 롯데가 서둘러 합의한 것은 불법도로차단 사건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김씨와 양 위원장 등을 상대로 롯데쪽에서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낼 때 서류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롯데가 법원에 제출한 접근금지가처분신청서 취지문에는 접근금지 지역으로 신 회장 별장 일원으로, 당사자인 김씨와 양 위원장에게 전달된 서류에는 신 회장 별장 앞 등 내용이 다르다는 것.
이에 대해 양 위원장은 “공문서 위조 아니냐”며 법적인 절차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롯데쪽의 농간에 의해 자신들이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당하는 등 피해를 봤다는 입장인 것. 양 위원장의 법정대리인인 최용석 변호사는 “이 사건의 정확한 명칭은 공용서류 무효죄로 절차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맞지만 서류가 뒤바뀐 것에 대해 형사소송으로 가야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법원에서 서류가 바뀐 것인지, 롯데쪽 법정 대리인이 애초부터 법원에 제출한 원본과 다른 부본을 제출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 법원에 제출한 뒤 이해당사자에게 전달되는 부본 서류가 뒤바뀌었다면 문제는 커진다. 법조스캔들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것.
롯데쪽 법정 대리인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는 취지의 해명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양 위원장은 “시위가 빈발하고 있는 부산 울산 지역에 이런 경우가 몇 건 더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기회에 법정에 제출하는 서류가 뒤바뀐 것에 대해 법적 소송을 통해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추후 소송을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단 이번 사건은 울산서부경찰서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일 김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있었고, 롯데제과 양산공장 공장장도 10일 조사를 받았고, 12일에는 경비업체 대표가 조사를 받았다.
롯데는 해고자의 1인시위 문제가 과잉경호 문제로 사회 문제화되자 서둘러 김씨와 합의를 한 듯, 김씨는 올해 말과 내년 5월에 시위를 벌이겠다고 신고했던 집회신고서를 사건 뒤 전격적으로 철회한 뒤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하지만 롯데의 수습은 이미 손쓸 수 없는 범위까지 나갔다는 시각도 있다. 법정 서류 위조 시비는 김씨와 합의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이미 지난해 롯데호텔 노조 파업사태가 성범죄로까지 확대되면서 곤욕을 치른 롯데그룹에서 1인시위로 촉발된 이 사안을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