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조중훈 회장(사진)은 1945년 중고트럭 한 대 로 처음 사업을 시작해 대재벌을 일궜다. | ||
지난 1920년 서울 미근동에서 태어난 조 회장은 휘문고를 다니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그만두고 진해에 있던 직업훈련소격인 해원양성소(선원양성소)에 다녔다. 그것이 그가 한진그룹이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송재벌을 일구는 계기였다.
그는 해방이 되던 1945년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중고트럭 한 대를 밑천으로 인천에서 한진상사라는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의 첫 사업은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실패로 끝났다.
그러던 조 회장이 성공의 문턱에 바짝 다가선 것은 1965년 베트남전이었다. 베트남전 군인 및 물자 수송용역을 딴 조 회장은 일약 경제계의 거물로 부상했다. 당시 그의 나이 45세.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그는 지난 69년 마침내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 KAL을 탄생시켰다.
조 회장가를 보면 그의 위로 형 조중렬씨가 있고, 밑으로 4명의 여동생과 2명의 남동생이 있다. 형제들 중 조 회장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일곱째인 조중건씨였다.
▲ 조중훈 회장의 사업에 가장 큰 도움을 준 동생 조중건씨. | ||
또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할 때도 조 회장을 대신해 정부 로비를 책임지는 등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나중에 조중훈 회장의 직계이자 자신의 조카들이 크면서 쓸쓸히 일선 경영에서 물러나야 했다.
조중훈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 현회장은 미국 밀워키대를 졸업한 뒤 지난 74년부터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며 경영수업을 쌓았다. 성격이 불같은 조양호 회장은 작은 실수도 용납치 않을 만큼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차남 조남호 부회장은 고대 경영대를 졸업한 뒤 한진해운, 대한항공 등에서 경영수업을 쌓았다. 형제들 중 조남호 부회장의 성격이 제일 원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친이 작고한 뒤 한진해운을 갖고 독자경영에 나선 3남 조수호 부회장은 조중훈 회장 생전에 가장 아끼던 아들로 전해진다. 또 금융부문을 갖고 독립한 조정호 부회장은 금융사업 경영을 위해 손경식 제일제당 회장으로부터 사사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