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 3일’ 캡처
도시로 인구가 밀집되면서 국내 지방 곳곳의 고령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전국 시군구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39%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면서 10곳 중 4곳 꼴로 누군가에게 삶의 터전이자 고향인 한 마을이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됐다.
남 서천군 한산면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맑은 금강 줄기가 빠져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마을은 황금빛 갈대밭과 백제 역사의 건지산을 간직하며 동화 같은 풍경을 자아내지만 주민의 대부분은 65세 이상의 어르신들뿐이다.
2600여 명의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이 절반, 이름만큼이나 한산한 서천군 한산면. 여느 농어촌 마을처럼 소멸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 마을이 보존되어야 할 이유는 조금 더 특별하다.
중요무형문화재인 ‘모시짜기’와 가장 오래된 항토주인 ’소곡주‘등의 고장으로서, 후대로 이어야 할 우리 문화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생활의 근본이 되는 논밭과 시골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학교,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을 만드는 함석 가게와 대장간, 숙련공의 손맛이 살아있는 이용원까지. 모두 사라짐을 상상할 수 없는 정겨운 우리네 시골풍경이다.
사라지는 것과 지켜야 할 것의 사이. 그 길목에 놓인 서천 한산면에는 ’특별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대물림할 가치가 있는 한산면 전통에 공감한 도시 청년들이 모여 마을의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 것. 이름하여 ’삶기술학교‘ 프로젝트다.
청년들은 도시에서 갈고 닦은 자신만의 기술을 전통의 지혜가 가득한 시골 마을에서 발휘하며 각자의 삶을 마음껏 실험한다. 이들은 도시에서 유지하던 생활습관을 완전히 바꾸지도 고수하지도 않는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며 마을에 찬찬히 스며들고 있다. 동시에 마을공동체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단순한 한 달 살기도 흔한 마을재생도 아니다. 청년들은 이곳에 한 달 동안 머물며 한산면의 전통인 모시짜기, 소곡주 등 지역의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이들의 도전으로 전통은 새로운 옷을 입은 채 잊히지 않을 가능성을 얻고 마을은 지속 가능한 삶의 터가 된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청년들의 시골정착 프로젝트로 서천군 한산면의 풍경은 5개월 만에 눈에 띄게 변했다.
몇십 년 간 비어 있던 유휴공간은 색을 입은 채 카페, 게스트하우스, 미술관 등의 목적을 가진 장소가 됐고 거리에는 젊은이들의 행보로 활기가 더해졌다.
청년들을 맞이하는 마을 주민들의 소감도 다양하다.
한산하던 마을에 젊은 청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니 사람 사는 마을 같다는 어르신부터, 시골에서 접하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아이들, 젊은 감각으로 한산의 전통이 보존될 희망을 얻게 된 명인들까지.
’소멸‘을 걱정하던 서천군 한산면 주민들은 이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