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지난 17일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 그러나 그의 컴백을 두고 금융가에서는 말이 많다. 이는 김 행장이 아직까지 국민은행을 진두지휘할 정도로 병이 호전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퇴원을 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김 행장이 급하게 업무복귀를 해야만 했던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 입원중이던 김정태 행장이 지난 17일 출근해 경영협의회 를 주재했다. 웃고는 있지만 여전히 병색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다. 국민일보 | ||
그러나 이날 오전 8시50분 경 국민은행에 모습을 드러낸 김 행장은 평소의 태도와는 다르게 취재진을 따돌리고 1층 정문이 아닌 후문을 통해 서둘러 사무실로 이동했다. 그가 평소에 언론에 대해 당당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광경을 연출하자 또다시 김 행장의 조기퇴원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후 국민은행 홍보실은 서둘러 김 행장이 주재하는 경영협의회 시작 전에 취재진에게 김 행장의 모습을 살짝 공개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시작된 경영협의회에 모습을 드러낸 김 행장은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수척한 차림새였다. 김 행장은 말쑥한 감색 양복 차림으로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내내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병색이 채 가라앉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특히 그동안 자신의 공백을 메워준 임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밝히는 대목에서도 평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힘이 없어 보였다는 게 그를 대한 사람들의 전언. 더욱이 그가 취재진의 카메라를 피해 뒷문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뭔가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추겼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김 행장이 퇴원하도록 병원에서 내버려 뒀겠느냐”며 김 행장의 조기 퇴원설을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은행 정문에 내렸으나, 취재진들이 예상보다 너무 많아 순간 당황하다보니 뒷문을 통해 사무실로 이동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행장은 오전에 경영협의회만을 주재한 뒤 서둘러 은행을 떠나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렇다면 왜 김 행장은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은행 업무에 복귀를 해야했을까. 금융가에서는 김 행장의 ‘조기 퇴원설’에 대해 은행 업무보다는 노무현 대통령 주재의 은행장 만찬 챙기기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김 행장이 모습을 드러낸 바로 다음날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은행권 인사들에 대한 오찬이 계획돼 있었기 때문. 그동안 끊임없는 경질설에 시달렸던 김 행장으로서는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건강보다 우선일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김 행장은 업무에 복귀한 바로 다음날 노 대통령 주재의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다. 지난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은행장 오찬은 최근 이어지고 있는 경제계 챙기기를 위한 행사였다.
이 자리에는 신동혁 전국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해, 나응찬 신한지주회사 회장 등 금융지주회사 회장들과 이덕훈 우리은행장, 김승유 하나은행장, 홍석주 조흥은행장 등 총 21명의 은행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네발 달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도 부득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다. 김 행장은 새 정부가 출범한 후 은행장 대폭 교체설이 떠돌 때마다 1순위로 지목됐던 것이 사실.
유독 김 행장이 거론되는 배경에는 “지난해 대선 기간 중에 여권의 한 인사가 김 행장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야박하게 거절당했다더라”는 소문이 급속하게 퍼져나가면서부터 시작됐다.
특히 김 행장은 공식석상에서도 “정부 지분을 빨리 처분해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등 신정부의 관료들과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이런 김 행장의 ‘튀는 행동’에 기름을 부은 것은 국민은행이 발표한 실적이었다. 국민은행의 1분기 은행 실적이 작년 같은 기간의 10분의 1로 줄어든 것. 이 같은 실적 부진은 김 행장의 조기 퇴진론을 한껏 부채질하며 금융권을 연일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금융권 인사의 물갈이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지난 5월 말 정부는 “경질은 없다”고 밝혀 병석에 누워있는 김 행장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했다. 이렇다보니 김 행장으로서는 은행업무는 둘째치고라도 청와대 만찬에는 무리해서라도 참석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금융계 인사들의 시각.
업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방미 때에도 금융계측 수행 인사로 김 행장이 리스트에 올랐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미국에 가지 못했다”며 “노 대통령과의 만남이 두번씩이나 무산될 것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노대통령은 지난 18일 오찬에서도 “정부는 은행장 인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김정태 행장 ‘인사설’에 관해 쐐기를 박아 김 행장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김 행장은 당분간 은행 출퇴근과 병원치료를 병행하며 업무를 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