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한화 회장(왼쪽), 이재현 CJ 회장 | ||
지난 11일 제일투자증권의 대주주인 CJ와 푸르덴셜그룹이 이 회사로부터 받을 이자 6백64억원을 출자전환했다. 제일투자증권의 후순위전환사채 및 전환상환우선주로 각각 전환한 것이다.
이런 응급조치는 SK글로벌 사태에 물려 위기에 몰린 제투의 위기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런데 이 조치로 그동안 물밑에서 추진돼오던 이 회사의 매각 문제가 새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CJ와 푸르덴셜이 수백억원을 출자전환한 것은 금감원의 긴급 명령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 5월 제투증권이 계열사인 제일투신운용에 대한 1백50억원의 증자로 영업용순자본비율이 지도기준인 150% 미만으로 떨어졌다며 경영개선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대주주인 CJ와 푸르덴셜의 응급조치로 제투는 영업용 순자본 비율 하락으로 인한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초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제투가 간신히 문닫을 위기를 넘기게 됐다는 얘기다.
일단 한숨을 돌린 CJ와 푸르덴셜은 이달 말까지 거래조건 등에 대한 협의를 거쳐 제투의 매각문제 등에 대한 최종 방안을 확정해 다음달 말까지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완료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 조치로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제투의 매각작업이 본격 수면위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투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한화와 CJ의 신경전이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점. 최근 증권가에선 ‘한화가 제투를 실사한 뒤 인수를 거절해 CJ가 황당해하고 있다’는 요지의 얘기가 퍼졌다.
제투 인수자와 관련해 한화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지난 4월 말. 지난해 대한생명 인수를 완료한 한화가 증권금융부문 확대를 위해 중소형 증권사를 매입할 것이란 관측이 돈 것. 실제로 한화는 장기적으로 대한생명의 금융운용을 위해서도 현재의 한화증권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제투뿐 아니라 몇몇 소형 증권사를 M&A하는 방안을 극비리에 추진해왔다. 그중 가장 유력한 대상으로 제투를 지목해온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실사를 하고나서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 기업실사라는 것이 성격상 기업비밀까지 알려주게 되는데 한화가 실사를 마친 뒤 인수작업을 사실상 중단해 상도의를 어겼다는 것이 CJ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CJ나 한화쪽에선 이런 얘기가 돌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시인해 주목을 끈다. 양측이 모두 ‘협상은 진행중’, ‘실사는 끝났다’라고 인정하지만 이 두 가지를 빼고는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한화는 “(협상이) 깨졌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니다. 그쪽이 푸르덴셜과 협상을 끝내야 우리랑 본격 협상할 것이다”는 입장이고, CJ는 “아직까지도 한화도 가능성있는 카드로 협상을 진행중이다”는 미묘한 입장차이가 있는 것.
사는 쪽인 한화와 파는 쪽인 CJ에서 서로 외견상 상대에게 꿀릴 게 없다는 식의 ‘기싸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화나 CJ나 시장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
▲ 제일투자증권(왼쪽)의 인수 작업을추진중인 한화(오른쪽). 우태윤 기자 | ||
이에 대해 한화에선 “인수여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회사 내용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돈(인수 자금)’은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생 인수금 납입도 거의 끝난 상태고 최근에 본사 건물을 매각하는 등 항상 유동성 확보가 돼 있는 상태라 ‘한화의 인수여력 부족’을 말하는 것은 상황을 너무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CJ 역시 제투와 관련한 부담이 그룹 전체에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 매각을 되물릴 수도 없다. 최근 CJ가 제투로부터 받지못한 미지급 이자를 제투의 후순위채 등으로 돌린다고 발표했을 때 증권가에서 나온 반응을 보면 더욱 그렇다.
세종증권은 CJ가 제투와 관련해 손실처리해야 할 금액이 최악의 경우 7백84억원에 달하고 이로 인한 미발생 손실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잠재돼 있어 당분간 CJ 주가가 시장 수익률을 초과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반면 한국투자신탁(한투)은 CJ가 미수이자를 제투의 후순위전환사채로 집어넣은 것은 제투의 재무구조개선을 이뤄내 제투 매각작업이 더욱 활기를 띨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한투는 CJ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로 상향조정했다.
한투의 이승섭 연구원은 “이번 신규 후순위전환사채 전환은 CJ의 추가적인 현금 유출없이 제투의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과 CJ의 제투 매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재확인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의견이 나온 것에 대해 증권가에선 CJ의 제투 매각건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과 제투가 CJ그룹에 짐이 되고 있다는 점, CJ의 제투 매각은 피할 수 없는 사안이란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화와 CJ의 진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일단 CJ는 제투의 기존 투자자인 푸르덴셜에 추가 투자를 요구해 CJ와 함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한화에서도 ‘CJ가 푸르덴셜과의 협상을 먼저 끝내야 한다’고 말한 점에 비추어보면 CJ와 푸르덴셜, 한화간에 가격을 둘러싼 밀고 당기기에서 이번 CJ와 푸르덴셜의 후순위채 전환이 CJ의 협상력에 힘을 얹어줄 전망이다. 한화는 ‘여전히 인수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고, CJ는 ‘배신감’을 큰소리로 말하고 있다.
물론 CJ는 푸르덴셜과 한화, 두 곳 중 한 곳을 골라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제투 매각 막바지에 불거진 ‘부산 여론’도 이번 매각 작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 결과가 주목된다.
제투의 본점이 있는 부산에선 본점 폐쇄를 반대하고 있다. 푸르덴셜에 넘어갈 경우 부산 본점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지만 한화가 인수할 경우 한화증권과 합병되면서 부산 본점이 서울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경우 대규모 감자가 불가피해 부산쪽 소액주주들의 손실이 예상된다.
이는 과거 DJ정권에서 부실화된 한남투신이 막판에 예상을 깨고 현대그룹에 인수된 과정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CJ로선 주주들과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투 매각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