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발단은 ‘여성 생필품’인 생리대에 붙는 부가가치세를 면제해달라는 여성계의 요구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의원입법 발의를 통해 적극 옹호하고 나서자 재경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
이 문제가 불거지자 일각에선 “여성 생리대의 부가세를 면제해준다면, 남성 생필품인 면도기에 부과되는 부가세도 면제해 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 생리대 세금감면 문제가 자칫 성대결 논쟁으로 번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해 8월 한국여성민우회가 “전국 1천3백만 명 여성이 사용하는 생리대는 생활 필수품이므로 부가세를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
당시 이 문제를 제기한 민우회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이의 출산과 깊은 연관이 있는 생리대 세금감면은 모성보호정책 중 하나”라는 논리를 폈다.
이 같은 여성 단체의 주장이 나오자 국회 여성위 소속인 정범구 의원(민주당)이 지난해 10월 동료 의원 22명의 동의를 얻어 여성용 생리대에 부과되는 부가세를 없애는 ‘조세특례제한법중 특례개정안’을 국회 재경위에 상정했다.
하지만 당시 이 의원입법안은 국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회기를 넘겨 사실상 입법이 무산됐다. 이 법안이 심사를 받지 못한 이면에는 재경부측이 ‘생리대 부가세를 면제할 경우 3백억원 이상의 세수감소가 예상된다’는 검토보고서를 내는 등 강력 반발한 것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지난 8월 초 재경위 소속 나오연 의원(한나라당)이 동료의원 23명의 동의를 얻어 ‘부가가치세법중 개정법률안’을 발의해 생리대 면세 논쟁을 재점화했다.
나오연 의원 등이 이번에 발의한 법안과 1년 전 정범구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의 차이점은 부가세 감면내역 부분이 다르다는 점. 정 의원 등이 내놓은 법안은 생리대의 원료구입부터 부가세를 면제해주는 것이고, 나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은 생리대 완성품에 한해 부가세 면세를 해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정 의원 등이 제출한 법안대로 실시할 경우 1년 세수 감소액이 3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나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을 적용할 경우 세수감소액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는 것. 때문에 세수감소를 우려하는 재경부쪽의 걱정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어 정부쪽과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나 의원 등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 여성민우회 등 여성 단체들은 “정범구 의원 등의 안보다 더 후퇴했다”며 영세율이 적용되지 않은 것에 실망하는 눈치. 하지만 부가세 개정법률안을 통해 생리대에 대한 부가세를 면제할 수 있다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범구 의원실에서도 “나오연 의원 안이 지난해보다 세수감소 예상액이 적다는 점에서 정 의원 안과 함께 병합 심사를 할 수도 있다”며 올해 정기국회 기간중 관련 법안이 처리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여성민우회에선 일회용 생리대의 연간 시장규모가 2천5백억원 정도이고, 이를 기준으로 봤을 때 부가세액이 2백50억원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2002년에 거둔 국세 93조8천억원의 0.026%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2002년 부가세 징수액 32조원의 0.078%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규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생리대 세수 감소규모가 국가 예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
하지만 재경부의 입장은 다르다. 세수 감소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특정 계층이 사용하는 공산품에 대해서만 부가세를 깎아줘야 할 마땅한 명분이 없다는 것.
재경부의 관련 부서에선 “현재 국가에서 장애인이나 농어민 등 취약계층에 한해 예외적으로 감세혜택을 주고 있지만 여성을 취약계층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담당 관계자는 “그런 논리라면 환자 필수품인 암치료제나 어린이 필수품인 이유식이나 기저귀, 젖병, 노인 필수품이 보청기나 칼슘보조제, 돋보기 등에 대해서도 부가세 면세를 해줘야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재경부가 우려하는 또다른 문제는 생리대 문제가 비화될 경우 자칫 남성용 필수품에 대한 세금부과 문제도 도마위에 오를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일부에선 남성들의 생리 현상 때문에 쓸 수밖에 없는 면도기도 부가세 면제를 해줘야 한다는 논리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 재경부는 이를 들어 생리대에 대한 부가세 면제를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면도기 등을 생산하는 일부 기업들과 남성모임 단체들은 이 문제를 여론화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어 재경부 등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정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여성 보호를 위한 생리대 부가세 면제 논란이 ‘생리대 대 면도기’라는 논쟁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민우회쪽에선 생리대 면세 입법안이 여성 우대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남성과 여성의 대결 조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양성 평등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민우회측은 “모성 보호를 위해 가임 연령대의 여성들이 사용하는 생리대에 대해 세금 감면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며 이번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경부 담당자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여성 단체가 생리대 세금감면의 논리적 배경이 모성보호라면 정부의 출산장려정책 등이 더욱 모성보호정책에 가깝다. 게다가 정부의 모든 정책이 모성보호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모성보호를 위해 생리대 부가세 면제를 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 크다”고 주장했다.
반면 입법안을 낸 정범구 의원쪽에서는 “생리대 면세는 그 금액은 미미하지만 국가가 모성 보호를 위해 이런 정책을 편다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꼭 법안을 통과시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생리대 부가세 면제 반대론자들은 부가세 면제가 소비자가격인하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결국 업자 배만 불릴 위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수를 방어해야 하는 정부와 유권자를 의식하는 국회의원, 모성보호를 외치는 여성단체의 미묘한 이해관계가 어우러진 생리대 세금감면 논쟁이 오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장외 설전이 뜨거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