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문제는 최근 AK캐피탈이 인수자금 부족을 내세워 납입시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AK캐피탈은 연합철강의 전 사주인 권철현 전 회장의 아들인 권호성씨가 이끄는 회사. AK캐피탈은 지난 2월 한보철강 인수계약을 맺을 때 한보철강 인수대금 3억2천7백만달러(4천5백24억원) 중 3백20억원을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잔금 중 2천9백억원을 신디케이티드론으로, 4백80억원을 군인공제회로부터, 1천1백억원을 국내투자자로부터 각각 조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전 연합철강 사주인 고 권철현 회장. | ||
그러자 한보철강을 관리하고 있던 서울지법 파산 4부는 지난 19일자로 AK캐피탈 컨소시엄의 요청을 수용해 매각대금 완납일을 오는 11월18일로 3개월 연장해주었다. 대신 법원은 AK캐피탈이 납부한 이행보증금 3백20억원 중 1백억원을 위약금으로 몰수하는 등 2백50억원에 달하는 페널티를 물리는 한편 11월18일까지도 매각대금 납입이 끝나지 않을 경우 나머지 보증금 2백20억원도 압수키로 했다.
시장의 관심은 두 가지. 먼저 권 사장이 3개월 내에 6백44억원의 미수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다. 지난 2월 본계약이 끝난 뒤 반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권 사장이 연합철강 지분을 매각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당연히 이는 이번이 두 번째 계약인 권 사장측이 과연 인수대금 완납에 성공해 한보철강 매각작업이 완료될 수 있을지 여부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다.
AK캐피탈은 법원에 제출한 자금확보 계획서에 연합철강 지분을 매각해 한보철강 인수자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권 사장의 연합철강 지분은 우호지분을 포함해 37% 안팎. 권 사장측에선 이 지분을 주당 20만원 이상에 판다는 방침이다. 반면 시장에선 아직 10만원 선 미만으로 평가하고 있다.
급하게 된 것은 권 사장쪽. 지난 84년 연합철강 경영권이 동국제강으로 넘어간 뒤 권 사장쪽과 동국제강쪽은 사사건건 대립해왔다. 엽합철강 경영권을 다시 찾아와 권토중래를 노리는 권철현 회장의 집념은 너무나 강렬했고, 이에 대해 연합철강을 지키려는 동국제강 장상태 전 회장의 저항 역시 완강했다.
지난 2000년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이 사망한 데 이어, 연합철강의 원래 주인 권철현 회장이 지난 5월 작고한 뒤 연합철강 문제는 2세들끼리의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
권철현 전 회장은 사망 직전이던 지난 3월에도 대규모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량을 유지해 연합철강의 상장 폐지를 막을 정도였다. 그런 만큼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동국제강이 현 시장가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주고 권 사장쪽의 지분을 사준다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시장 관계자들은 동국제강쪽에서 그 가격에 사준다면 진작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동국제강쪽에서도 한때 한보철강 인수를 위해 컨소시엄까지 구성했다는 점을 보면 동국제강쪽에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권철현 전 회장쪽의 한보철강 인수를 도와줄 이유도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지난 98년 동국제강은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2조원에 한보철강 자산을 인수하겠다고 채권단에 제시했지만 주채권은행들이 지나치게 낮은 금액이라고 반대해 무산됐었다. 그러다 지난 2000년 3월 권호성 사장이 주도하는 네이버스 컨소시엄이 4억8천만달러에 한보철강 자산 인수 본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권 사장측이 매각대금을 내는 데 실패해 거래가 무산됐다. 그러자 권 사장은 다시 AK캐피탈 컨소시엄을 만들어 지난 2월 본계약에 성공한 것.
이번 계약금액은 3억7천7백만달러로 갈수록 매각 대금이 적어지고 있다. 때문에 한보철강 인수를 위해 컨소시엄까지 구성했었던 동국제강은 ‘헐값 매각’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철현 전 회장은 생전에 “동국제강은 연합철강을 인수할 돈도 없으면서 네이버스(권 사장이 주도한 첫 번째 컨소시엄)의 인수작업에 재를 뿌리고 있다”며 비난했었다. 그는 당시 “부실경영을 하고 있는 동국제강이 연합철강을 경영하는 한 절대 증자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감을 나타냈었다.
하지만 이번엔 권 사장쪽이 동국제강쪽의 협조를 받아야 할 입장이 됐다. 동국제강이 권 사장쪽의 물량을 받아야 한보철강 인수대금의 잔금을 치를 수 있는 것.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한보철강 매각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의 입장이다.
담당 재판부에선 AK캐피탈측이 권 사장의 연합철강 지분을 매각하지 않더라도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혀 권 사장측의 숨통을 터주었다. 하지만 본계약 성립 이후 6개월 동안 이뤄지지 않은 매각작업이 최후로 연장한 3개월 안에 끝난다는 보장은 없는 상황이다.
동국제강 입장에선 한보철강을 누가 가져가든 아쉬울 게 없다는 표정이다. 게다가 한보철강 인수자가 국내 최대의 전기로업체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 상황에서 굳이 인수작업을 도와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AK캐피탈이 인수 대금 완납을 하기 전까지는 한보철강 매각작업이 종료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보는 까닭이 여기 있다. 현재 중후산업쪽에선 대금완납 지연에 대해 “지금 자금 조달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 뭐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6백40억원만 조달하면 인수 작업이 완료된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