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에 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왼쪽)의 그룹 회장 승계설이 제기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 95년 회장에 취임하는 구본무 LG 회장. | ||
취재진의 확인 전화가 빗발쳤고, LG측도 진상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검찰에서는 오후 2시경 바로 “구본준 사장의 소환은 검토한 사실조차 전혀 없다”고 신문 보도를 공식 부인했다.
일단 그 기사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LG측의 불만은 대단했다. “구본무 회장에 이어 이제 구 사장에게까지 근거없는 소환설이 나돌고 있다. 우리를 표적으로 삼고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리는 실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격앙된 반응이었다. 구 사장 파문에 대한 LG측의 당황과 대응은 구 회장 때보다 더 강도가 높았다. 이른바 새로운 ‘LG가(家)의 황태자’로 구 사장이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근 LG그룹 내에서 구본준 사장의 회장 승계 가능성이 구체화되고 있다. 구 사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둘째 동생. 그는 현재 LG필립스LCD 및 LGEI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구본무 현 회장이 LG그룹 3세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뒤 10년 만에 형제간 대권승계설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그룹 내부에서 구 사장의 회장 등극 가능성은 사실 그동안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로 꾸준히 잠재해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LG카드 유동성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11월20일경이었다. 구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주)LG 지분을 채권단에 담보로 내놓겠다는 방침이 발표되면서부터였다.
LG카드의 경영 정상화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채권단이 구 회장의 지분을 모두 처분한다면 소유 주식이 전혀 없는 상황을 맞게 되는 구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현재 구 회장은 그룹지주회사인 (주)LG의 지분 5.46%를 보유하고 있다. 구 회장 다음의 대주주가 바로 구본준 사장(4.33%)이다. 이론적으로 구 회장 다음의 승계자는 자연스럽게 구 사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LG의 한 관계자는 “그것은 말 그대로 이론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현재 구 회장을 비롯한 구씨와 허씨 일가의 전체 보유 지분이 54%를 넘고, 설사 구 회장 지분을 빼더라도 49%에 이르는데, 회장으로서의 경영에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검찰의 구 사장 소환 보도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 ||
구 사장은 지난해부터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지분변동이 주목받았다. 그룹 전체 지분변동에서 그의 부각은 단연 두드러질 정도였다. 그룹 주력회사인 LG전자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갔으며 LG투자증권도 최대 주주로 올라서기도 했다.
구 사장의 부각은 화학과 전자를 지주회사로 하고 있는 LG에서 형인 구 회장과 함께 거의 쌍두체제로 가고 있다는 전망을 낳았다. 재계에서는 두 형제가 양대 지주회사를 서로 나눠 책임지는 역할 분담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소문 수준의 얘기가 일차적으로 증폭된 것은 구자홍 전 LG전자 회장이 전격 사퇴하면서 그 후임으로 구 사장이 거론되던 10월 초였다. 당시 그룹 내에서는 구 사장이 LG전자 회장으로 승진하든가, 아니면 최소한 (주)LG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만약 구 사장이 LG전자 회장을 맡게 된다면 구본무 회장은 상징적 존재로 남게 되고 실질적인 그룹의 키를 구 사장이 쥐게 될 것이란 전망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주)LG의 진입은 자연스런 대권승계를 위한 발판이 될 것이란 전망도 일각에서 대두됐다. 그러나 당시 그룹측은 김쌍수 부회장 체제를 고수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내년 초 정기인사로 미뤄둔 상황이다.
하지만 대선 비자금 파문이 터지면서 다시 구 사장 승계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구 사장 승계 시나리오가 진짜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고 수군거릴 정도로 어수선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구 회장의 지분 담보 방침이 나오면서 “후계 시나리오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냐”는 얘기마저 그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급작스럽게 검찰 소환의 불똥이 구 사장에게까지 옮겨붙자 LG측이 격앙하는 것은 당연했다. 구 사장의 전격 소환설이 ‘근거 없음’으로 일단 판명나자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순진하게 우리가 당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역정보가 계속 언론사와 검찰, 그리고 증권시장 주위를 뒤덮고 있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다른 관계자도 “시중에 우리 회사에 대해 근거없는 음해성 소문이 많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지만, 이번 구 사장 소환설로 인해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 사장 승계 가능성에 대해 그는 “아직 환갑도 안된 구 회장의 나이로 볼 때 그런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좀 이른 감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