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체사상의 대부’ 황장엽씨의 개인연구소가 서울 강남 논 현동에 설립된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어떤 연구활동을 펼칠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2000년 11월27일 국회에 출석한 황장엽씨. | ||
황씨는 지난 2001년 겨울부터 내심 ‘개인연구소’를 갖고 싶다는 뜻을 측근들에게 내비쳤다. 그렇지만 그동안 황씨와 국정원측은 공식적으로 연구소 설립에 대해 부인해왔다. 황씨의 경호 문제 등으로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
하지만 <일요신문>은 황씨의 측근들을 통해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5층짜리 개인연구소가 설립됐다는 사실을 단독 확인했다. 황씨의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 셈이다.
황씨의 최측근에 따르면 연구소는 5층 짜리 건물로 지난 4월 말 공사를 마쳤다는 것. 황씨는 지난 1997년 2월 망명 이후 국정원 내 안가(安家)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국정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로 매주 한두 차례 정도 출근해왔다.
그런데 황씨의 개인연구소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현재 생활하고 있는 국정원에서 통일정책연구소까지의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동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 또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구활동에 몰두하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밝혔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부터 공사에 착수, 최근 빛을 보게 된 셈이다.
황씨의 개인연구소는 비밀리에 만들어졌다. 공사 관계자들도 황씨의 개인연구소를 만드는지 모를 정도의 ‘비밀 프로젝트’였다는 게 황씨 측근의 말이다. 황씨의 최측근은 “처음 국정원은 황씨가 개인연구소 만드는 것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원도 황씨의 고집을 끝내 꺾지는 못했다는 것.
국정원에서 개인연구소 설립을 반대한 이유는 경호문제 때문. 황씨는 지금 국정원의 ‘특별관리대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정원 내부도 아닌 외부에서 연구소를 운영하다 보면 경호상 애로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황씨의 연구소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개인연구소여서 국정원과 무관하기 때문에 금전적 지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황씨의 개인연구소는 현재 건물만 완공된 상태다. 연구소 명칭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현판식도 별도로 갖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은밀히’ 운영할 방침이다.
그러면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 황씨의 최측근에 따르면, 황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들과 탈북 학자 4∼5명을 포함해 10명 안팎이다. 그렇지만 아직 연구원을 확정짓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이들은 주로 통일 정책과 북한 실상 및 인권 유린 실태 등과 관련된 연구에 몰두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연구소 설립과 관련해 의문이 하나 생긴다. 무슨 돈으로 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그것도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서울 강남에 5층짜리 건물을 신축할 정도였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10억원 이상 투입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 황장엽씨는 북한인권 등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사진은 망명 전 모습. | ||
황씨의 망명 당시 정착금은 2억5천만원. 여기에 “황 선생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국정원으로부터는 재정적인 지원이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순전히 황씨 주도로 땅값과 공사비를 모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황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인사들은 ‘재정적인 도움’은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디펜스포럼재단으로부터 오는 6월 황씨와 함께 방미 초청을 받은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의장은 “나는 국정원에 ‘황 선생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둬라’는 정도의 압력을 행사한 것밖에 없다”며 “(연구소 설립과 관련해) 금전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최근 황 선생의 연구소에 다녀오긴 했으나, 구체적인 위치를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보안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황씨의 또 다른 측근인 이연길 북한민주화협의회 회장도 연구소의 실체에 대해선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했다. “대외적으로 공개할 단계가 아니다”는 이유였다.
일각에서는 황씨의 연구소가 설립되긴 했지만, 당장 운영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연구원 구성이 완료돼야 한다는 것. 또한 국정원이 황씨에 대한 경호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과제다. 황씨의 최측근은 “황 선생은 연구소가 운영되면 거의 매일 출퇴근할 예정”이라고 말해 국정원도 대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황씨가 오는 6월에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당분간 연구소보다는 방미문제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황씨가 미국 방문을 마친 7월께나 연구소가 본격적으로 가동할 것이라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한편 황씨의 연구소가 탄생하기까지는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겪었다. 처음 황씨가 연구소를 설립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은 지난 2001년 12월께. 당시 황씨는 97년 자신과 함께 망명했던 김덕홍씨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주체사상 연구에 전념하고 이를 위한 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황씨와 김씨는 공개적으로 ‘결별’을 선언했다. 두 사람의 결별 사유는 ‘방미문제’ 때문. 당시 황씨는 “북한 핵·화학무기나 인권상황 같은 문제라면 지금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방미 포기 의사’를 밝힌 셈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국정원 회유설’을 제기했다. 김씨는 “국정원이 황씨가 숙원사업으로 여기는 개인연구소 건설이 필요한 10억여원의 일부를 지원하기로 약속하면서 방미를 포기토록 했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황씨의 방미를 막기 위한 ‘당근’으로 ‘개인연구소 설립’을 제시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황씨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구소 설립 흥정 운운하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며 개인연구소 설립을 위해 국정원에서 돈을 댄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국정원이나 정부에서 동전 한푼 받은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국정원도 “김씨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5월, 또다시 ‘황장엽 개인연구소’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국정원이 서울에 5층짜리 주체사상 연구소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 3억원을 지급하기로 합의서를 작성했고, 우선 착수 비용으로 2천만원을 황씨에게 주었다”고 보도했던 것.
이에 국정원측은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황씨 또한 “국정원으로부터 그런 돈을 받거나 합의서를 작성한 적이 결코 없고,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일요신문> 취재를 통해 황씨의 개인연구소가 설립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그동안 황씨와 국정원측의 주장은 ‘연막 전술’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