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균 전 나산 회장 | ||
재계랭킹 49위의 신흥재벌로 부상했던 나산그룹은 지난 98년 1월 전격 부도가 났다. 이 그룹에는 부도 이후 7천억원의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결과 이 그룹의 소유주였던 안 전 회장은 부인, 자녀 명의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은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공적자금 투입기업의 모럴해저드를 여실히 보여준 실례인 것.
대검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반장 김수남 대검 중수3과장·공자금단속반)은 지난해 12월23일 공적자금 투입 기업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공자금단속반은 지난 10월부터 나산그룹, 뉴코아그룹, 신호그룹, 동국무역, 삼익건설, 동성종건 등 6개 기업군에 대해 수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검찰은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 백영기 전 동국무역 회장, 이창수 전 삼익건설 회장 등 부실기업주 및 임직원 9명을 구속기소했다. 또 이순국 전 신호그룹 회장, 허진석 전 동성종건 회장 등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은 인물은 안병균 전 회장이었다. 나산그룹은 (주)나산, 나산종건을 주력사로 하여 나산유통, 나산클레프, 나산관광개발 등 13개 계열사로 이루어졌던 재벌로, 지난 97년 자산규모 기준 국내 49위의 중견그룹이었다.
하지만 나산은 비상장회사인 나산종건의 부실여파로 그룹 전체가 부실화되면서 지난 98년 1월 부도가 났다. 이후 나산그룹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7천억원대.
검찰 수사에 따르면 안 전 회장은 나산이 부실화되는 데 한몫한 경영상 배임행위를 했고, 부도 이후에도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는 것.
구체적으로 보면 그는 공자금 가운데 2백90억원을 임의 인출해 부동산 경락자금 등으로 쓰는 등 횡령하고, 나산유통 등 부실 계열사에 2천3백95억원의 자금을 부당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금융기관에 양도담보로 제공된 골프장 회원권(시가 2백억원 상당)을 자신의 부인 박아무개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무상 양도하는 등 배임행위를 한 사실도 밝혀졌다.
검찰에서는 “나산그룹 계열사들의 회사 서류가 수사 이전에 모두 폐기되고, 관계자들이 협조를 하지 않아 혐의를 규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안병균 회장이 가족, 측근들 명의로 설립한 위장 계열사를 통해 경매에 나온 나산그룹 부동산을 우회, 취득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해 부동산 경매대금에 대한 자금원 추적, 위장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실시해 은닉의혹이 사실임을 밝혀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일요신문>이 제기했던 나 전 회장의 부인 박씨가 대주주로 있는 B사와 관련된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입증된 것.
▲ <일요신문>은 지난해 3월 안병균씨의 재산 은닉 의혹을 보도했다. | ||
<일요신문>은 지난해 3월 안병균씨의 재산 은닉 의혹을 보도했다.
이들 회사가 경락받는데 들어간 대금 중 일부는 안 전 회장이 나산그룹 부도 이후 법정관리나 화의에 들어가 있는 계열사 자금 중 일부를 대여해준 것이라고 검찰은 발표했다.
검찰은 대표적인 사례로 나산그룹 계열사 소유였던 미씨2000 오피스텔과 포천 소재 P골프장의 회원권 무상 양도건 등을 들었다.
안 전 회장은 미씨2000 오피스텔을 낙찰받는 과정에 법정관리중인 나산클레프와 화의상태인 나산실업으로부터 각각 27억원과 6억원을 빼내 사용하는 등 횡령했다는 것이다.
나 전 회장은 또 지난해 1월 나산관광개발에서 신한종금에 담보로 제공했던 골프회원권 등 시가 2백억원 상당을 부인인 박씨가 대주주로 있는 B사의 자회사인 S사에 무상으로 넘겨주게 하는 등 배임행위도 저질렀다고 검찰은 밝혔다.
회사가 부도난 이후에도 공적자금이 지원되자 이를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검찰 수사결과 나산그룹이 부실화된 원인은 건설회사인 나산종건의 부실로 밝혀졌다. 문제의 나산종건이 부실화된 가장 큰 이유는 이 회사의 자금을 안 전 회장이 무단으로 전용했기 때문.
실제로 안 전 회장은 이 회사의 돈을 개인세금 납부에 갖다 쓰거나 상환능력이 부족한 계열사 및 자신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양호한 실적을 보이던 나산종건은 부실 계열사에 외상공여금, 대여금 등의 명목으로 수천억원씩 물리면서 결국 부도가 났다는 것이다.
검찰은 안 전 회장에 대한 수사 결과 시가 2백억원 상당의 골프회원권과 나산 전 경영진 명의로 은닉됐던 주식 매각대금 2백8억원 등 안 전 회장의 은닉재산 4백8억원을 밝혀냈다.
한편 검찰 안팎에서는 안 전 회장에 대한 수사결과 법정관리, 혹은 화의기업에 대한 법원 및 채권단의 관리와 감독에 상당부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부실기업의 관리 및 감독을 맡고 있는 일부 법정관리인 등은 해당 기업주와 짜거나 공모해 회사자금 등을 전용하는 등 배임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