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원료(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광우병 정책과 템포를 맞추겠다.”(CJ그룹 홍보실)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의 불똥이 국내 기업들에게 튀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는 물론, 유통업계까지 신년벽두부터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곳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제품의 주원료로 사용하고 있는 식품가공업체들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 중 일부에는 미국산 쇠고기가 극히 미미하게 포함돼 있지만, 이 제품의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회사 관계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식품업계의 대표주자이자 경쟁기업인 CJ와 대상이 이번 광우병과 관련해 서로 다른 행보를 취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의 상반된 행보가 유독 관심을 끄는 이유는 식품업계는 산업 특성상 큰 정책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개별 업체들이 행동을 같이 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식품 관련 문제가 생길 경우 업계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번처럼 단일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해결책을 내놓은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두 기업의 경우 전통적인 식품시장의 라이벌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광우병 문제에 대한 경영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또 CJ와 대상은 ‘사돈기업’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딸 임세령씨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4촌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부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CJ와 대상에서는 은근히 신경전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CJ그룹 관계자는 “다른 식품 관련업체가 우리와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우리가 꼭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하지만 워낙 정반대의 상황이라 여론동향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하지만 문제가 없는 제품을 전부 리콜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대상그룹이 출시하고 있는 A제품의 경우는 위험도가 높지만,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은 안심할 수 있다”며 노골적으로 대상을 비꼬고 나섰다.
대상그룹 관계자 역시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소비자들이 조금이라도 불안감을 느낄까봐 이처럼 조치했다”며 ‘소비자를 배려한 처사’임을 공공연히 들고 나왔다.
실제로 일반 소비자들은 이들이 워낙 상반된 행보를 보이자 갖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가 우선인 A사를 밀어줍시다”, “돈 몇 푼 더 벌어보겠다고 설치는 거냐”, “B사의 제품이 광우병에 더 노출이 돼 있을 것 같다”는 등의 의견들이다.
▲ 미국산 쇠고기를 쓰는 대상의 돈부리, 감치미와 CJ의 쇠고기 다시다(왼쪽부터). | ||
CJ와 대상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이유는 뭘까.
현재 대상그룹이 미국산 쇠고기를 원료로 출시하고 있는 제품은 ‘쇠고기 감치미’ 조미료와 ‘쇠고기 돈부리’, ‘보크라이스’ 가공식품 등 세 가지. 이들 제품에는 미국산 쇠고기 원료가 적게는 7%에서 많게는 30%까지 들어 있다.
대상그룹 역시 처음에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제품을 전량 수거할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상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전량 폐기’ 논의는 일부 유통업체들이 회사측에 제품철수를 요청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미국 광우병 파동이 국내에 알려진 지난달 초 일부 백화점, 할인점 등에서는 대상이 출시하는 제품의 원료에 미국산 쇠고기가 포함돼 있는 제품이 안전한가의 여부에 대해 문의를 해왔다는 것.
이런 와중에 소비자들의 쇠고기 소비가 뚝 떨어지면서 백화점, 할인점에서 재고가 쌓이자, 유통업체들은 해물, 식물성식품을 더 많이 진열하기 위해 해당 업체에 반품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대상으로서는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셈.
이렇게 되자 대상그룹 내부에서는 비상회의를 열었고, 그 결과 전량 수거라는 극단적 조치를 선택했다. 이번에 리콜하는 제품의 규모는 40억원어치.
그러나 CJ는 시중에 유통된 제품에 대해 리콜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CJ는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 향후 리콜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CJ의 종합 조미료 ‘쇠고기 다시다’는 미국산 쇠고기 원료 함유율이 4.1%다.
CJ는 ‘경쟁사인 대상의 제품과 다르다’고 주장하며 리콜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를 이용해 CJ와 대상이 출시하고 있는 제품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살코기 원료를 사용해 ‘조미료’를 만들고 있지만, 대상의 ‘가공식품’은 상대적으로 위험요인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또 이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 기간, 지역 등으로 미뤄볼 때 이번에 광우병이 발생한 지역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CJ그룹은 아직까지 ‘광우병 비상상황’으로 선포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향후에도 정부의 정책결정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각종 제품에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온 CJ와 대상이 이번 광우병 파동으로 다시 한 번 충돌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지난해에는 건강기능식품시장에 나란히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라이벌전을 벌였다. 특히 광우병 파동과 관련, 최근 일간지 광고를 통해 CJ는 ‘순 해물 다시다’를, 대상은 ‘해물감치미’와 ‘버섯감치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등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광우병 파동 이후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규제하면서 미국시장이 최대 수출처인 자동차, 반도체 관련 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의 쇠고기 수입규제 조치에 반발, 미국시장으로 들어오는 한국산 제품의 수입규제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