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bs 스페셜
태어났을 때부터 디지털 세상에서 자라온 아이들, 특히 각종 스마트기기에 적응력이 빨라 온라인 및 SNS상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익명의 세상이 더 재미있는 아이들, 이렇게 매일같이 마주하는 아이들의 스마트폰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다양하고 무분별한 내용이 오가는 디지털 세상, 그렇기에 아이들은 ‘즐겁지 않은’ 정보도 무방비 상태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다.
SNS를 사용하는 초등학생들은 “(성적인 내용이) 자꾸 떠서 자동으로 보게 되니까 뭔가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머릿속에 그게 남아서 느낌이 너무 이상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각종 SNS를 통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위험에 계속 노출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도 최근 특정 익명 채팅앱들을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했다.
익명의 낯선 이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이 채팅앱에서 아동, 청소년들이 접하기엔 지나치게 선정적인 대화들이 오간다는 것이 그 핵심. 개인정보가 남지 않아 신고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이용하여 많은 이들이 불순한 의도로 아이들과 접촉하고 있다.
친구들과 익명 채팅앱을 사용하는 한 중학생은 “저는 이런 (선정적인) 쪽지를 많이 받아봐서 이제 익숙해졌어요. 친구들도 지금은 재밌다면서 계속 하더라고요. 어떤 애는 익명 채팅앱에서 만난 남자가 안아달라고 해서 2만원 받고 안아준 적 있어요. 친구들끼리 서로 자기가 만났던 남자들 얘기하면서 ‘누가 돈 더 많이 받나’ 내기 같은 것도 하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익명 채팅앱을 사용해본 청소년들은 대부분 상대에게 ‘미성년자’임을 밝혔음에도 선정적인 쪽지들을 끊임없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벼운 용돈 벌이를 제안 받게 되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어 호기심에 만남을 시작했다고 한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성 규범은 다 무너졌다고 봐야 해요. 모든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접근해서 성을 사고팔 수 있다, 그렇게 주입시킬 기회를 준 게 이런 익명 채팅앱이예요”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익명 채팅앱을 사용해본 청소년들과 만나던 도중 자신을 ‘연결 고리’ 라고 표현하는 한 고등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일명 ‘또래 포주’로 불리는 이 아이는 또래 친구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익명 채팅앱을 통해 성 매수자와 성매매 청소년을 연결하는 것이다. 취재 끝에 SBS스페셜은 어렵게 이 아이 외에 다른 또래 포주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X톡, △톡, O톡, 이렇게 깔아서 혼자 휴대폰 세 대를 놓고 익명 채팅앱에 게시물을 쫙 올려요. 그다음에 (여자애들이랑) 성 매수자들이랑 연결해주고 (조건만남) 갔다 오면 돈 나눠 받고”
“아무래도 제가 중간에서 소개시켜준 애들은 제가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저 같은 포주를 끼고 일하는 게 안전하죠”
“익명 채팅앱이 있어서 성 매수자들을 구하는 게 더 쉬워진 것 같아요. 아저씨들이 어린 애들을 좋아해서 특히 더 어린 여자애들을 골라서 연결시켜요”
제작진과 만난 또래 포주 용희(가명, 19)와 성윤(가명, 17), 해은(가명, 16)은 이렇게 말했다.
제작진이 만난 또래 포주들은 학교에 다니며 용돈 벌이의 수단으로 또래들의 성매매를 알선하고 있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 또래 포주의 등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현재 어플리케이션을 내려받는 플랫폼들에서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익명 채팅앱은 약 400여 개로 추산된다.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이 철저하게 익명으로 소통하기에 개인정보가 남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많은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가 익명 채팅앱을 통해 발생하고 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익명 채팅앱이) 성착취 범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니 알선업자라고 봐야 되는데 그렇게 보는 법률이 없는거죠”라고 말했다.
익명 채팅앱을 통해 퍼져가는 아이들의 피해, 이를 막을 순 없는 것일까. 제작진은 한 채팅앱 개발전문가와 함께 익명 채팅앱의 운영방식을 분석해봤다.
채팅앱 개발전문가 노현우 대표는 “(익명 채팅앱을 켜보니)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님에도 방치되고 있다는 건 개발자의 부재거나, 의도한 경우거나”라고 말했다.
2019년 여성가족부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약 77.7%의 익명 채팅앱들이 사용 가능연령을 성인 등급으로 설정하여 인증을 거쳐야만 이용 가능하게끔 되어있다.
그런데 제작진이 만난 한 중학생은 만 18세로 설정되어 있는 익명 채팅앱에 아무런 문제 없이 출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앞선 채팅앱 개발 전문가의 도움으로 익명 채팅앱 개발자들이 지정하는 사용 가능연령에 대한 비밀을 함께 파헤쳐봤다.
또 제작진은 ‘15살 여중생’으로 프로필을 설정하여 취재 당시 만났던 아이들이 많이 사용했던 익명 채팅앱에 접속했다. 미성년자임을 밝혔음에도 하루 동안 접근한 성인 남성들만 218명, 그들은 모두 음란한 사진이나 메시지를 보내면서 조건만남을 제안해왔다.
제작진은 218명의 남성들 중 “지금 찾아갈 테니 당장 만나자”며 집요하게 만남을 요구했던 9명의 남성들과 마주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여러 지역에서 찾아왔다.
익명 채팅앱에서는 ‘15살 여중생’의 상세한 신체 프로필을 물어보고 사진까지 요구했던 성 매수자들, 제작진을 만나자 모두 태도가 바뀌었다.
“저 익명 채팅앱 원래 안 해요, 나이가 있는데 재수가 없어서 걸린 거지”라고 말했다.
국내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아동‧청소년 성 매수자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에서 그쳤으며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8%에 그쳤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