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멘터리 3일
여행은 가고 싶은데, 사람 많은 곳은 피해야 하는 요즘. 쉴 수 있는 개인적 공간이 필요한 이 시기에 딱 어울리는 특별한 일탈이 있으니 바로 ‘차박’이다.
차박이란 자동차에서 잠을 자면서 머무르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낚시꾼과 등산객의 문화였지만 코로나19로 언택트 상황과 딱 맞는 새로운 문화로 급부상했다.
차박을 하면 지정된 캠핑장과 텐트에서 잠을 자는 오토캠핑과는 달리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목적지가 될 수 있다.
또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행의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에 가성비를 중시하는 젊은 층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따라오다 보면 마주하는 강원 홍천강 일대.
이곳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키면서 시원한 휴식을 즐기는 ‘차박족’들을 따라가 봤다.
차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차박족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은 바로 ‘평탄화 작업’이다.
좌석시트를 접고 위에 합판, 매트, 이불 등 가지각색의 소품을 총 동원하여 평평하게 만들면 하룻밤 보금자리가 완성된다.
올해 2월 28일부터 자동차를 캠핑용으로 개조하는 것이 합법화된 이후 자동차에 다양한 튜닝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조금의 수고로움만 감내하며 ‘평탄화’작업을 거치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잠자리를 만들 수 있다.
SUV는 물론이고 초소형 경차까지도 간단한 평탄화 작업을 통해 차박을 즐길 수 있다.
차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를 차박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로 꼽는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은 빡빡하게 짜인 계획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일탈이 가능한 기회로 다가온다.
택배 기사로 고된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잠자리를 만들기 위한 특별한 장비 없이 그대로 달려오면 바로 ‘퇴박’(퇴근+차박)이 시작 된다. 낮에는 소중한 일터인 차량을 저녁에는 완벽한 휴식지로 탈바꿈하여 그야말로 1석 2조의 만족감을 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주하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은 차박 매력의 진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강을 보며 그간 쌓여있던 힘든 암투병의 한을 털어내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차박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힘을 얻어간다.
이렇게 차박족이 급증하면서 일부 초보 캠퍼들이 기본 예의를 지키지 않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건전한 차박 문화의 정착이 강조되기도 한다. 차박 후에 남겨지는 쓰레기는 자유를 즐기고 간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소중한 자연을 훼손시킨다.
홍천강 일대에선 이런 어른들이 만들어낸 고민을 벌써 행동으로 실천하는 ‘환경 지킴이 소년’도 만나볼 수 있었다.
세월은 변해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속도로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 속에 빠져들고 그 속에서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튀어 오르는 추억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는 장성한 자식들과 20여 년 전 함께 튜브를 가지고 놀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아버지는 불을 바라보며 섭섭한 마음은 비워내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줬던 자식들에게 이미 모든 것을 받았다는 진리를 깨닫는 깊은 사색의 밤을 보냈다.
울퉁불퉁한 곳을 달려와 어쩌면 길이 아닐 수도 있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다양한 길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곳에 만난 이곳에서 그들이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