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텔레콤! ‘광분’ 그 자체다.”
신년벽두부터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 및 경실련 등 각종 시민단체 홈페이지에는 이동통신회사들의 편법 판촉행위를 고발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폭주하고 있다.
놀랍게도 글을 올린 네티즌들은 다름 아닌 각 이동통신회사의 계열사 직원들. 그들은 하나같이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사 계열 이동통신회사의 ‘부당 내부거래 행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들이 대외적으로 ‘누워서 침뱉기’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계열사를 공격하고 나섰을까?
이유는 바로 휴대폰에 있었다. 2004년 1월부터 자신의 휴대폰 번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하는 이동통신회사의 요금 등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번호 이동성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각 이동통신회사들이 계열사 직원들에게 의무화시킨 휴대폰 강매 관행을 더욱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최근 공정위 등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가장 많이 고발된 곳은 LG텔레콤.
특히 올해 들어와 010 신규 고객 유치는 물론, 다른 회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을 자사 ‘손님’으로 유치해야 하는 ‘의무’가 신설되면서 ‘항명’의 움직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직원들에게 할당된 신규 휴대폰 가입자 수는 계열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인당 15대 정도로 알려졌다. 할당량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 그러나 올해는 50만원대를 호가하는 고가 카메라 폰 등이 새로이 할당 품목으로 정해져 직원들은 무척이나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LG텔레콤 직원들의 할당량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임원들은 개인당 70명, 과장 및 대리급 이하 직원들은 50명을 LG텔레콤 고객으로 신규 가입시켜야 한다는 것.
LG텔레콤의 한 직원은 “이 때문에 LG텔레콤 직원들이 최근 매일 자정을 넘겨서까지 근무하고 있다. 솔직히 말이 50명이지 실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번호 이동성 제도가 시행된 이후 휴대폰을 한 대도 팔지 못한 직원도 상당수 있다. 직원들도 속으로 불평, 불만이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LG그룹 계열사 직원은 “대다수 LG 직원들은 가개통된 단말기를 2∼3대 이상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심지어 LG그룹 계열사의 일부 경비원들은 지난해 019로 요금제를 통일하고 단말기 교체 사실 여부를 회사측으로부터 확인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폰 가입비를 직원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직원들에게 할당된 휴대폰은 가입비는 물론, 배터리 등을 별도 구매해야 하는 상품. 더욱이 휴대폰을 제값에 팔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 ‘가입비 면제’라는 꼬리표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워낙 고가 휴대폰이 늘어난 탓에 아예 웃돈을 얹어주고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지난 1월17일 경실련 자유게시판에 ‘anti-LG’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한 LG 직원은 “가입비 3만원은 우선 직원들이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측에서는 2만5천원만 돌려준다. 직원들이 대당 5천원씩을 손해보는 셈”이라며 해마다 받는 휴대폰 강매 스트레스 때문에 골치를 썩는다고 호소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계열사는 가입비를 환불해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번호이동성제도가 시행되자 LG텔레콤 계열사 직원은 할당된 만큼의 고객을 끌어오느라 분주하다. 사진은 LG텔레콤 매장. | ||
‘동감’이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네티즌은 “LG화학 생산직에 근무하는 시아주버님도 나의 휴대폰을 LG상품으로 바꾸라고 재촉하고, 모 계열사에 근무하는 아주버님도 20명의 타 회사 고객을 끌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들의 불만도 끊이질 않는 상황. 이미 지난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PCS폰을 판매한 LG텔레콤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6억4천만원을 부과한 바 있음에도 하청업체들의 ‘울며 겨자 먹기’식 회원 가입 사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LG전자의 한 하청업체 직원은 ‘일반시민’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해 “각 사업부(TV, LCD, PDP)별로 강매를 요구하는 통에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입을 하고야 말았다. 그때 산 휴대폰 50대가 그대로 창고에서 방치되고 있다. 공장에서 하루하루 일하는 서민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글을 공정위 홈페이지에 띄웠다.
‘중소기업’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하루에도 4∼5회 이상 LG 직원들에게서 LG휴대폰을 사서 회원 가입하라고 연락이 온다. 일을 못할 지경이다. 심지어 단말기 바꿀 사람이 없다고 하면 회사 돈으로 협조 구해서 단말기 보조금까지 받아내라고 조언까지 한다. 중소기업이 언제까지 ‘봉’이 되어야 하나”라고 말했다.
휴대폰 강매뿐이라면 차라리 속 편하다. 번호 이동성 제도가 시행되면서 타사 요금을 이용하는 고객을 자사 고객으로 유치하는 작업도 그룹 직원들의 몫이기 때문.
특히 LG는 2004년 7월까지 SK텔레콤의 고객을 최대한 끌어 당겨야 하는 급박한 상황. 전 직원이 휴대폰을 팔면서 신규 고객을 모집하고, 타사 서비스 이용 고객의 마음을 돌려 단말기를 LG품목으로 교체토록 하는 ‘WIN-WIN’전략의 ‘방탄막이’로 내몰린 셈이다.
LG계열사의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이번 강매건과 관련한 얘기를 들었다는 네티즌 최아무개씨는 “계열사 임직원이 무슨 영업사원이라도 되냐”며 “친구의 말에 따르면 회사측은 그룹 인트라넷을 통해 누가 몇 명의 고객을 LG텔레콤으로 끌어 들였는지 볼 수 있게 해놓고 있으며 실적이 저조한 사원에게는 인사고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식으로 압박을 가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최씨는 “LG그룹 비서실에 근무한 바 있는 LG텔레콤의 모 임원 때문에 그룹 내부 직원들을 상대로 한 휴대폰 강매 관행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생긴다”고 말했다.
그동안 쉬쉬하던 직원들 사이에서도 LG텔레콤측의 휴대폰 강매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LG카드 사태에 이어 또 다른 파국이 엄습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한몫 거들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휴대폰 강매는 비단 LG만의 일이 아니다. KTF의 모회사인 KT 직원들은 개인당 타 회사 고객 30명을 이동시키면서 신규 모집을 대행하고 있다. 최근 두 회사에 일부 고객을 빼앗긴 SK텔레콤 역시 그룹내 직원들과 지난 연말 입사한 신입 사원들을 대상으로 모종의 지시를 하달해 ‘고객 붙들기’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LG그룹측은 최근 텔레콤측의 휴대폰 강매건과 관련한 내부 직원들의 연이은 고발에 대해 아직 공식적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LG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공정위나 각종 홈페이지에 올라온 고발내용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동통신회사간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만큼 직원들이 ‘영업력 확충’이라는 목표 의식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