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19일 이건희 회장(왼쪽) 등 전경련 회장단과의 오찬에 앞서 악수한 뒤 돌아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특히 삼성이 한나라당에 건넨 추가 채권의 향방에 검찰의 수사력이 집중되고 있던 시점에 삼성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등 수뇌부가 모두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밝혀져, 출국배경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월19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전경련 회장단과의 오찬 간담회 직후인 이날 저녁 늦게 전세기편으로 미국 호놀룰루로 출국한 바 있다. 그러나 한동안 호놀룰루에 머물던 이 회장은 이학수 부회장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기 직전 모처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검찰은 삼성그룹의 추가 대선자금을 밝혀낸 이후 김인주 구조본 사장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그러나 구조본부장인 이학수 부회장은 지난 1월28일 이건희 회장 면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여서 사전에 검찰조사 내용을 알고 출국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이학수 예고된 출국?
삼성은 지난달 13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 본부장을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그룹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삼성 그룹 사장단 인사는 무엇보다 구조조정본부 위상 강화가 특징으로 꼽혔다.
특히 대선자금 제공 등으로 검찰의 수사가 예고돼 있었고, 지배구조 개선 등 정부 당국의 직간접적인 구조본 축소 압력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구조조정본부 위상을 강화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는 점은 이례적으로 해석됐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의 부회장 승진 외에도 재무팀장인 김인주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점이 눈에 띄었다. 김인주 사장은 승진과 함께 구조조정본부 차장을 맡았다.
▲ 이학수 삼성 구조본부장(부회장) | ||
지난 1월28일 미국으로 출국한 이학수 부회장의 해외출장이 장기화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측은 “차장제 부활은 적임자가 없어 공석으로 남겨 두었던 것을, 이번에 김인주 사장이 직제에 맞게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차장에 임명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 미국 회동의 배경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1월19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전경련 회장단 오찬 간담회장에서 LG그룹 구본무 회장을 향해 “앞으로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자주 나오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정작 이 회장 본인은 2월5일 있었던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불참, 청와대 오찬 회동 당시 구본무 회장에 ‘참석’을 주문했던 진의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당초 이 회장은 2월5일 전경련회의 참석을 통보했으나, 미국 일정이 늦어지면서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회의에 참석을 통보했다 불참하는 대신, 이 회장은 이학수 부회장을 급히 미국으로 불러들여 그 배경에 관심의 모아지고 있다.
특히 그 시점이 앞서 언급한 대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삼성에서 한나라당에 건네진 채권’의 향배에 수사력이 집중되던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결국 이학수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만나기 위해 출국한 뒤, 검찰은 삼성이 한나라당에 건넨 것으로 확인한 바 있는 1백12억 채권과 40억원 현금 외에, 추가로 1백70억원의 채권이 더 건네진 것을 밝혀냈다.
■ 대선자금이 전부인가?
이건희-이학수 미국회동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은 이헌재 부총리로 대표되는 제2기 경제팀을 구성했다. 지난 98년 IMF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 대기업 빅딜과 금융권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대우그룹을 해체하는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헌재 부총리의 재기용은 재계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4월 총선 이후 뚜렷한 정치·사회적 이벤트가 없다는 점에서 집권 1년차 ‘정치개혁’을 화두로 삼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 이후 ‘경제개혁’을 화두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재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삼성의 경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이재용 상무에 대한 편법 증여·상속문제가 법정공방으로까지 비화돼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건희-이학수 삼성 두 수뇌부의 미국 회동은 각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선자금 문제를 포함,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 이재용 체제로의 연착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는 것.
최근 재계 일각에서 ‘이건희-이재현 미국 회동설’이 흘러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삼성그룹 전반에 걸친 소유 지배 구조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소유지분 정리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과 CJ 이재현 회장이 만나 담판을 벌였다는 입소문이 빠르게 재계에 퍼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삼성그룹 소유지배구조 문제는 이학수 부회장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부회장은 ‘구조조정본부장’으로서 그동안 크고 작은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 문제에 깊숙이 관여해왔기 때문이다.
■ 삼성측 입장
한편 삼성측 입장은 이와 같은 재계의 해석과 사뭇 다르다. ‘의례적인 해외출장일 뿐’이라는 게 삼성의 공식 입장이다.
삼성 정원조 상무는 “이 회장의 경우 매년 일년의 절반 정도는 해외에 머물러 왔다”며 “이번 해외출장도 오래 전부터 준비돼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학수 부회장의 출국과 관련해서도 “회장님께서 외국에 계실 때면, 중간 보고 등을 위해 출국하는 일이 있어 왔다” “이번 해외출장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의 귀국 시점과 관련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