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상징성이 큰 광주시장 후보 경선을 둘러싼 잡음과 논란이 지속될 경우 전체 선거전략에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재심 요청에 대한 본격적인 심사절차에 착수하는 등 파문 차단에 주력하고 있는 분위기다.
재심 신청을 넘어 검찰 수사와 가처분 신청으로 비화되고 있는 광주시장 후보 경선 논란의 핵심 쟁점은 1위를 차지한 강 의원 측이 ‘불법여론조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됐는지 여부다. <일요신문>은 강 의원 측이 개입된 정황이 담긴 진술서 및 관련 녹취록 사본을 단독 입수했다. 이 문건은 현재 민주당 재심위와 검찰 측에도 건네진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선거 의혹은 광주시장 경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불거졌다. 특히 4월 7일 오후부터 3일간 실시된 전 당원 전화면접 여론조사 시점에 맞춰 지역 언론사가 의뢰한 R리서치의 ARS여론조사가 4월 8일 오전에 집중적으로 실시된 것으로 드러나 불공정 경선 시비가 일기 시작했다. 민주당 당원여론조사와 비슷한 문구로 ARS여론조사를 실시해 지지층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게 논란의 골자였다. 특정 후보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조사를 실시해 이들이 정작 당의 광주시장 후보를 뽑는 당원 여론조사를 외면하거나 무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광주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한 강운태 이용섭 정동채 후보 측은 경선 당일까지 서로 ‘불법여론조사’ 배후설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경선 후유증은 어느 정도 예고된 상태였다. 불법선거 시비로 경선이 얼룩질 조짐이 일자 민주당 선관위는 경선 하루 전(9일)에 광주지방검찰청에 불법 ARS여론조사 의혹에 대해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선 결과에 따른 후폭풍이 어느 정도 예고된 상황에서 1위(강운태)와 2위(이용섭)의 득표율이 불과 0.45% 포인트라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갈리자 불법선거 논란은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강 의원은 경선 당일날 시민공천배심원단 평가에서는 전체 유효투표 298표 중 86표(28.9%)로 3위에 머물렀지만 당원 여론조사에서 46.7%를 얻어 평균 37.8%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이 의원은 배심원단 평가에서 124표(41.6%)로 1위를 했지만 당원 여론조사(33.35%)에서 밀려 평균 37.35% 득표율로 석패했다.
이 의원은 경선 다음날(11일) 기자회견을 열어 “모 언론사가 지난 8일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중앙당이 실시한 당원 여론조사와 유사한 조사를 실시해 지지층이 혼동을 겪었다”며 “문제의 여론조사에 강운태 의원 측이 관련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경선 불복을 선언했다. 이 의원은 이어 “중앙당 1차 조사 결과 불법 ARS여론조사는 2시간여 사이에 광주지역 민주당원 2000샘플에 대한 접속이 시도됐다. 이 가운데 1000샘플이 접속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광주시장 후보 경선에서 1위와 2위 간 격차가 0.45% 박빙의 승부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불법 ARS여론조사는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 강운태 의원 측이 개입된 정황이 담긴 문건들. ① H 일보 사장의 진술서. ② B 씨의 실명이 기재된 강 의원 측의 참관인 신고서. ③ 리서치 업체 대표와 정동채 전 장관 측 인사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 ④ B 씨의 명함. |
이처럼 광주시장 경선을 둘러싼 불법 논란이 확산되자 1위를 차지한 강 의원 측이 불법여론조사에 개입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의원 측과 정 전 장관 측은 강 의원 측이 불법여론조사에 직접 개입된 정황이 담긴 결정적인 증거 자료와 문건을 확보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관련 자료들을 중앙당 재심위와 검찰에 넘긴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요신문>은 민주당 재심위에 접수된 관련 자료 중 일부를 입수했다. 특히 여론조사를 주도한 광주지역 H 일보 A 사장의 진술서 및 여론조사 기관인 R리서치 K 대표와 정 전 장관 측 인사가 나눈 녹취록 사본에는 강 의원 측이 불법여론조사에 개입된 정황이 담겨져 있어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4월 8일 자필로 기록된 A 사장 진술서에는 “지난 3월 25일 H 일보의 실질적 사주인 김 아무개 회장이 사장실로 찾아와 여론조사 전문기관과의 계약서를 내보이며 ‘강운태 예비후보 측이 모든 관련 경비를 김 회장에게 직접 지불하는 조건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해왔다’는 내용을 김 회장에게 직접 들었다”고 적시돼 있다.
4월 8일 R리서치 대표실에서 나눈 대화 내용(4월 12일 녹음 녹취록)에는 강 의원 측 핵심 참모로 활동했던 B 씨가 K 대표에게 당원명부를 메일로 전달한 내용 및 B 씨가 K 대표와 접촉시 ‘H 일보 국장’이라고 직함을 사칭해 소개한 뒤 여론조사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처럼 불법여론조사 논란이 확산되자 강 의원은 4월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의혹들을 전면 부인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강 의원은 불법여론조사 의혹과 관련해 중앙당이 재심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당연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특히 ‘중앙당에서 재심을 받아들여 재경선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 승부는 끝났는데 어떻게 다시 하느냐”고 일축했다.
‘강 의원 캠프가 불법여론조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고, 캠프 관계자 실명도 거론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적 없다”고 부인했다. ‘이번에 불법여론조사를 실시한 R리서치에 조사를 의뢰한 적은 있느냐’는 질문에는 “후보는 관여 안 한다”고 전제한 뒤 “한 업체가 아니고 여기저기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불법여론조사를 주도한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B 씨의 실체 및 역할론을 둘러싼 진실 공방전도 가열되고 있다. 강 의원 측은 “B 씨는 정치권에 있다가 지난달 중순부터 여론조사 의뢰 언론사의 중역실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며 “(강운태) 선거 캠프 인사와 대학 선후배 관계로 캠프에 드나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명함을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B 씨가 지난 7∼9일 실시된 민주당 당원전수 여론조사의 강 의원 측 참관인으로 이틀 동안 참관했다”며 “‘강운태 의원 ○○부본부장’으로 쓰여진 명함을 다른 후보 측 참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으며, 지난 8일 ARS여론조사 문제가 불거지자 잠적했다”고 밝히면서 B 씨가 강 의원 캠프 핵심 인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B 씨의 명함 사본에는 ‘국회의원 강운태 ○○부본부장’으로 명시돼 있었고, 강 의원 측이 추천한 참관인 명부에도 B 씨의 이름이 등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시장 경선을 둘러싼 잡음과 논란이 재심을 넘어 검찰 수사로까지 확전될 조짐이 일자 민주당 중앙당은 광주 현지에 실사단을 파견하고 본격적인 재심 절차에 돌입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자체 진상조사와 검찰의 수사결과 등을 종합 검토해 불법이 드러날 경우 경선 결과에 관계없이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장 후보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2002년 6월 지방선거 때 당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이정일 후보가 경선 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경찰에 출두하는 등 내홍이 심화되자 이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고 박광태 현 광주시장을 전격 투입한 전례가 있다.
재심과 검찰 수사, 경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으로 새 국면을 맞고 있는 광주시장 경선 논란은 과연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까. 또 불법선거 정황을 담고 있는 관련 문건들이 검찰 수사 및 중앙당의 재심 과정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