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에 걸친 현대가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연이 이제 끝나는 것일까. 아래 사진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이 1998년 10월 김 위원장과 함께 촬영. 위 사진은 2007년 11월 현정은 회장과 딸 정지이 전무 기념촬영. |
김 위원장도 자신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김정은에게 권력승계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김정일 비자금’과 별도로 개인 비자금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후계자로서의 초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원활한 후계구도 완성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 성격이 짙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매년 2억~3억 달러 정도의 비자금을 조성하면서 해외 은행 등에 50억 달러(한화 5조 5000억 원 상당) 안팎의 비자금을 은닉해 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은도 후계자 수업과 맞물려 개인 비자금 조성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은이 은밀히 조성하고 있는 비자금 규모와 방법 등 그 실체를 여러 요로를 통해 추적해 봤다.
김정은의 비자금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절대 권력자인 김정일 위원장의 비자금 실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비자금 규모 및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김 위원장이 극심한 경제난과 외화난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매년 2억~3억 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해 호화 생활과 측근 관리 등에 사용하고 나머지 비자금은 해외 은행 등에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외신들은 김 위원장이 해외에 은닉한 비자금 규모는 40억~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해외 은닉 재산은 과거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이나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처럼 스위스나 룩셈부르크 등 유럽 은행 계좌를 통해 숨겨놨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3월 14일자 보도를 통해 김 위원장이 유럽 은행 계좌에 40억 달러를 숨겨두고 있다고 폭로했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 미사일 기술 거래, 마약 밀매, 보험사기, 수용소의 강제노동, 외국 통화 위조 등을 통해 비자금을 마련했고, 과거 돈세탁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기 전까지는 대부분 스위스 은행에 보관하고 있다가 돈세탁으로 유명한 룩셈부르크로 옮겨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자금과 비상시국에 대비한 망명 자금으로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 이후부터 측근에게 줄 선물 마련 등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39호실’이란 조직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39호실’은 형식적으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재정경리부 산하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김 위원장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당은 물론 내각이나 어느 기관에서도 손을 못 대는 ‘성역’으로 분류돼 있다. ‘39호실’의 세부적인 조직이나 규모는 북한 내부에서도 비밀로 되어 있어 특정 사건이나 활동에 의해 노출된 것 외에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한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39호실’을 통해 각 기관별 충성자금을 비롯해 특산물 수출, 호텔·외화 상점 운영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이 무기 수출과 위조지폐·가짜담배·마약 밀매 등으로 매년 벌어들이는 1억~2억 달러 중 상당액도 김 위원장의 비자금으로 유입된다고 한다.
일부 대북 소식통은 “금강산관광 등 현금으로 지급되는 남북 경협 자금 중 일부도 김 위원장의 비자금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금강산관광 요금을 송금받았던 대성은행과 조광무역 등이 김 위원장의 비자금 전담부서인 ‘39호실’ 산하라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해 독제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편 비상사태를 대비해 온 만큼 후계자인 김정은 또한 김 위원장의 비자금 조성 및 활용을 답습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 위원장도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목한 만큼 김정은이 단기간에 당과 군부를 장악할 수 있도록 물밑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자신의 경험상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측근들의 충성 유도를 위한 선물 공세가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선 비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비자금과는 별도로 김정은이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 창구와 방법을 전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해외 비자금 관리인 역할을 해 온 북한 이철 스위스 대사가 지난 3월 말 귀국한 배경에는 김정은 후계 구도 및 비자금 조성 사업과도 관련이 없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 ‘로열 패밀리’의 유학생활을 전담했던 이 대사는 김 위원장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대사는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시절인 1998년 8월~2000년 가을까지 스위스 베른 외곽의 3층짜리 연립주택에서 김정은과 함께 생활하며 그의 후원자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 소식통들은 김 위원장이 핵심 측근인 이 대사를 소환해 김정은의 후계 구도를 지원하는 동시에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서도 역할을 맡겼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김정은은 얼마 전부터 별도의 비밀 조직을 구성해 비자금 조성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외화벌이 회사를 만들어 은밀하게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들은 “‘39호실’을 통해 상납받고 있는 각 기관별 충성자금 중 일부가 최근 ‘후계자를 위한 별도의 충성자금’ 명목으로 김정은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했다.
▲ 맨 위부터 완공 전 금강산휴게소, 금강산호텔, 외금강호텔. |
실제로 북한은 4월 29일 현대아산이 소유한 금강산의 주요 관광 시설에 대해 동결 조치를 집행했다. 북한은 또 4월 27~28일 온정각 동·서관, 온천장, 금강산호텔 등 4곳에 입주한 25개 판매업체와 골프장, 현대아산 소유의 콘크리트 혼합장, 눈썰매장, 해수욕장 등에 대해서도 동결 조치했다. 이산가족면회소와 소방서, 온천장, 문화회관, 면세점 등 정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소유한 부동산 5건에 대해서는 ‘몰수’ 딱지를 붙였다. 현대아산 등 민간 기업들이 금강산 현지에 쏟은 시설 투자 비용은 약 3600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정부당국과 현대아산 등 민간기업들은 북 측의 일방적인 조치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지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과의 계약에 대해 국제법 등을 통한 구제 방법이 마땅치 않은게 현실이다.
북한이 현대아산 등이 소유한 금강산 주요 관광시설에 대해 동결 내지는 몰수 조치를 취한 것은 사실상 금강산사업 중단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북한이 남한과의 금강산사업을 중단하고 중국 등 제3국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새롭게 체결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남북관계 악화로 상당기간 중단돼 온 금강산관광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 관련 시설을 중국 기업에 임대 또는 매각하는 작업을 은밀히 추진해 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보당국 일각에서는 북한의 금강산사업 중단 배경에는 김정은의 후계 구도 및 비자금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북한이 중국 등 제3국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재개할 경우 3600억여 원에 달하는 관련 시설을 임대 또는 매각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특히 후계자로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아야 하는 김정은이 이 사업을 주도할 경우 관광사업을 통한 군비 조달 및 ‘비자금 조성’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이 금강산사업 중단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면에 김정은 후계구도 및 ‘비자금 조성’ 흑심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은 순탄하게 북한 권력을 승계할 수 있을까. 또 후계자 수업과 맞물려 비자금을 어떤 방법으로 얼마만큼 조성할 수 있을지도 ‘김정은 후계 구도’를 바라보는 또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