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남, 장성택, 김평일 |
사실 지난 5월 3일부터 7일까지 4박 5일의 일정으로 이뤄진 김 위원장의 방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사는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3남 김정은의 동행 여부였다. 북한은 아직까지 후계자 공식발표를 하지 않고 있지만 국내외 언론들은 김정은을 사실상 ‘포스트 김정일’로 확신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후계자가 김정은이 아닐 수 있다는 색다른 주장이 제기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평양을 자주 오가며 북한 고위관계자들과 수시로 접촉을 해온 A 씨는 자신이 겪거나 측근들로부터 전해들은 정보·정황들을 토대로 ‘김정은을 섣불리 후계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A 씨는 오랜 세월 북한과 중국 등을 오가며 선교활동과 대북지원 활동을 전개해온 인물이다. 대북 소식에 정통한 몇 안되는 인물로 꼽히고 있는 A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복잡한 북한 후계구도를 들여다 봤다.
“국내 언론들은 김정은을 ‘포스트 김정일’로 확신하고 있지만 이는 북한 내부상황을 몰라서 하는 얘깁니다. 제가 들은 정보와 북한 고위통과 접촉한 이들의 얘기들은 상당히 다릅니다. 김정일이 딴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후계구도에서 김정남을 배제시켰다고 보는 것은 큰 착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의 후계자에 대해 섣불리 단정짓지 말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다각도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A 씨는 북한의 후계구도를 정확히 보기 위해서는 김정일-장성택-김평일의 삼각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북한 고급정보들을 접하는 측근들로부터 들은 북한내부 정황들에 근거해 볼 때 현재 대내외적으로 후계자로 명명되고 있는 김정은 대신 김정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유분방한 성격과 행동거지로 인해 그간 여러 차례 구설에 휩싸이며 ‘미운털’이 박힌 김정남은 2001년 5월 1일 위조여권으로 일본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후계구도에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김정남은 태국과 마카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데 김정은의 후계자 내정설이 확산된 2009년 1월 이후 북한 땅을 밟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A 씨는 최근 조총련계 고위 간부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를 털어놨다. ‘김정은은 쇼’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A 씨는 “김정남은 김정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지지층과 파워를 갖고 있다”며 “북한에서 ‘꼭대기’로 불리는 노동당 장성택 행정부장이 김정남을 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기도 한 장 부장은 13년 동안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가 “장성택이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해준다면 김정은의 승계는 확고할 것”이라고 얘기했을 만큼 후계구도를 결정짓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A 씨를 비롯한 북측 소식통들은 “청풍사건 때 가라앉았던 장 부장은 김정남을 끌어안고 행정부장으로 재부상했으며, 결국 북한의 ‘넘버2’에 올랐다. 장 부장의 속마음은 김정은이 아니라 자식처럼 키운 조카 김정남에게 향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북한전문가인 시게무라 도시미쓰 와세다대 교수도 “요즘 북한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부장과 그 남편 장성택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김경희가 김 위원장의 둘째부인인 고영희가 낳은 아이들(정철, 정은)을 싫어한다”고 언급, 김정은의 후계자 낙점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와 관련 A 씨는 “추후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본격화되더라도 주민들의 충성이나 절대적인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향후 북한 내 반체제 소요를 확산시키거나 쿠데타가 일어날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얘기가 조총련쪽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놀라운 소식은 김정남을 비밀리에 지지하고 있는 인물이 다름 아닌 김 위원장이라는 정보다. A 씨는 자신이 수집한 정보와 측근들의 얘기를 종합해 “‘탕아’ 김정남을 태국으로 내보낸 것도 북한 내부세력으로부터 김정남을 보호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복심이 투영돼 있다. 김 위원장이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 지금도 김정남을 비호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이는 껍데기를 내세워 실제로는 김정남을 보호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김정일은 김정남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재 김정은 부각과 관련 북한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는 조총련계 인사들은 ‘대외적인 쇼’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A 씨는 조총련계 관계자들의 증언을 빌려 김정남이 즉시 후계자로 지목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전했다. 3대 세습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야 할 북한이 대외적인 관계를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조총련계 관계자 및 그들과 수시로 접촉해 내부상황을 전달받은 인물들에 따르면 후계구도는 북한 내부상황 및 대외적인 관계까지 고려해 상당히 지능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김 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폴란드 주재 북한대사다. 현재 일본 조총련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김평일을 일단 내세우고 차후에 김정남이 자연스레 후계자로 들어앉는다”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김평일의 집권을 10년 정도로 본다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20년이 넘는 오랜 해외생활에서 쌓은 풍부한 연륜과 경험을 갖고 있는 김 대사가 위기에 처한 ‘북한 구하기’에 적격이며 일단 최악의 상황에서 탈피한 후 김정남을 왕좌에 앉힌다는 시나리오다.
김일성 주석을 가장 빼닮은 인물로 알려졌던 김 대사는 김 위원장과의 후계경쟁에서 밀려나면서 권력의 핵심부로부터 멀어졌다. 하지만 현재 조총련 관계자들의 입에서 김 대사가 종종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실제로 얼마 전 북한군 중좌 출신 탈북인사는 ‘김 대사를 불러들여 정권을 이양할 움직임도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08년 9월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장성민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북한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들었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의 묵인 하에 후계 구도에 대한 작업이 매우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경희가 김정남을 매우 좋아하고 있고, 여기에 장 부장이 사실상 김정남의 후계 수업과 옹립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평일과 김정남의 관계도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이 김 주석의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부터 장 부장이 김 대사를 지지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외교관으로 눌러앉기에는 아까운 능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 대사는 대내외적인 반감없이 김정남을 ‘포스트 김정일’로 정착시키기에 가장 무난한 인물이라는 얘기가 북한 핵심인사들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후계자 선정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는데, 특히 원자바오 총리와 김정남의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돈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자바오가 얼마나 김정남을 아끼고 있는지 지난해에는 ‘김정남을 죽이면 모든 후원을 끊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는 증언도 있다. 실제로 북-중 소식통에 정통한 한 인사는 지난해 김정일과 원자바오가 면담할 당시 원자바오가 마카오에 있던 김정남에게 직통전화를 걸어 불러들인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들은 이구동성으로 김정남은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후계자 내정이 회자되던 지난해 측근에게 “우리 아버지는 살아있을 때 후계자 문제를 결정 안할 분이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데…”라는 묘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의 ‘속뜻’을 어느 정도 눈치챈 김정남의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김 위원장이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사망할 경우 후계구도를 진두지휘할 사람이 장 부장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일 가능성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소위 ‘외국물’을 많이 먹은 김정남은 상당히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또 한번 놀라게 되는데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매력이 있고, 또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후계자의 자리에 앉게 될 경우 북한 내부에 상당한 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현재 북한 내부에서 그를 무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남이 사실상 북한의 돈줄을 틀어쥐고 있는 인물로,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을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A 씨의 주장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북한 후계자 문제는 한마디로 ‘예측불가’라는 입장을 보였다. “(A 씨의 주장은) 북한의 복잡한 상황과 정황 등을 근거로 추론 가능한 하나의 시나리오로 보면 된다. 김 위원장의 속내를 모르기 때문에 허무맹랑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누가 후계자가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를뿐더러 학자들의 추론과 전혀 다른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전문가들 역시 “김정은을 포스트 김정일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북한의 후계구도와 김정은 후계자설에 대한 여러 보도들은 사실관계와 다른 ‘소설’이라는 게 북한의 공식입장”이라며 “김정은을 후계자로 확정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3대 세습’이라는 방향은 잡힌 것으로 보이지만 후계자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다. 누가 배제됐고 누가 정해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김정일 본인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온갖 정황들을 토대로 가능한 후계자 리스트와 후계 시나리오를 짜보자면 더없이 복잡해진다. 아직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내 생각으로는 세 아들을 테스트하는 과정인데 현재 정은이 조금 높은 점수를 받아 두 형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배제된 듯 보였던 정남이 다시 부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것은 정은을 포스트 김정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정은이 내정됐다고 해도 내정일 뿐 공식화하기 전까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북한 후계자 문제에 대해 정답은 없다”며 “김 위원장이 공식화할 때까지는 수많은 시나리오와 추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연구위원은 “누가 배제되고 누가 유력하다고 보는 것은 학자들의 추론이다. 정남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으로 내보내고 정은을 일단 내세웠다는 주장도 하나의 가능한 가설이지만 김정일의 속내를 모르는 한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후계자 결정은 순전히 김정일 마음이다. 북한은 법적 근거나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가 아닐뿐더러 후계자 선임에 대한 법적장치조차 없다. 김 위원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북한 정국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김정남을 배제했다고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김정은으로 확정할 수도 없다. 진짜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김 위원장만 알 것이다. 3대세습 체제로 갈지조차도 미지수다. 세습으로 갈 수도 있지만 실력 있는 군부나 이복동생, 그밖의 인물 등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는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장성택이나 김평일 등 주변인물들이 거론되는 것 역시 수많은 시나리오 중 하나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포스트 김정일’은 과연 누구일까. 철저히 베일에 싸인 채 현재 후계자로 명명되고 있는 김정은일까, 아니면 후계자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였던 ‘탕아’ 김정남일까. 북한이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지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일의 진짜 속내를 둘러싼 대내외적인 추측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