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당선자, 한명숙 전 총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검찰에 따르면 전체 광역단체장 16명 가운데 9명이 현재 선거법 위반 등으로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당분간 수사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이 선거 전 수사해왔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나 강성종 민주당 의원이 연루된 신흥학원 사건 등의 수사 재개 여부도 관심이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여야 혹은 당락 여부와 관계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서초동발 사정태풍은 당분간 정치권 전반을 뒤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권을 또다시 격랑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검찰 수사의 칼끝을 쫓아가봤다.
검찰의 향후 행보 가운데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역시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관련 수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는 경기도 고양에 있는 건설업체 H 사 대표 한 아무개 씨가 한 전 총리에게 수억 원의 불법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의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 1심 선고가 내려지기 하루 전 전격적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해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데다 별건 수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검찰은 사실상 동력을 상실하며 속도조절에 들어갔었다.
검찰은 선거 기간 동안 한 전 총리에게 겨눈 칼날을 잠시 거둔 대신 주변 수사를 통해 나름대로 자료를 축적해왔다. 건설업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남동 모 은행 전 지점장이 건설사에게 불법 대출을 해줬다는 혐의로 지점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는 전직 지점장 개인 비리에 국한된 것이지만 수사진이 관련 수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한 전 총리의 측근이었던 김 아무개 씨가 건설업체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사용한 내역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건설업체 직원들로부터 신뢰할 만한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이후 절치부심하며 이번 지방선거가 빨리 끝나기만을 벼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끝나자 수사를 재개할지 여부에 대해서 검찰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한 전 총리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예상외로 높았다는 것이 득표율로 드러나면서 검찰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낙선한 한 전 총리를 또다시 법정에 세울 경우 자칫 강한 역풍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 재개는 검찰 수뇌부의 자체적인 판단보다도 여권 수뇌부와의 교감이 어느 정도 이뤄진 후에야 결정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 주변의 시각이다.
오히려 검찰은 이번 광역단체장 당선자들의 선거법 위반 수사에 역량을 집중할 태세다. 실제로 대검은 선거 다음날(6월 3일) “2일 실시된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광역단체장 가운데 9명, 기초단체장 당선자 62명, 교육감 당선자 3명 등 74명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광역단체장 당선자 9명 가운데 1명은 이미 기소해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고, 8명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기초단체장 당선자 중에는 8명을 기소했고, 54명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대검은 “당선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수사력을 집중해 1개월 안에 모두 마무리 짓도록 전국 검찰청에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 송영길 당선자, 안상수 시장. |
선거 기간에 쟁점화됐던 오 당선자 친인척의 내곡동 투기 의혹에 대한 수사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민주당 측은 선거 기간 중에 “오세훈 후보가 시장시절 보금자리지구 지정을 제안한 내곡지구에 오 후보의 처가 쪽 땅이 대거 포함돼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 5월 26일 한 전 총리 측 임종석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그린벨트였던 내곡지구 안에 오 후보 처가가 보유한 106, 111번지 땅 4443㎡(1344평)가 보금자리 2차 지구에 포함됐다”며 “확인결과 보상금은 3.3㎡(1평)당 400만~500만 원에 육박한다”고 폭로했다. 임 대변인은 이어 “이 땅은 오 후보의 배우자를 포함해 처가 쪽 5명이 공동소유하고 있으며, 총 보상비용은 5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측의 이런 주장에 대해 오 당선자 측은 해명자료를 통해 “해당 토지는 오 후보가 취임하기 전인 지난 2006년 3월, 이미 국민임대주택 예정지구로 지정되어 편입이 추진됐고, 지난해 4월에 관련법이 개정됨에 따라 보금자리 주택지구로 편입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문제에 대해 양 후보 간 공방이 치열했으나 천안함 사건 발표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 당선자가 관련 내용을 보도한 언론 등을 검찰에 고발한 만큼 검찰이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살펴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선거 기간 중 폭로전이 가장 뜨거웠던 인천시장 선거와 관련해서도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현재 민주당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뇌물수수’ 혐의로 평화민주당 백석두 후보 등에 의해 대검찰청에 고발된 상태다.
안상수 인천시장 또한 정치권을 중심으로 인천시장 재임 시절 각종 비리 의혹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어 퇴임 후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특히 민주당은 안 시장이 연관된 의혹들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까지 TF팀을 파견했으며 어느 정도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운태 광주시장 당선자의 상황도 좌불안석이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포착된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고 있기 때문이다(<일요신문> 936호 보도). 광주시장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의 핵심은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강 당선자 측이 ‘불법여론조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됐는지 여부다. 특히 불법여론조사를 주도한 강 당선자의 측근 A 씨가 현재 검찰에 지명 수배된 상황이어서 A 씨의 신변이 확보될 경우 수사는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검찰은 이번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비리를 고발 여부와 상관없이 자체 인지하고 몇몇 후보들은 내사까지 진행하고 있어 전혀 새로운 사건들이 불거져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항소심을 앞두고 있는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의 법원 선고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 당선자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으로부터 각각 14만 달러와 2000만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 48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항소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을 구형한 상태다.
이처럼 광역단체장 후보들 중 상당수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분간 정치권의 눈은 서초동 검찰청사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