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터/뉴시스 |
# 살 길 바쁜 새 감독 때문?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중원 플레이어 기성용은 사령탑이 시즌 도중 경질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목이 달아난 토니 모브레이 감독 대신 2군 감독이자 코치를 맡아온 닐 레넌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얼마간 예견된 일이긴 해도 이렇게 추락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드물었다.
리그 경기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2부 리그격인 디비전1 소속의 로스 카운티와 10일(한국시간) 홈구장 셀틱 파크에서 가진 2009~2010 스코티시컵 4강에서는 아예 명단 제외라는 수모까지 겪었다. ‘기성용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자명한 일.
웨스트 브로미치를 이끌 당시 김두현(성남)을 영입, ‘친한파’로 잘 알려진 모브레이 감독이 기성용을 영입한 것은 유명한 얘기. 구단 신뢰도 대단했다. 공공연하게 “기성용은 셀틱의 미래”라며 떠들었고, 극성맞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언론들도 셀틱 고위층의 코멘트를 인용해 보도했다. 더욱이 기성용의 셀틱행을 도왔던 외국인 파트너가 나카타 히데토시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미드필더 나카무라 슌스케(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셀틱으로 이적시켰던 인물이기에 정황상 기성용은 첫 시즌부터 성공시대가 도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셀틱 구단은 기대했던 선두는커녕 ‘철천지 라이벌’ 레인저스와의 간극이 점차 벌어지자 웨스트 브로미치에 거액의 위약금까지 주며 데려온 모브레이 감독을 과감히 내쳤고 더불어 ‘모브레이 맨’이었던 기성용의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성적 부진=감독 교체’란 등식을 직접 확인했던 레넌 감독대행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기성용을 투입할 리는 만무. 심지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교체 출전 기회조차 주지 않으며 국내 팬들에게 이제 레넌이란 이름은 ‘밉상’의 대명사가 됐다.
▲ 닐 레넌 셀틱 감독대행. |
무엇보다 시기가 좋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유럽 축구에서 여름과는 달리 겨울 이적 시장은 즉시 전력감을 찾는데 초점을 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이청용은 새 시즌을 앞둔 8월 볼턴행을 확정하며 동료들과 적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얻었으나 기성용은 그렇지 못했다. 사실 꽤 높은 이름값을 지닌 어지간한 유럽 선수들도 겨울시장 때 팀을 옮기면 적응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듭된 기성용의 부침에 국가대표팀도 더불어 한숨을 내쉬고 있다. 5월 초 최종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국내파 막판 점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허정무 감독은 외부에는 “대표팀에 불러들인 뒤 월드컵 직전에 치를 막판 4차례 A매치를 통해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면 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고심이 크다.
가끔 했던 기성용과의 전화 통화 횟수도 잦아졌다. 몸 상태 체크는 기본. 컨디션 조절과 맞물린 부족한 경기력 탓에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초조하다. 더욱이 초반 강경 자세에서는 한 발 물러섰으나 ‘벤치만 달구는 유럽파는 필요 없다’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해 온 허 감독이기에 ‘대부분이 벤치, 때로는 벤치에도 앉지 못한 인물’이 된 기성용은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상황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어 답답함은 쉬이 가시질 않는다.
# 자신감 하락…해결도 본인 몫
기성용을 보는 이마다 ‘풀이 죽었다’는 얘기를 종종 꺼낸다. 3월 코트디부아르와 런던에서 치른 평가전을 앞두고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도 기성용은 예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뭔가에 쫓기고 있었고, 더 이상 중심이 아닌 한 걸음쯤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아 충격을 받았다는 이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많은 주문을 하고 이것저것 훈수를 내놓고 있다. “포지션상 거친 중원 대결을 펼쳐야 하므로 볼을 예쁘게 차고 드리블 돌파에 주력하기보단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서로 ‘주고 빠지는’ 식의 팀플레이를 하라”는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멘트부터 “호시탐탐 영입 기회를 노려온 일본 J리그나 유럽 하부리그에서 임대로 뛰며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실체가 불분명한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게 필요 없다. 기성용 본인보다 지금껏 흘러간 상황들을 잘 직시하고 있고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성용이 갖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연명해 나가는 ‘평범한 유럽 리거’가 아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다.
기성용의 성장을 꾸준히 지켜봤던 한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성용이는 20대 초반이란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젊은 시절의 쓰라린 기억도 나중에 다 추억이 됐다. 박지성도 PSV 에인트호벤에서 1년 이상 호된 시련을 극복한 뒤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당장 몇 경기 출전하지 못했다고 실망해서도,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