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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에서도 ‘인기강사’가 존재한다. 인정받는 지도코치를 따라 제자도 코치가 소속된 초·중·고교에 진학하는 것이 관행이다. 필요하다면 장거리 통학도 감수한다. A 코치 역시 쇼트트랙계에서 명강사로 이름 나 있다. 지난 겨울 A 코치가 국가대표 후보코치로 선임된 것도 그러한 평판 때문이었다. 대한빙상연맹 이치성 사무국장은 “보통 학부모들은 아이를 가르치는 코치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다른 코치로 바꿔버리는 게 일반적인데 A 코치의 경우는 10년 이상 꾸준히 가르쳐온 제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고 국가대표 후보코치로 선임했다”고 말했다. A 코치가 전임강사로 소속돼 있는 중학교 관계자 역시 “그를 전임코치로 추천해 배정받기까지 2년이 걸렸다”며 “학부모로부터 신망받던 사람인데…”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A 코치에 대한 평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매우 좋았다. 피해자인 B 양과 같은 학년의 쇼트트랙 선수를 둔 한 학부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원래 쇼트트랙이라는 게 지도하다보면 보통사람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의 스킨십이 있을 수밖에 없어 선수들이 지도받는 동안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들도 어느 정도는 다 감안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성추행도 아니고 성폭행 사건이라 학부모들도 많이들 놀랐다”고 얘기한다. 또 다른 학부모는 “A 코치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혹시 다른 갈등이 불거져 이렇게 일이 커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얘기한다.
피해자 B 양 역시 A 코치가 인정받는 강사인 까닭에 9년 동안 사제관계를 맺어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A 코치와 처음 스승과 제자로 만난 후 계속 강습받기 위해 그가 전임코치로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는데 집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라 장거리 통학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B 양의 일과는 이른 새벽에 집을 출발해 한 시간 거리의 중학교로 가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받고 주변에 위치한 빙상장으로 이동해 시즌 중에는 밤 10시까지 시즌 후에는 저녁 8시까지 스케이트를 타고 다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A 코치와 그의 9년 제자 B 양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확한 사건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B 양이 재학 중인 중학교를 찾았을 때 다른 쇼트트랙 전임코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A 코치가 현재 구속상태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을 답답해하며 “다른 학부모로부터 피해 학부모가 A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는 내용을 전해 듣고 4월 17일 B 양의 학부모를 학교로 부른 후에야 자세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교 관계자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 검찰 조사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B 양 부모 역시 크게 상처를 받은 것은 당연지사. 학교 관계자는 B 양 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지난 한 달 동안은 물론 지난 9년 동안 A 코치를 털끝만큼도 의심한 적이 없다”며 비통해 했다고 한다.
B 양 부모의 진술에 따르면 성폭행이 있었던 것은 지난 2월 말경. 한 달 동안 피해사실을 함구하던 B 양은 3월 말에야 부모에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B 양의 부모는 4월 초 경기 지역의 원스탑지원센터를 찾아 그동안의 피해사실을 진술한 뒤 A 코치에 대한 고소절차를 밟았다.
A 코치는 지방의 한 빙상장에서 오전 7~9시 사이 일반 학생들을 가르치고 저녁 7시부터는 빙상장을 개인적으로 대관해 자신의 지도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여기에는 B 양을 비롯한 초·중·고등부 학생들이 포함돼 있었다. 해당 빙상장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보니 A 코치는 아예 빙상장 옆 건물에 사비를 들여 자신의 사무실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바로 이 사무실이 A 코치가 연습 중인 B 양을 개인적으로 불러 성폭행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해당 지역 빙상장 관계자는 “그는 우리 빙상장 소속이 아니라 평소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며 “선수 지도는 전적으로 코치들에게 맡기기 때문에 아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번 사건의 특이한 점은 주변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A 코치가 여제자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만큼 A 코치는 평판이 좋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관계자들 가운데에는 “A 코치가 괜한 오해로 억울한 상황에 몰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입장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항간에선 A 코치가 억울함을 토로하며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얘기도 있다. 최종적인 사법기관의 판단이 나와야 진실을 알 수 있겠지만 현재 A 코치는 성폭행과 성추행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일요신문>에선 지난 936호를 통해 과거의 쇼트트랙 파벌이 많아 사라진 데 반해 지도코치가 누구냐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파벌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번 성폭행 사건에서도 지도코치의 힘은 여실히 드러났다. 능력이 입증된 지도코치는 초·중·고교 기간 동안 꾸준히 가르친 제자의 대학 진학까지 연결해주는 힘이 있다고 한다. 특히 국가대표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각종 대회 성적과 함께 지도코치의 능력이 중요하다. 결국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지도코치를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B 양 역시 A 코치가 전임코치로 있다는 이유로 통학거리가 긴 타 도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쇼트트랙 파벌은 어쩌면 초등학생 선수들 사이에도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