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에이전트와 흑인 풋볼 선수의 우정을 다룬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한 장면. |
이 영화는 선수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직업으로 에이전트를 다뤘지만 중요한 것은 돈과 승부가 아닌 인간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에서도 과연 그럴까.
대한축구협회가 최근 실시했던 국제축구연맹(FIFA) 선수 에이전트를 선발하는 시험에 총 149명이 응시해 18명이 합격했다. 12대1에 달하는 경쟁률. 에이전트는 ‘스포츠를 좋아 하는’ 젊은이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직업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대부분 현직 에이전트들은 “겉만 화려할 뿐 실속이 없다”며 만류한다. <일요신문>은 스포츠 에이전트의 현실과 전망을 짚어봤다.
#에이전트란 무엇?
‘에이전트’를 떠올리면 통상 축구부터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국내 에이전트 업계 관계자들 대부분이, 아니 거의 전부가 축구라는 종목에 국한돼 활동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록 다른 이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블루오션이긴 해도 프로배구에도 조금씩 늘어나는 분위기이고, 프로야구에도 탄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 프로농구는 트라이아웃이 있어 에이전트가 활동할 수 없다.
프로축구연맹의 ‘선수단 관리 규칙’에는 구단과 선수 간의 입단 또는 연봉 계약을 체결할 때 해당 구단 대표자와 해당 선수 및 대리인이 직접 대면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선수 대리인이 에이전트다. 자격 요건은 부모와 형제, 변호사, FIFA 에이전트로만 제한되는데 이는 국내 규정일 뿐, 실제 FIFA는 선수의 자매나 배우자까지 인정한다.
제3자가 업계에 발을 들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 FIFA 에이전트 취득은 쉽지 않다. 모두에게 문호는 열려있지만 꽤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한다. 지난해에는 148명 지원자 중 139명이 응시해 단 한 명만 합격했다. 2006년과 2007년 역시 각각 한 명씩.
시험은 전 세계가 동일한 FIFA 규정 15문항과 축구협회 정관 및 민법 문항 5문항 등 총 20문항이 출제된다. 20점 만점에 14점 이상을 얻어야 합격하는데 선수 계약과 이적, 국제 분쟁 사례는 물론 자유계약선수(FA)의 이적료 산출법 등 폭넓은 지식을 갖춰야 한다. 당초 에이전트 시험은 FIFA가 직접 주관했으나 최근 각국 협회의 소관으로 넘어갔고 국내는 FIFA가 권장하는 2차례 시험 대신 1년에 한 번 시험을 치르고 있다.
#자격 유지도 힘겨워
에이전트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FIFA에 등록된 한국 국적 에이전트 숫자는 34명, 대한축구협회 등록 에이전트는 131명에 달한다. 하지만 131명이 모두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이전트 자격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FIFA에 보험금 명목으로 직접 10만 스위스 프랑(약 1억 원)을 지불하거나 2개 국내 화재 보험사에 에이전트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FIFA와 직접 거래할 때와 달리 국내의 경우 나중에 에이전트를 그만두더라도 돌려받을 수 없어 업계에서는 ‘에이전트 보험’을 농담조로 ‘자동차 보험’이라 부르고 있다.
국내 보험사와 거래를 하면 일단 보유 선수가 없을 때 최초 보험금 87만 원을 내야 하고 이후 보유 선수가 1명이라면 140만 원, 이후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1인당 7만 원씩 액수가 커진다. 3월을 기준으로 돈을 내지 않아(혹은 ‘못해’) 자격이 정지됐거나 취소된 이를 제외하면 4월에 활동 중인 에이전트 숫자는 51명으로 줄어든다.
만약 이들이 1년 내내 보험금을 내지 않으면 자격은 자동으로 취소돼 다시 활동하기 위해선 자격증을 다시 따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보유 자산이 많아 별도 회사를 차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이 이미 존재하는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어 에이전트 시험에 합격하고도 취업하지 못했을 때는 자격증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을 노려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 에이전트들이 회사를 차려 시험 합격자를 일부 고용하기도 하지만 대개 (에이전트) 명의를 빌리는 선에서 끝난다. 협상은 무자격 사장이 하고, 계약서 사인은 자격증을 보유한 회사 직원이나 제3자가 하는 경우가 잦은 게 현실이다. 모 구단 관계자도 “현재로선 규정에 어긋나지 않아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 이적 돈 안돼
에이전트 B는 “선수가 많고, 구단들도 많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선 에이전트로 먹고 살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면서 “해외로 진출시킬 때 돈을 조금 만질 수 있는데 각각의 환경이 달라 우리 홀로 활동할 수 없어 외국 에이전트에 위임장을 써주고 함께 일을 봐야 한다. 이때는 수수료를 서로 나눠야 하므로 큰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FIFA에서는 이적료의 5%를 에이전트 수수료로 책정하고 있어 만약 외국 파트너가 이적과정에 개입했다면 10억 원의 수수료를 받게 되더라도 국내 에이전트가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은 5억 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그나마 선수 권익이 신장돼 수수료가 3% 선까지 줄어들었고 이것저것 활동비로 쓴 것을 빼면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매우 적다.
에이전트 C는 “주변에선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으나 실제 삶은 최악이다. 6년째 업계에 발을 들여 번 것은 결혼자금 5000만 원과 중고차 한 대가 전부였다”고 털어놓았다.
에이전트 업계에서는 감독들(지도자)과의 끈끈한 연결 고리(일명 커넥션)를 강조하는데 지나칠 경우에는 갖은 악성 소문이 나돌거나 검·경찰 조사를 받는 최악의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관행을 최근 변병주 전 대구FC 감독의 사태를 계기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선수에 비해 ‘눈 먼 돈(실제 이적료보다 부풀린 금액)’을 비교적 손쉽게 챙길 수 있는 용병 시장은 각광받고 있고, 일부 에이전트들은 다른 프로 종목이나 전지훈련지에 눈을 돌리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