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행 파문을 딛고 현대캐피탈의 주포로 활약한 박철우. FA를 맞은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그‘사건’ 이후로 오랜만이다^^. 시즌이 끝났지만 먼저 챔피언결정전 얘기부터 하고 진도를 나가보자. 이번 챔프전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이뤘고 마지막 경기도 3-2로 끝이 났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7차전 때 네트 사이로 (고)희진 형이랑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게 생각나요. ‘형, 삼성이랑 현대 선수들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데, 그래도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더니 수긍을 하시더라고요. 4차전부터는 몸이 저려와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선수들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우승을 눈 앞에서 놓친 터라 많이 속상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솔직히 시원섭섭했어요. 경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졌어도 후회는 없었어요. 물론 우리가 우승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죠. 이전에는 삼성화재와 7차전까지 가게 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돼서 시야가 좁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증상이 없더라고요.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로운 걸 많이 배웠어요. 선수로서 더 성숙됐다는 느낌도 들고요. 제 배구 인생에 잊지 못할 챔프전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레프트 용병 앤더슨이 가고 마흔 살의 헤르난데스가 중간에 합류했다. 라이트 자리에 용병이 들어옴으로써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실제로 어떠했나.
▲사람들은 제가 더 힘들어졌을 거라고 보던데 실제론 전혀 반대였어요. 그동안 항상 제가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굉장히 컸었거든요. 그런데 헤르난데스가 오면서 그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죠. 그리고 그 선수의 존재가 굉장히 큰 자극이 됐어요.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훈련을 했고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준비도 많이 했었고요. 이전에는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훈련을 오래하지 못했거든요. 그러다보니 경기에 들어가면 많이 지치더라고요. 헤르난데스가 투입되고 제가 벤치에서 조금 더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니까 이전과는 다르게 파워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더욱이 감독님께서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절 내보내주시더라고요. 그 부분이 굉장히 큰 힘이 됐습니다.
―돌려서 질문하지 않고 그냥 물어보겠다. 대표팀 내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으로 인해 김호철 감독과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연 김호철 감독의 말대로 시즌 전 서로 오해를 풀고 팀의 감독과 제자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 궁금했다.
▲시즌 초반엔 약간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있었죠. 하지만 밖에서 보는 것처럼 감독님과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진 않았습니다. 심적으로 힘들어서 운동이 안 된 게 아니라 몸이 안 만들어져 있는 데다가 그런 일이 있고 보니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커져 오버 플레이가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시즌 들어가선 인터넷을 안 봤어요. 이런저런 얘길 듣다가 행여 슬럼프에 빠지게 될까봐 뉴스 검색을 하지 않았어요. 저보다 감독님께서 더 힘드셨을 거예요. 모든 시선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감독님과 저한테로 쏠렸으니까요.
박철우는 진심으로 김호철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라고 해서 일부러 ‘쇼’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까봐 여러 차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김 감독이 따뜻하게 잘 끌어줬기 때문에 시즌을 후회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고, 큰 일을 겪고 나서 후퇴가 아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 만족스럽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 위 사진은 박철우와 여자친구 신혜인. |
▲정말 은퇴할 생각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기자회견은 할 수도 없었겠죠. 하지만 전 배구 선수이고, 배구 선수 아닌 박철우는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에 부딪히면서 버텨나가고 싶었어요. 배구 선수가 9시 뉴스에까지 나왔으니까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거였죠. 이건 빈말이 아니라 정말 감독님과 선수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저도 노력했지만 선수단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겉돌지 않고 현대캐피탈에 다시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소속팀과의 문제는 아니었잖아요.
―시즌 중 박철우에 대한 영양가 논쟁이 벌어졌다. 삼성화재에 약한 징크스를 안고 있다든지, 에이스로서 제 몫을 못한다는 지적 등 날 선 비판들이 제기됐었다.
▲제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들이에요. 플레이오프 전까진 삼성화재뿐만 아니라 모든 팀들을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요. 너무 큰 일을 겪고 나니까 현실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인지 그 정도의 비판에는 마음을 다치지 않아요. 사람한테 상처받는 게 제일 큰 아픔이지 말로 하는 비난과 비판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국 배구가 용병들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시각도 있다. 어떤 용병을 뽑느냐에 따라 우승 향방이 갈린다는 얘기도 있고. 사실 아닌가?
▲돈을 주고 용병을 데려 왔는데 그 용병이 별 볼 일 없는 용병이라면 더 큰 문제 아닐까요? 용병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그를 뒷받침해주는 한국 선수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는 용병이라고 해도 선수들이 잘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 용병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용병과 선수들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여자친구가 경기장에 오면 신경 쓰이는 편인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만약 여자친구가 와서 경기를 하지 못한다면 제가 선수로서 그릇이 안 된 거잖아요. 연습 부족인 걸 시인하는 셈이고요. 가장 중요한 건 제 자신이에요. 누가 있고 없고가 아닌 제 집중력이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있는지가 더 문제인 거죠. 솔직히 (신)혜인이가 왔을 때 삼성화재 경기 빼곤 거의 다 이겼거든요. 삼성화재와의 경기가 유독 부각되다보니 혜인이 왔을 때만 제가 못하는 것처럼 비춰지나 봐요.
―여자친구를 공개하고 나서 더 좋아진 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좀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딜 같이 다녀도 마음이 편해요. 다들 알아봐주시고, 격려도 해주시고, 우리한테 사인도 받으려고 하시고.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어떤 팬이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여자친구가 ‘얼짱’으로 소문이 났는데 기분이 어떠하냐고요. 그래서 제가 그 분한테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눈이 호강을 해서 행복하다’고^^
두 사람의 호칭이 궁금했다. 처음엔 신혜인의 ‘어리버리’를 따서 ‘버리’로, 박철우의 별명 ‘땡칠이’를 빗대 ‘칠이’로 서로를 불렀지만 지금은 단순하면서도 특별한 관계임을 자랑하는 ‘자기야’로 통일했다고 한다.
―이제 팬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 FA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방송용 멘트’는 생략하고 박철우의 진심을 알고 싶다.
▲우선 5월 20일까지는 원소속팀과의 협상 기간인 만큼 최대한 충실하게 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구단과 만나서 구단이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평가를 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고요. 사실 선수 생활하면서 이런 기회를 몇 번이나 얻겠어요. 처음 맞는 FA이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요, 처음인 만큼 잘 만들어 가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이 이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철우가 FA 시장에 나오면 가장 먼저 데려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 있다.
▲그 기사 저도 읽었어요. 기분 좋았습니다. 사실 저보다 신 감독님이 더 불편하신 거잖아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그러나 그런 걸 뛰어 넘어서 선수로 절 인정해주신 부분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원래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절 데려가려고 하셨던 터라 이번에 더 적극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정말 궁금하다.
▲하하. 조건도 중요하고 그 팀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따져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 어느 팀으로 가고 싶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거잖아요. 협상을 해봐야 하는 거고, 몇 차례 하다 보면 저도 나름 정리가 되겠죠. 여자친구가 추천하는 팀이 있긴 하지만(^^) 결국엔 제가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후회없는 선택을 하려면 좀 더 신중해져야 되겠죠.
박철우는 FA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선 여러 차례 대답을 망설였다. 어느 때보다 신중한 모습을 보였고 기사화 되는 것과 관련해 기자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박철우는 인생에 큰 상처가 될 만한 일을 겪으면서도 포기하는 것보단 다시 도전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로 인해 ‘과거’가 지난 ‘현실’에선 FA란 선물을 안고 잠시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수가 기자에게’ 거꾸로 인터뷰
“이거 은근 재밌네요” “난 술이 다 깼어”
박철우(박): 인터뷰를 많이 하시는 편이잖아요. 어떤 선수가 인터뷰하기 제일 힘들었어요?
이영미(이): 진짜 기자처럼 물어보네(웃음). 흠,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 라고 단답형으로 인터뷰하는 선수!
박: 혹시 박지성 선수 아닐까요?
이: 잘 모르는 사람들은 TV에 나오는 박지성 선수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재미없다, 인터뷰하기 어렵겠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만나보면, 그리고 영상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말도 잘하고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을 많이 보여요. 단, 말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갖고 있는 선수라 말 조심을 하려고 애쓰는 편이긴 해요.
박: 인터뷰하기 제일 까다로웠던 선수는 누구예요? 혹시 박철우는 아니죠?
이: 하하. 전혀 아니죠. 이건 이니셜로 얘기할게요. 프로야구 모 팀의 A 선수. 인터뷰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했고, 전부 기사화해도 된다고 얘기해 놓고, 막상 기사가 나오자 항의 전화를 하더라고요. 왜 자기가 한 말을 거르지 않고 다 썼냐면서. 그 후 인터뷰 자리에서 다시 만났는데 뭔가 서걱거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자꾸 확인하게 되고. 이 말을 기사화해도 되냐면서.
박: 선수들은 기자를 믿고 말하는데 기사가 너무 솔직하게 나오면 뒷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거든요. 인간적으로 많은 교감을 느끼는 선수는 누구예요?
이: 글쎄, 너무 많아서 한 선수만 꼽기가 어려운데요? 김병현, 추신수 선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선수예요. 그들도 날 좋아할 거라 믿고^^. 몇몇 선수들과는 ‘남매애’를 나누는데, 그중 추신수 선수와는 ‘누나’ ‘동생’ 사이죠. 오랫동안 봐 와서 자연스럽게 그런 호칭이 가능해진 것 같아요. 추 선수는 인간적으로도 아주 매력있는 사람이에요.
박: 마지막 질문 한 가지! 종종 선수나 감독님들과 술 마시면서 인터뷰를 하시는데, 대체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이: 이전에 ‘취중토크’를 3년 정도 매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량이 엄청 늘었어요. 지금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주량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래도 인터뷰하면서 마시는 술 자리에선 취한 모습 안 보이려고 노력해요. 나보다 먼저 취해주는 선수가 있으면 너무 감사할 뿐이고^^.
박: 이거 은근히 재밌네요. 솔직한 답변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기회되면 또 한번 하죠.
이: 한 번이면 됐지, 뭘 또 캐려고. 대답을 하려니까 긴장돼서 혼났네. 술이 다 깼어^^.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