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올레배’ 아마·프로 통합예선(위)과 매월 랭킹 최강전을 여는 ‘사이버오로’. |
프로-아마를 프로-아마의 경계선이 지워지기 시작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한국기원 연구생들의 실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데도 입단의 문은 아직 좁기만 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이른바 ‘예비 입단자’가 누적되고, 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 프로기전의 부분적 문호 개방은, 일면 바둑계의 고육지책이자 일면 시대 흐름의 반영이다.
또 하나는 인터넷이다. 인터넷 바둑대회가 커지고 있다. 국내 인터넷 바둑의 양대 사이트인 ‘사이버오로’와 ‘타이젬’이 앞장서고 있다. 타이젬은 ‘동양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 사이버오로는 매월 ‘랭킹 최강전’을 개최한다. 인터넷 기전이 능기로 하는 ‘익명의 프로-아마 오픈’전이다.
특히 ‘동양증권배’는 올해 7회째인데, 이번엔 특히 상금을 대폭 올렸다. 총규모는 1억 4600만 원에 우승 상금 5000만 원, 준우승 1600만 원이다. 조금 놀랍다. 인터넷 기전이 이렇게까지 커졌다는 것이 놀랍고, 그런데 인터넷 동호인 동네 바깥에는 의외로 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쉽게 말해 우승 상금 5000만 원이면 중국에서 제일 큰 기전과 맞먹는 규모라는 것.
지난 3월 2일 막을 올려 오는 6월 말에 끝나는 여정으로 현재 48강을 가려놓고 있다. 48강 중에는 예선 통과자도 있고 주최 측이 지명한 사람도 있다. 이들이 24명씩 A-B조로 나뉘어 각기 연승전을 벌이고, 어느 조에서든 3연승한 사람은 8강에 올라간다. 3연승이 8명이 안 되면 2연승한 사람들이 재대결해 빈자리를 채운다. 8강부터는 토너먼트.
A조에서는 원성진 9단, B조에서는 중국 콩지에 9단의 이름이 얼른 눈에 띈다. 주최 측 지명 케이스인데, 두 사람 모두 실명 출전을 자원했고, 게다가 콩지에 9단은 본인이 먼저 참가를 희망했다는 것. 그렇다면 이건 오프라인의 세계대회에 손색이 없다.
사이버오로는, 규모는 동양증권배에 미치지 못하지만, 매월 ‘랭킹 최강전’을 열고 있다. 역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지의 바둑인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다.
타이젬이나 사이버오로 말고 다른 인터넷 바둑사이트들도 크고 작은 대회를 연중 개최하고 있어 아무튼 바둑 동호인들은 매일 저녁, 매일 밤마다 고수들의 향연을 구경하고 베팅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입단대회 문호 개방이니 어쩌니 하는 오프라인 세상과는 상관이 없는 별천지다. 그리고 익명이라고는 하나 바둑 누리꾼들은 성적이 좋은 아이디는 그가 누구인지 대개는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더 즐겁다.
이 두 가지 외에 바둑의 체육화도 경계의 불분명화에 일조하고 있다. 예컨대 오는 11월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경기에 출전할 한국 대표선수는 프로기사인데, 관할은 대한체육회 산하, 아마추어를 위한 단체인 대한바둑협회라는 것과 바둑은 전례가 없어 이번 선수단은 대한체육회로부터 한 푼도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이상한 혼선 등이 그것이다.
지금 한국 바둑계에는 크게 보아 네 그룹이 있다. 프로기사, 연구생과 연구생 출신의 젊은 강자, 나이 든 세미프로급 강자, 일반 바둑팬이 그것이다. 이들이 이합집산하고, 각개 약진하면서 한국 바둑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간다. 변화의 주역, 변화의 가장 큰 원인과 동력은 연구생과 연구생 출신의 젊은 강자들이다.
프로-아마의 경계가 희미해진다는 것은 프로의 기존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는 뜻이다. 일반 바둑팬이야 바둑계가 어떻게 변하든 상관이 없다. 세미프로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어차피 그동안 바둑계로부터 혜택을 받은 게 별로 없고, 이제 실력으로는 어린 친구들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생의 길을 모색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연구생 집단’과 그들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고, 동조할 것이다. 이들의 요구에 따라 프로의 문호가 지금 부분 개방되고 있지만, 그 끝은 결국은 ‘전면 개방’일 것이다. 전면 개방은 다른 말로 하면 입단 제도의 폐지다. 입단 제도가 없어지면 지금처럼 문호를 넓혀라, 마라, 그런 소리도 없어질 것이다. 누구나 실력이 있으면 대회에 나와 상금을 차지하면 된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이 상황을 어떻게 교통정리할 것인지 고민하고 숙고할 때다. ‘프로기사’는 바둑의 꽃이다. 그러나 ‘프로’라는 명칭, ‘입단’이라는 제도가 꽃인 것은 아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명칭이나 제도가 없어도 일반 바둑팬들은 얼마든지 바둑을 즐길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바둑에서도 항상, 꼭 세계일등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