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그런데 올 시즌부터 내가 클리블랜드에 있어도 가족들 얼굴 보기가 힘들다. 바로 무빈이 때문이다. 애리조나 집 근처의 유치원에 다니는 수업 일정도 그렇지만 올 초부터 무빈이가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일들이 많아졌다.
애리조나에는 리틀야구가 있다. 동서남북을 지구로 해서 무빈이는 웨스트 지구의 인디언스팀 소속 유격수다. 비록 리틀야구이지만 플레이오프 제도도 있고 월드시리즈는 아닐지언정 4지구에서 챔피언을 가르는 챔피언결정전도 있다.
팀 이름을 ‘인디언스’로 지은 건 순전 무빈이 때문이라고 한다. 무빈이 아빠인 내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뛰고 있고 나를 기억하고 응원하기 위해 팀명을 인디언스라고 지었다 하니 감동 그 자체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무빈이랑 함께 야구하는 친구들이 나한테 카드로 응원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시즌 시작하기 전에 무빈이도 격려할 겸 해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시합에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유격수를 보고 있던 무빈이는 공이 하도 안 오니까 나중에는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모래 놀이를 하지 않나, 타자가 휘두르는 방망이에 운 좋게 공이라도 맞아서 ‘딱’ 하는 소리가 들리면 투수를 빼놓고 모든 수비수들이 그 공을 잡으러 그라운드를 뛰어 다녔다. 질서도 없고 제대로 된 룰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들한테 야구는 승부가 아닌 놀이었던 것이다.
무빈이가 메이저리거의 아들이란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다른 팀 학부형들까지 무빈이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무빈이는 번번이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며 연속 헛스윙으로 삼진만 당했다. 삼진 많은 건 아빠 안 닮아도 되는데…^^.
무빈이가 아빠 야구하는 걸 많이 봐서 그런지 루상에 나가 있을 땐 도루하려는 흉내도 냈다. 도루하기 전에 투수를 보면서 무릎에 손을 올리고 뛸 준비를 하는 무빈이 모습을 보고 ‘저 녀석, 내 아들 맞나?’ 싶었다. 난 한 번도 무빈이한테 도루하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구장에서 또는 TV로 비춰진 내 모습이 무빈이한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무빈이의 헛스윙만 보고 돌아온 뒤 난 시즌에 들어갔고, 그 후론 무빈이가 야구하는 장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전화를 해선 흥분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무빈 아빠! 우리 무빈이 첫 안타 쳤어요! 나 너무 좋아서 안고 있던 건우 놓칠 뻔했다니까! 와, 무빈이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나도 너무 기뻤지만 아내한테 은근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만루홈런을 쳤을 때도 아내는 저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메이저리그에서 만루홈런 친 것보다 리틀야구에서 아들이 안타친 게 더 대단한가? 하하, 우리 가족한테는 대단한 일이다. 나도 아내의 전화를 받고 ‘야호’하며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요즘 무빈이가 나한테 전화를 하면 부쩍 야구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한다. 어젠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보는 게 아닌가.
“아빠, 홈런을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친구들이 아빠한테 홈런치는 비결 좀 물어보래요.”
아들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모범 답안만 읊조리면서도 속으로 난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무빈아,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 몰라. 왜냐하면 아빠가 요즘 홈런 친 적이 하도 오래 돼서 그래. 홈런 좀 많이 친 후에 진짜 비결을 알려줄게. 알았지?’
볼티모어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