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희망을, 나는 ‘인생’을 건졌다
―책만 읽어봐도 김신환 감독의 인생이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알 수 있겠더라. 몇 십 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도 될 만큼 인상적인 면들이 많았다.
▲정말 부끄러워요.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동티모르가 김신환이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그곳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제 갈 길을 찾게 되었고 그 아이들을 통해 ‘개판’이었던 제 인생이 더 이상 내리막길로만 향하진 않게 됐죠. 예전엔 못된 짓도 해보고 인생의 쓴맛이란 쓴맛은 죄다 맛본 것 같아요. 좀 일찍 깨달았더라면 오랫동안 허튼 짓 안 하고 잘 살았을 텐데…(웃음).
―사실 우리한테 동티모르란 나라는 축구와는 큰 인연이 없는 국가 아니었나. 어떻게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동티모르는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예요. 수도는 딜리이고요,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기도 해서 포르투갈 혼혈아들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키도 크고 골 감각도 있고 머리가 명석한 아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당시 그곳에서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생 자체에 ‘마’가 낀 전 그 스포츠용품점마저 말아먹고 말았죠.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 점차 그들을 지도하는 입장으로 변모하게 되더라고요. 정식으로 팀을 꾸린 건 2003년이었습니다. 당시 축구화도 없이 맨발로 차던 아이들에게 인도네시아에서 구입한 허접한 축구화와 유니폼을 신기고 입혔던 기억이 나네요. 그랬던 아이들이 200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렸던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동티모르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린 거죠.
축구화 사이즈가 맞을 리가 없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발을 구겨 넣고 운동장을 뛰어 다녔다. 그러다보니 맨발에 익숙해 있던 아이들은 축구화가 너무 거추장스러웠고, 사이즈가 안 맞은 아이들은 발에서 피가 나고 급기야 다리를 절뚝거리기까지 하는데도 축구화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축구화가 안 맞는다고 하면 행여 감독이 축구 못하게 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공짜로 얻는 축구화와 유니폼 때문에 축구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김신환 감독은 그들의 생각을 눈치챘으면서도 모두 받아들였다고 한다.
―기본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불과 1년 만에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
▲저도 신기할 정도예요. 장난삼아 나간 대회에서 우승을 해버렸으니까 어안이 벙벙했죠. 두 번째 대회 우승은 완전 실력으로 이룬 거고요. 그때부터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잘 만들어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동티모르란 나라에서 축구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먹고 살기도 힘든 가정에서 무슨 돈으로 축구를 시키겠어요. 지금 나이별로 200명 정도의 아이들이 뛰고 있는데 돈 한 푼 받지 않고 있어요. 제가 돈을 받는다고 해도 낼 아이들도 없고요(웃음). 생긴 건 이래도 인복이 많은가 봐요. 어쩌면 실패로만 점철된 인생이 그래도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고생은 해도 처절할 정도의 고생은 안 하고 있어요. 한국가스공사, 이미경 의원, 덕유패널 등 많은 분들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동티모르 총리도 직접 김신환 감독을 불러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들었다.
▲7년 전에는 대통령이셨는데 지금은 실질적인 수장이 되신 구스마오 총리가 돈 한 푼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절 대통령 집무실로 부르시더라고요. 앞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하시며 아이들을 잘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워낙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이다보니 그 약속을 지키시기가 어려운가 봐요. 아직까지 피부에 와 닿는 지원은 없었어요.
―동티모르 아이들이 꿈꾸는 축구선수의 모델이 있을 것 같다. 가장 인기있는 축구선수가 누구인가.
▲단연 박지성 선수죠. 아이들은 포르투갈의 유명한 호날두 선수보다 한국의 박지성을 훨씬 더 좋아해요. 물론 감독이 한국 사람이다보니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 아이들은 아시아의 선수가 세계적인 명문 팀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어요. 그동안 몇 차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한국에만 가면 박지성 선수를 만날 수 있는 줄 알더라고요(웃음). 만약 박지성 선수가 나중에라도 시간을 내서 우리 아이들을 한 번만 만나준다면 그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 박지성 선수는 거의 ‘신’적인 존재예요.
―운동을 시키다가 퇴출시키는 선수들도 있나. 실력이나 재능이 안 돼 일찌감치 포기시키고 다른 길을 가게 해주는 선수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있죠. 아무리 가르쳐도 축구선수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아이들한테는 운동 그만두고 공부하라고 얘길 하죠. 축구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면 쓸모 없는 사람이 되니까 더 이상 운동장에 나오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그래도 끝까지 나오는 애들이 있어요. 정말 축구 못하거든요. 그런데도 죽기살기로 나와요. 그런 애들을 못 본 체할 수 없잖아요. 결국 제가 안고 가야죠. 외국 시합 나갈 때 게임에 안 나갈 애들 대신 그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간 적도 있어요. 기 죽을까봐 제가 많이 챙기는 편이에요.
―월드컵대표팀 허정무 감독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인연 운운할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이전 해군팀에 있었을 때 그 형이랑 룸메이트였어요. 그 당시 해군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수두룩했어요. 김성남 김강남 한문배 선수 등 이름만 들어도 아주 쟁쟁했었죠. 그 사이에서 저도 볼 좀 찼습니다(웃음). 군 제대 후 현대자동차 유니폼을 입고 실업팀에서 생활할 때 허정무 감독님이 속해 있는 프로팀이랑 연습게임을 한 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제가 고생을 많이 해서 인상이 변했나 봐요. 몇 년 전 우연히 허정무 감독님을 만나 인사를 했는데 잘 못 알아보시더라고요.
해군팀에서 만난 허정무 감독은 그 당시에도 대단한 근성의 소유자였다고 말한다. 경기력도 출중했지만 선배들 틈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선배들을 상대로 거친 플레이도 서슴지 않았단다. 많은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은 월드컵대표팀 감독으로, 또 한 사람은 축구 불모의 나라에서 유소년을 이끄는 ‘대부’로 살아가는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인생의 막장까지 갔다가 동티모르에서 만난 아이들 덕분에 회생의 길로 돌아섰다고 본다.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차이가 있는 법이다. 앞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해 어려운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
▲동티모르에 축구학교를 세우려고 하는데 만만치가 않네요. 땅은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건물을 세우는 것부터 잔디를 조성하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그러나 항상 무에서 유를 만들어 왔듯이 축구학교 건립도 잘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잘 짜인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잔디 위에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에요. 가진 게 없다 보니 주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동티모르 아이들이 아무 걱정없이 신나게 축구하는 걸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오는 10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17세 이하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4강 진출 후 본선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는 김신환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기자가 “‘동티모르의 히딩크’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이다. 어떻게 내가 히딩크 감독이 될 수 있겠나. 난 능력도 뭣도 없는 사람이다. 그냥 김신환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어떠한 타이틀보다 김신환 감독을 가르키는 수식어 중에서 ‘동티모르의 히딩크’처럼 잘 어울리는 말도 없는 것 같다. 맨발로만 축구를 차던 자신들에게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준 동티모르 아이들한테 김신환 감독은 히딩크 감독 그 이상의 존재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신환 감독 곡절 많은 개인사
아들 축구재능 못 키워줘 미안…
하는 사업마다 실패로 끝난 김신환 감독의 개인사는 불우한 편이다. 두 아들을 둔 상태에서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고, 가장의 역할을 못한 미안함에 아내를 보내줬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자의 인연까진 끊지 못했다.
“누구보다 아내의 마음 고생이 컸다. 내가 뭔가 갖고 있어야 도움을 주는데 완전 빈털터리다보니 오히려 내 존재가 아내한테 짐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내 자식들까지 안 볼 수는 없었다. 한 번은 둘째 놈이 동티모르에 왔다 간 적도 있었고 일본에서 영화 촬영을 할 때 나랑 10일 동안 같이 지내면서 처음으로 아빠의 존재를 느꼈다고 하더라. 다른 아이들은 도와주면서 정작 자식들은 왜 안 돌보냐는 말도 들었다. 이게 내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가는 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이해해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김 감독은 둘째 아들이 유난히 축구에 관심이 많고 볼 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마음을 드러내놓는다.
“만약 나랑 같이 살았다면 분명 축구선수로 뛰고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동티모르 아이들과 몇 차례 축구게임을 했는데 너무 뛰어난 실력을 선보여서 깜짝 놀랐다. 아들한테 너무 미안했고, 또 가슴이 아팠다.”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선수 중에서 김 감독은 무낀다라는 선수를 최고의 플레이어로 손꼽는다. 그리고 무낀다를 K리그에 진출시키는 게 또 다른 목표라고 설명했다. 충분히 실력도 있고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는 선수라 자신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아이들이 크면서 그 아이들이 축구로 먹고 살 수 있게끔 길을 만들어 주는 것도 내 몫이다. 동티모르에 프로팀이 없다. 프로팀에서 충분히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더 이상 축구를 못한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그 선수들이 계속 축구를 하고 돈도 벌고 결혼도 해서 가정을 이룬다면 그땐 동티모르를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김신환 감독은 출생 1957년 학력 한양공업고등학교 소속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 감독 경력 1981~1988 현대자동차 선수, 1988 은퇴, 2003~ 동티모르 유소년팀 감독 수상 2004, 2005년 일본 히로시마 리베리노컵 국제축구대회 2연패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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