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고비마다 승부수를 던져 성공했던 박 부회장이 또다른 승부수를 준비하고 있어 관심이다. 지난 3월9일 팬택앤큐리텔에선 박병엽 부회장이 대우종합기계의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사실을 공시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나돌던 박 부회장의 대우종합기계 인수 시도가 공식화된 것이다.
옛 대우중공업에서 대우조선과 함께 분리된 대우종합기계는 현재 자산관리공사(35.16%)와 산업은행(21.9%)이 대주주다. 자산관리공사는 지난 8일부터 대우종기의 인수의향서를 접수하고 있다.
자산공사는 오는 20일 인수의향서 접수를 마감하고 의향서를 낸 업체에게 투자설명서를 보낸 뒤 4월 1차 입찰을 실시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인수방식은 대우종합기계의 1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의 지분 35.16%와 산업은행 지분 21.91% 중에서 50% 이상의 지분을 인수하는 형태. 대우종기는 지난 2000년 10월 옛 대우중공업에서 대우조선과 함께 분사된 뒤 2001년 11월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조9천억원의 매출을 예상했으나 집계결과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2조3천억원을 기록하는 등 호조를 보이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대우종기를 민수 부문과 방위산업 부문으로 물적 분할한 뒤 매각할 방침이다. 박 부회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대우종기 인수에 꾸준한 관심을 표명했었다.
지난해 가을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번 돈을 기계 중공업 등 제조업에 재투자, 한국 제조업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한 발언이 그런 예이다. 그는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메카트로닉스에 투자할 계획”이라는 언급도 했다. 메카트로닉스란 말은 기계를 나타내는 메카닉이라는 단어와 전자를 나타내는 일렉트로닉스를 결합한 말로 기계공업에 전자기술을 접목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팬택의 설명. 팬택은 이번 인수의향서 제안이 박 부회장 개인 자격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이지, 회사 차원에서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혀 주목된다.
‘회사 따로 오너 따로’인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업계에선 “휴대폰 제조업체인 팬택이 기계산업체인 대우종기를 인수하더라도 시너지 효과가 없어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해석. 때문에 시장에는 박 부회장의 팬택앤큐리텔 인수 시도 때와는 달리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일각에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문어발 확장에 다름 아니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평소 소신이었고 개인자격으로 입찰에 참여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에 팬택이나 팬택앤큐리텔이 참여하지 않는 한 공식적으로 이의제기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박 부회장이 매출 2조원대의 큰 회사를 인수할 자금력이 있을까.
박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얼마의 돈을 갖고 있는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다만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근거는 있다.
올 초 대주주지분 평가업체인 에퀴터블의 계산에 따르면 박 부회장은 국내에서 24번째의 주식부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거래소 상장업체인 팬택(19.5%)과 팬택앤큐리텔(25.14%) 등을 통해 1천9백4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4년 전 현대큐리텔을 인수할 당시에 비해 그의 현금 조달력이 훨씬 높아졌음을 뜻한다. 2001년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휴대폰 제조업체인 현대큐리텔(현 팬택앤큐리텔)을 인수하면서 그가 지분을 갖고 있는 팬택의 자금을 동원하는 대신 개인자격으로 4백여억원을 동원해 KTB와 50 대 50으로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회사를 지난해 거래소에 상장하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일각에선 박 부회장이 대우종기 인수를 위해 5천억원의 ‘실탄’을 준비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해 팬택쪽에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박 부회장이 팬택앤큐리텔의 인수 성공으로 내로라하는 주식부자가 됐다지만 현대큐리텔과 대우종기는 사이즈부터 다르다. 더구나 개인자격으로 인수하기에는 버겁다고 할 정도로 덩치가 크다. 자산공사가 갖고 있는 대우종기의 지분 35.16%(5천9백만 주)를 현재 주가(주당 1만원)로 인수할 경우 6천억원에 가까운 돈이 든다.
대우종기의 방산 부문과 민수 부문에 대한 물적 분할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박 부회장이 단독으로 부담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박 부회장쪽에서도 이 점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 게다가 최근 대우종기의 주가가 크게 오른 것도 부담이다. 지난해 초만 해도 주당 2천8백원대였지만 현재는 1만원대로 1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오른 것. 지난 가을 인수 의사를 밝혔을 때와 비교해도 배 가까이 올랐다.
물론 박 부회장은 이번 인수도 팬택앤큐리텔 인수 때처럼 단독이 아닌 공동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팬택앤큐리텔의 공동인수 성공으로 재미를 본 KTB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KTB는 이번 입찰에 단독으로 인수의향서를 제출, 박 부회장과 손잡지는 않았다.
하지만 KTB에선 “아직 가격이나 컨소시엄 구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게 없다. 우리는 늘 열려있다”며 박 부회장과의 협력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현대큐리텔을 인수할 때도 KTB가 먼저 들어갔고, 나중에 KTB가 박 부회장에게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했다.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뒤 물밑에서 합종연횡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은 민수 부문보다는 방산 분야의 경쟁이 더 치열하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로템과 두산중공업, 삼영-통일중공업 컨소시엄 등이 대우종합기계의 방산부문에 대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