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원량 회장 | ||
고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은 다른 기업의 오너들처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전선그룹은 60년대까지만 해도 재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는 전통 재벌.
설원량 회장의 선친인 고 설경동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정주영 명예회장 등과 함께 국내 재계를 이끈 대표적 기업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와 다르게, 대한전선 그룹은 재계의 대표적인 불운의 기업으로도 통한다. 창업주인 고 설경동 회장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불화가 결국 그룹을 둘로 쪼개는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 지난 19일 설원량 회장 빈소 모습.설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앞으로의 후계구도와 사업 향배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의 사고 소식이 전해진 것은 그가 사망하기 하루 전인 지난 17일이었다. 대한전선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설 회장은 이날 오전 남산 순환로에 위치해 있는 남산체육관에 수영을 하기 위해 찾았다. 평소 설 회장은 아침에 골프연습장에 들리거나 골프장에 가는 등 운동하는 것을 즐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은 오전에 비가 온 탓에 설 회장은 골프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모처럼 수영장을 찾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수영을 하던 중 설 회장이 갑자기 물속으로 가라앉아 급히 인근에 위치한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뇌출혈로 인해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 이후 불과 하루 만에 고 설 회장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유족들은 고 설 회장의 빈소를 서울아산병원에 차리고 그룹 장을 치렀다. 갑작스런 죽음이다 보니 고 설 회장이 유서, 유언 등은 남길 겨를도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설 회장 일가는 속속 병원에 모이기 시작했다. 해외 출장길에 올랐던 고 설 회장의 동생인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도 급히 귀국했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시선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유족인 장남 윤석씨(연세대 경영학과 4년)와 차남 윤성씨(미국 와튼스쿨 1년)였다. 고 설 회장은 일찌감치 윤석, 윤성씨 등 두 아들에게 회사 경영권과 관련된 절차를 모두 마친 상황이어서 향후 이들이 대한전선그룹을 맡는 것이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대한전선그룹은 고 설 회장이 전체 지분의 32.44%, 설 회장의 두 아들이 지배하고 있는 삼양금속이 29.94%를 보유해 사실상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고 설 회장의 아들 형제가 아직 학생이어서 당장 그룹의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것. 이렇게 되자 설씨 일가에서는 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가족회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는 당분간 기존의 전문 경영인인 임종욱 대표이사와 김정훈 대표이사가 투톱체제로 경영을 맡아간다는 것.
그러나 대한전선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오너 중 한 명이 전면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전문경영인의 경영을 사실상 지휘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물망에 오른 사람은 고 설 회장의 미망인인 양귀애씨와 동생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 양씨는 몰락한 국제그룹의 창업주인 양태진 회장의 딸이고,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친누나. 그동안 그룹의 경영에 일체 간섭은 하지 않았지만, 사업가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에 이어, 최근 고 정몽헌 회장의 미망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등 여성 경영인의 진출이 활발하다는 점에서 양씨의 이름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이 당분간 대한전선그룹의 경영을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왔다는 것. 더욱이 설 회장의 경우 과거 대한전선그룹의 전무까지 맡는 등 전선그룹과 인연이 있는 데다, 현재 제당 회장으로 있다는 점에서 대한전선그룹의 ‘섭정’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
그렇지만 설 회장의 타계로 그동안 대한전선이 벌여놓은 사업 중 일부에 대해서는 계획상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진로그룹 인수 등도 상당기간 미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