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삼성 따라하기’가 눈길을 끌고 있다. | ||
이 때문에 황 회장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금융지주와 자회사인 우리은행은 물론 업계에서조차 화두로 떠오를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금융업계에는 요즘 ‘황심(心)을 읽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이런 와중에 황 회장이 지난 2일 당초의 예상을 깨고 파격적인 정기임원인사를 단행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전격 단행한 임원 인사의 내막을 들춰보면 그의 전 직장이었던 삼성의 인사시스템을 그대로 본받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전반적인 견해.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우리은행을 두고 ‘우리삼성’이 아니냐고 말할 정도다. 황 회장의 파격행보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지난 2일 정기임원인사가 단행되던 날, 우리은행은 발칵 뒤집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인사를 두고 각종 얘기들이 많았는데, 그 부분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인사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우리금융지주회사 역할의 대폭 강화였다. 그동안 지주회사는 자회사인 우리은행에 대한 인사와 관리가 주 업무였다. 지주회사의 전체 자산규모 1백29조원 중 우리은행이 차지하는 규모가 1백20조원에 이르다보니 사실상 지주회사가 자회사에 끌려 다녔던 것.
그러나 황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지주회사의 역할을 대폭 강화하고, 자회사의 역할을 ‘영업 위주’로 바꾸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황영기호’의 지주회사는 향후 자회사의 감사 및 인사권, 전략기획 등의 권한을 모두 갖게 됐다. 또 이 역할을 맡을 사람으로 주진형 전 삼성증권 상무를 스카우트했다. 주 전 상무는 황 회장과 함께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최측근 인사. 향후 주 전 상무는 금융지주와 은행의 전략을 총책임지는 중책을 맡게 됐다.
또 황 회장은 박승희 전 예금보험공사 이사를 지주회사의 재무담당 전무로 역시 스카우트하며 황 회장과 주 상무-박 전무에 이르는 트라이앵글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이와는 반대로 자회사인 은행에 대해서는 임기가 만료된 부행장들을 전원 교체하는 대신 각 부문의 본부장을 부행장 자리에 앉히는 등 내부인사를 발탁해 급격한 변화를 막았다.
이번 인사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은행은 영업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지주회사가 전략, 인사 등 큰 틀을 관장하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을 두고 ‘우리삼성’이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삼성은 구조조정본부(구조본)가 전략, 인사, 재무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채 각 계열사들을 관장하고 있다. 이번에 단행된 우리금융지주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
현재 국내 금융계에서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곳은 신한지주회사와 우리금융지주회사 두 곳이다. 신한지주의 경우 은행장의 선임 등에 관한 권한은 갖고 있지만 자회사의 정책, 인사, 전략 등에 관해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고 있지 않다. 기존의 우리금융지주 역시 은행장 선임 등 최소한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황 회장의 취임으로 바뀌게 된 것.
이뿐만 아니다. 벌써부터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기업마인드로의 변신’을 꾀하는 분위기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회사의 권한 확대에 대해 “모기업이니까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모기업’이라는 단어를 운운하는 것조차 황 회장의 취임과 더불어 달라진 일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 다른 은행의 한 관계자는 “요즘 우리은행 사람들을 만나면 모기업, 영업 역량 강화라는 등의 말을 많이 쓴다”며 “은행원이 아니라 일반 그룹의 회사원 마인드로 변한 것 같다”며 웃었다.
정기인사뿐 아니라 황 회장의 취임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적극적 M&A 의사. 황 회장은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지주회사의 틀을 온전히 갖추기 위해서는 은행뿐 아니라 보험, 증권사 등을 두루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벌써부터 국내의 M&A 대상이 될 만한 보험, 증권사 등을 적극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시장에 매물로 나온 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 LG투자증권 중 한 곳을 인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이들 3개 금융기관 중 한 곳을 인수하게 되면 우리금융그룹은 그야말로 국내 최강의 금융집단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업계는 황 회장의 행보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셋 중 한 곳을 인수해 은행과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할 것”이라며 “일단 현재로서는 2위권인 LG투자증권에 가장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금융은 최근 LG증권 인수를 위한 의향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M&A를 위해 사내에는 벌써 TF팀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황 회장의 이런 파격 행보를 탐탁지 않게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마찰을 빚는 곳은 우리은행 노조. 당초 우리은행 노조는 황 회장이 내정되자마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가 황 회장과의 면담 이후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 인사를 단행하면서 다시 돌아선 상황. 노조 관계자는 “한동안 황 회장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인사과정에서 청탁 등 외부 압력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황 회장의 노사관에 실망을 느꼈다”고 밝혔다. 현재 이성진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은 사퇴의사를 표명한 상황.
업계에서는 삼성의 ‘무노조’ 시스템에 젖어 있는 황 회장이 노조와 원활한 관계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