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에 열린 그리스전에서 박지성이 두 번째 골을 넣고 기성용과 포옹하며 골 뒤풀이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SBS |
# ‘베이징 기적’의 주인공 김경문 감독이 말하는 축구대표팀
2010남아공월드컵을 바라보는 두산 김경문 감독의 시선은 각별하다. 이유가 있다. 김 감독은 최근 월드컵을 소재로 한 두산그룹의 TV 광고에 모델로 등장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의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는 가운데 ‘푸른색’ 야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김 감독이 ‘붉은색’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의 엉덩이를 툭 치며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김 감독은 한국-그리스전을 “역대 한국 축구대표팀의 최고의 경기였다”고 평가하며 한국이 압승을 거둘 수밖에 없던 이유를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비교해 세 가지로 표현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알 힐랄), 김남일(톰 톰스크) 등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선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야구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이승엽(요미우리), 김동주(두산), 진갑용(삼성) 등 큰 대회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후배들을 이끌며 위기 때마다 침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승리 요인은 무엇일까.
“국제대회 경험은 적더라도 큰물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박주영(AS모나코), 차두리(프라이부르크), 기성용(셀틱) 등 대표팀의 젊은 선수 대부분이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세계 축구의 흐름을 잘 알고, 유럽 선수들의 장·단점 역시 꿰뚫고 있다. 올림픽 때 야구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야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승엽이 준결승 일본전 때 맹활약을 펼쳤고, 미국과 중남미 야구에 능통한 해외파 출신의 송승준이 대표팀에 많은 정보를 제공했기에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요인으로 김 감독은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의 ‘뚝심’을 꼽았다.
“큰 대회일수록 리더의 심지가 굵어야 한다. 주변에서 ‘왜 이 선수를 기용하느냐’ ‘그 작전 말고 이 작전을 써라’는 식으로 흔들 때마다 귀가 솔깃해선 안 된다.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처음 구상한 작전대로 밀어붙여야 후회가 없다. 그리스전에서 박주영이 사실상 원톱으로 나왔을 때 많은 이가 우려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리스 수비수를 여럿 달고 다니면서 다른 선수들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준 이는 다름 아닌 박주영이었다. 올림픽에서도 이승엽이 부진하자 많은 이가 그를 빼고 다른 선수를 집어넣으라고 했다. 그러나 나와 대표팀은 끝까지 이승엽을 믿었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결정적일 때마다 한방씩 쳐준 이승엽 덕분에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 ‘김성근+로이스터’의 장단점을 흡수한 허정무 감독
▲ 김성근, 김경문, 로이스터 |
김 감독은 야구, 축구 모두 훈련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회부터 9회까지 던지고, 치고, 달리고, 잡는 야구만큼이나 전·후반 90분을 뛰는 축구는 체력 소진이 심한 종목이다. 결국, 승부는 ‘누가 체력이 뛰어나느냐’의 싸움이다. 허정무 감독이 월드컵을 앞두고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했다는데 그 덕분에 우리 대표팀이 그리스전에서 성난 황소처럼 90분 내내 질주한 게 아닌가 싶다. SK가 정규시즌에서 1위를 달리는 것도 스프링캠프에서 다른 팀보다 몇 배는 가혹한 체력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이 9주간의 긴 합숙훈련을 통해 ‘강철 체력’을 만들어냈다면 6명의 유럽파를 포함해 무려 10명의 해외파가 뛰는 현 대표팀은 각자의 스케줄 때문에 5주간의 합숙훈련으로 만족해야 했다. 당연히 체력이 2002년보다 떨어질 터. 그러나 허 감독은 피지컬 트레이너와 상의해 과학적이고도 강도 높은 훈련으로 2002년만큼의 체력을 이끌어냈다.
그렇다고 허 감독이 강도 높은 훈련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허 감독은 그리스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려고 최대한 많은 휴식을 제공했다. 1차전이 열리기 전까지 이런 허 감독을 두고 일부 축구 관계자들은 “선수들이 훈련 부족으로 정상 컨디션을 유지할지 의문”이라며 우려했다. 그러나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하자 우려는 기우로 판명 났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지도자가 바로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팀을 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키고서도 비판을 받았다. “정규시즌과 똑같은 훈련량은 고사하고 되레 포스트 시즌에서 훈련량을 줄여 팀을 패배로 이끌었다”는 게 이유였다.
‘큰 대회일수록 합숙기간이 길고 훈련량도 많아야 한다’고 믿는 한국스포츠계에 “단기전에선 오히려 간단한 컨디션 체크와 충분한 휴식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관이 먹힐 리 만무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허 감독이 그리스전에 앞서 선수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줬고, 이것이 승리의 요인이 됐다는 지적에 “허 감독이 좋은 선례를 남겼다”며 “큰 대회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대회는 아니므로 항상심을 갖고 똑같은 훈련을 반복해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게 중요하다”고 자신의 야구관을 재차 강조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