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2월 청주 보살사에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전두환 대통령은 또 임기 중에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의 출범, 컬러TV 방송 실시, 교육자율화를 이룩하고 헌법에 의해 단임으로 청와대를 떠났다. 그때 “권력이란 자기 아들에게도 물려주기 싫은 것이지만 국민과의 약속으로 떠난다”라고 한 말은 개인적으로 제법 비장하게 느껴졌다. 자기가 창출을 도와준 정권이 자기보고 서울 밖에 잠깐만 나가 있으라고 해서 나갔다가 절에 2년이나 가 있었다는 말을 내게 한 적도 있었다. 기가 차다는 뜻이었다.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폴란드의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Aleksander Kwasniewski) 대통령을 만났더니 전직 대통령 2명을 구속한 것은 너무 했다는 염려를 표했고, 사마란치와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나러 갔을 때도 같은 우려를 표명하고 한국의 이미지에 좋지 않다고들 했다. 돌이켜 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세계의 주목 속에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국민의식도 달라지고 국제경쟁력도 키워지는 등 얼마간은 개선이 된 것 같다.
서울올림픽 준비과정을 보면 유치는 했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할 상태였다. 한국의 스포츠경기 경쟁력은 소수종목이 겨우 세계무대에 명함을 낼 정도였다.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민들이 직접 보는 앞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올리고도 성공적인 올림픽이었다고 할 수 없는 법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곧 체육부를 창설하고 올림픽 준비를 지원케 하면서 체육회, 선수촌, 경기단체, 선수들을 골고루 지원했다. 오늘날의 대한체육회는 아직 88올림픽 때 이루어놓은 토대 위에 있는, 즉 ‘88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연금제도도 그렇다.
재정이 빈약했던 때라 각 경기단체를 기업에 맡겼다. 현대는 수영, 양궁, 대우는 축구, 근대5종, 요트, LG는 조정, 카누, 동아건설은 탁구, 삼성은 레슬링, KAL은 테니스, 한전은 육상, 효성은 배구, 코오롱은 농구, 한보는 하키 등이었다.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도 이때 수영연맹 회장 겸 국제수영연맹 이사였다.
체육부는 문민정부 들어와서 없앴지만 이때는 한국체육의 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했다. 체육부는 노태우 이영호 이세기 조상호 김집으로 이어졌고, KOC는 조상호 정주영 노태우 김종하로 이어졌다. 태릉선수촌도 달라졌다. 전두환 대통령이 수시로 찾아오곤 했다. 밤중에 아침 7시까지 선수촌으로 나오라는 연락이 청와대 상황실에서 올 때가 많았다. 김종하는 또 핸드볼협회장을 겸직하면서 세계정상으로 키웠다.
얼마 전 전 전 대통령을 만났더니 “88 때는 정말 우리나라가 돈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후진약소국이었다. 그러나 86년 아시안게임 때부터 그 효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적은 중국과 거의 맞먹는 2위였다. 그때 전 대통령이 사안별로 선수들을 지원했다.
84년 LA올림픽 때 처음으로 금6개, 은5개, 동6개로 한국스포츠를 인식하게 만들기 시작했고 서울올림픽에서는 금12개, 은11개, 동10개로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4위로 뛰어올라 명실상부 스포츠 강국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것은 툭 하면 ‘신화’라고 하면서 이런 것은 절대로 ‘신화’라고 안 부른다.
체육부 장관에 조상호가 임명되기 직전에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조직위의 부위원장 2명 중 장관을 선임하려 해서 필자를 내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올림픽을 치르는 데는 필자가 없으면 안 된다고 박세직 조직위원장이 반대를 해 조상호가 됐다.
올림픽 유치 전에 이미 잠실주경기장은 건설이 시작된 상태였고, 모든 준비는 아시안게임 전에 완공하고 예행연습을 한다는 식으로 진행됐다. 하드웨어 구축에는 서울시(염보현, 김용래) 역할이 컸다. 또 경기장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와 운영요원의 훈련은 서울올림픽 조직위가 맡았다. 한국인 국제심판도 없을 때라 어려움이 많았다.
아시안게임 때 잠실주경기장 음향이 나쁜 것을 절실히 느낀 조직위원회는 음향을 고치려고 했지만 이미 지어진 것이라 보완하는 데 그쳤고, 예정에 없던 성화대도 급조하느라 높은 곳에 만들지 못했다. 체조 역도 테니스 수영장 등 차례로 그 나름대로 최신공법을 쓰고 조직위 건물(지금의 체육진흥공단, 체육회)도 짓고 경마장도 완공했다.
그때 서울의 스포츠시설이 다 완공된 것이다. 통행금지도 없어졌다. 올림픽도로 등 도시 인프라도 구축되었다. 한강고수부지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당시 중공) 항공기가 춘천에 불시착을 해서 중국과 문제가 생겼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1사단장 시절 모습(위). 1980년 9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이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가운데). 필자(오른쪽)가 미국에서 열렸던 제1회 월드게임이 끝난 뒤 귀국해 전두환 대통령을 예방했다. |
그 외에도 미얀마 국빈방문 중에 있었던 폭파사건으로 많은 각료들이 사망한 일, 김현희에 의한 KAL기 폭파사건, 사할린 근해 상공에서의 소련 미사일에 의한 KAL기 격추사건 등 수없이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에서도 장영자 사건 등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또 정치적으로도 5공화국이 끝나기 전에는 대통령선거를 직선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는 소련과 동구권의 참가가 절대 필요했다. 이는 북한의 방해도 막을 수 있는 즉, 서울올림픽의 안전한 진행과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84년 ANOC 총회 때부터 오기 시작한 소련은 참가를 고려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소련의 요구를 다 들어줄 때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소련은 모든 올림픽에 선박을 가지고 가서 선수들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통례였다. 물도 가지고 온다. 선수촌이나 지정호텔에 안 들어가는 요원은 전부 선박에서 묵는다. 서울에도 인천에 선박을 정박시키고 싶다고 요청이 왔다. 그런데 청와대가 허가를 안 해주었고 소련이 그럼 참가 안하겠다고 협박통보를 보내왔다. 할 수 없어 필자가 청와대로 갔다. 전 대통령이 소련이 배를 갖다놓고 첩보활동을 할 수 있으니 허가를 안 했다고 했다. 그래서 첩보활동과 도청 등은 인천까지 안 와도 위성으로 되고, 과거 올림픽의 전례가 있고 최고를 향하는 소련 팀의 컨디션 조절이 목적이니 선수단은 선수촌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배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자고 설명했다. “소련이 한국법과 IOC헌장을 지키겠다고 합니다”라고 강하게 설득했다. 그랬더니 전 대통령은 “우리 법과 IOC헌장을 지킨데?”라고 되물으며 그렇다고 하니 “그럼 허가하지” 하고 그 자리에서 전화를 들고 허가를 해주었다.
결국 소련과 동구권은 전부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게 됐고(소련은 88년 1월 10일에 참가발표) 서울올림픽은 위대한 올림픽으로 12년 만에 동서화합을 이룩하고 오랜만에 소련은 미국을 꺾고 우승했다. 서울올림픽은 우리 국민에게 ‘해냈다, 할 수 있다’는 긍지와 자신감을 갖고 세계를 향해 달리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올림픽 준비과정에 있어 간섭은 없었다. 그 덕에 타 권력기관에 의한 불필요한 간섭도 없었다. 전 대통령이 무조건 지원해준 덕에 서울올림픽을 평화시 인류의 최대종합제전으로, 또 동서냉전 종식의 기폭제가 될 만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사마란치는 걱정이 돼 매일 전화로 점검하곤 했다.
올림픽 준비에 큰 힘을 보태준 전두환 대통령은 1986년 9월 20일 아시안게임 개회식에 참석했다. 그날은 비가 왔고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수상도 자리를 빛냈다. 그러나 전 대통령은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회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미 전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퇴직한 상태였고 참석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우리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조직위의 입장을 생각해 전두환 전 대통령 측에서 먼저 “참석하지 않는다”는 통보가 왔다. 덕분에 당시 서울조직위는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올림픽을 유치한 분이 참석도 못하게 돼 죄송하다고 했더니 전 전 대통령은 “원래 이루어 놓은 사람과 누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 세상만사 아니냐?”고 하며 오히려 우리를 위안했다.
그가 한국 정치사에 남긴 발자국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뚜렷하게 구분이 된다. 하지만 필자는 스포츠인이라 무엇보다 우리나라 선수들을 각별히 아끼고 지원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도 많은 체육인들은 “스포츠는 전두환 정권 때가 가장 좋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 IOC수석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