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뉴월에 서리가…’ 왼쪽부터 원세훈 국정원장, 김준규 검찰총장, 백용호 국세청장, 강희락 경찰청장. 최근 이들 4대 권력기관장의 교체설이 나돌고 있다. |
“지방선거 이후 권력기관장들에 대한 전면적인 물갈이가 진행될 것이다.” 6·2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 5월 27일 기자와 만난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도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대통령 친인척 및 정권 실세들의 비리가 터져 정국 주도권을 빼앗긴 사례가 많았다”며 “MB는 지방 토착비리를 비롯한 집권 중후반기에 불거질 수 있는 각종 권력형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지방선거 이후 강력한 사정라인을 새롭게 구축할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실제로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는 당시 각종 여론조사 등을 감안할 때 한나라당이 압승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던 만큼 선거 이후 정국 운영 방안을 구상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일부 권력기관장 교체설과 맞물려 후임자 하마평이 나돌기까지 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당초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인 한나라당의 참패로 나오자 여권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은 선거 직후 사의를 표했고, 당·정·청이 전면 쇄신론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청와대는 선거로 표출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며 애써 의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전면 쇄신 압박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MB가 선거 후 정국 구상과 맞물려 청와대 개편과 개각을 은밀히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개각 카드는 이제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7·28 재보선 이전에 청와대 개편 작업을 마무리하고 개각은 재보선 이후에 진행하는 2단계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MB의 성격과 정치 스타일을 감안할 때 MB가 초강수 개각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쇄신론에 밀려 억지로 개각을 단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오히려 개각 정국을 적극 활용해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집권 중후반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할 승부카드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MB는 지방선거 전부터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빅4’ 권력기관장에 대한 교체 여부를 고민해 왔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도 MB의 이러한 복심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방선거 승패 여부를 떠나 MB는 집권 중후반을 대비해 일부 권력기관장의 교체를 의중에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는 교체 폭과 시기만 남아 있을 뿐 일부 권력기관장의 교체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교체 대상 권력기관장 및 그 후임자를 둘러싼 하마평이 은밀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6월 9일 기자와 만나 “MB가 ‘빅4’ 권력기관장 중 원세훈 국정원장과 백용호 국세청장을 각각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토해양부 장관으로 보직을 재배치하는 문제를 놓고 목하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청와대 참모진 개편과 개각 과정에서 원 원장과 백 청장은 어떤 식으로든 자리를 옮길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준규 검찰총장의 경우 ‘스폰서 검사’ 파문으로 검찰 조직과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스스로 용퇴하는 형식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며 “정치권에서 검찰의 기소독점권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상설특검제 및 공수처 신설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총장이 계속해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교체될 경우 그 후임자로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김경한 전 법무장관, 경찰 총수 출신인 허준영 코레일 사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토해양부 장관 발탁설이 나돌고 있는 백용호 청장이 교체될 경우 차기 국세청장은 내부 인사 중에서 낙점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4대 권력기관 중 국세청은 유독 내부 파워게임이 심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차기 청장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는 국세청 최고위 간부들이 백 청장 교체설을 접한 뒤 또다시 치열한 암투 구도를 연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의 경우 김 총장이 스스로 용퇴를 하지 않는 이상 교체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검찰이 전 방위적인 고강도 개혁 압박에 직면해 있고, 청와대 핵심부도 김 총장의 용퇴를 직간접적으로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용퇴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황이다.
김 총장이 용퇴할 경우 후임자는 물러난 김 총장의 동기나 선배 기수 등 외부 인사 중에서 발탁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천성관 후보자(22회)가 임채진 전 총장(19회)보다 네 기수나 낮아 고검장 및 검사장급 간부가 무려 11명이나 용퇴한 만큼 조직 안정 차원에서 이미 검찰을 떠난 김 총장의 선배나 동기 중에 후임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임 전 총장 후임으로 후배인 천 후보를 내정하자 검찰을 떠났던 김 총장(21회)을 MB가 다시 총장으로 발탁한 것도 검찰 조직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인사로 해석됐다.
강희락 경찰청장의 경우 유임론이 우세하다. 그러나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강 청장이 경북 성주 출신이라는 점에서 교체 대상인 권력기관장 후보자의 출신지에 따라 교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