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몰아쳤던 90년대 말. 한국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주식시장을 필두로 한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듯 연일 신저가를 기록하며 침몰하고 있었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달러값은 폭등했고, 기업들은 저마다 비용줄이기에 나섰다. 샐러리맨의 주머니는 얇아질 대로 얇아져 아예 텅텅 비어버렸다.
이런 경제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 불야성을 이루던 강남의 유흥업소였다. 룸살롱을 비롯한 스탠드바, 나이트클럽, 주점들은 태풍에 쓰러진 갈대처럼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러던 강남 유흥업계에 이상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98년 하반기부터였다. 아직 IMF의 긴 터널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강남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남 유흥업계의 대표적인 업태인 룸살롱 시장이 경제 전반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더 극심하게 흥청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잘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이 극명하게 갈리는 양극화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 현상에는 과거와 다른 큰 변화가 있었다. 룸살롱 고객들의 세대교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강남 룸살롱의 주역은 40~50대였다. 돈을 많이 번 중년 이상이거나 기업에 몸담고 있는 임원들이 강남 룸살롱의 주고객이었다.
그러나 IMF와 함께 이들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새로운 주역들은 20대였다. 예전 같으면 하룻밤에 수백만원의 술값이 드는 룸살롱을 쳐다보기도 힘들던 세대였다.
그러나 98년 후반부터 20대가 강남의 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새롭게 강남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20대들에게는 큰 특징이 있었다. 대부분 고학력이라는 점과 하룻밤 술값으로 수천만원을 거뜬히 지불할 만큼 손이 컸다는 점이었다. 이들 중에는 10만원권 수표를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아둔 채 술을 마시는 부류도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정체였다. 당시 강남의 주역으로 등장한 20대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전통 재벌가의 2세와 벤처회사를 설립해 돈방석에 올라 앉기 시작한 청년 사업가가 그들이었다.
특히 벤처 기업인 중에는 재벌가의 2세로 벤처회사 창업을 한 사람도 있었고, 재벌가의 2세는 아니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돈방석을 노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등장하면서 강남 룸살롱 거리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졌다. 새롭게 등장한 젊은 물주들이 단골로 찾는 곳은 소위 대박을 터트린 반면 기존의 구닥다리 업소는 문을 닫아야 했던 것이다.
98년 하반기 무렵 강남 룸살롱가에 때아닌 인테리어 바람이 분 것도 이런 현상 중 하나다. 당시 이들을 상대로 인테리어 장사를 한 곳 중에는 수십억원을 손에 쥔 사람도 많았다. 젊은이들의 코드에 맞춰 룸살롱의 내부 인테리어와 구성원을 완전히 바꾸어 주면서 몇 배 장사를 한 곳도 많았다.
그 이전까지 강남의 최대 물탕(물좋은 곳)이었던 D룸살롱, 신촌의 H룸살롱 등은 몰락한 반면 E룸살롱, N룸살롱 등은 신흥 대박업소로 급부상했다.
이즈음 강남 룸살롱업계에서는 일대 화제가 됐던 숨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른바 N룸살롱 사건이다.
이 사건의 내용은 N룸살롱의 단골 고객이었던 재벌가 2세 다섯 명이 한 아가씨를 두고 벌인 사랑의 쟁탈전이었다.
문제의 아가씨는 G양이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다. 그녀의 이력을 보면 정말 놀라웠다. 그녀는 부잣집 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국내에서 명문 대학을 다니다 1학년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했다. 말이 유학이지 어학연수를 2년 받았을 뿐이었다.
그후 한국에 돌아온 G양은 복학을 준비하던 중 D라는 마담에게 발탁돼 N룸살롱에서 일하게 됐다. 그녀의 인기는 폭발적이이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N룸살롱에는 단골이 줄을 이을 정도였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군단이 바로 재벌 2세 5인방이었다. G양을 찾은 5인방은 L, C, K, 또다른 C, 그리고 벤처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A씨 등이었다. 이들은 나이도 비슷했다.
당시 이들은 개업한 지 얼마 안된 N룸살롱을 아지트로 삼고 있었다. 5인방은 미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그 중 C씨와 K씨는 고등학교 동기동창 사이였다. 이들은 대부분 귀국 후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주식시장에서 떼돈을 벌고 있었다.
평소 함께 이 룸살롱을 드나들던 이들은 언제부턴가 따로따로 놀기 시작했다. 바로 G양 때문이었다. 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일요일 밤에 업소를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G양을 차지하기 위한 미묘한 경쟁의식이 싹트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물론 이 같은 라이벌 의식은 G양에게 억대의 스카우트비(속칭 마이킹)를 주고 관리하던 D마담의 역할이 빚어낸 것이기도 했다. D마담은 5인방을 상대로 G양의 속마음을 슬쩍 흘려 욕심을 부추겼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5인방 간에 주먹다짐으로 이어졌다. G양을 두고 가장 먼저 맞붙은 사람은 중견 재벌 2세인 K씨와 C씨였다. C씨에 비해 나이가 두 살 아래였던 K씨는 G양에 대해 좀더 적극적이었다. 그녀에게 거금을 제시하며 동거할 것을 요구했다. 평소 K씨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G양은 이를 수용할 뜻을 비쳤다. 그러나 D마담이 이 사실을 알고 C씨에게 알려주었다. D마담이 G양의 동태를 C씨에게 전해준 것은 G양이 N룸살롱을 떠날 경우 자칫 그녀에게 들인 억대의 돈을 회수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D마담으로부터 이 말을 전해들은 C씨는, K씨를 찾아가 주먹다짐을 했다. N룸살롱에서 벌어진 이 싸움은 두 사람 모두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을 정도로 격렬했다. 당시 이 자리에 있었던 술집 관계자의 말을 빌면 4평 정도의 룸이 온통 피와 깨진 술병조각 등으로 범벅이 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N룸살롱은 1주일 정도 문을 닫았다. 그러자 5인방 사이에 C씨와 K씨의 얘기가 나돌았고,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G양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결국 대판 싸움을 벌인 K씨와 C씨 등 5인방은 G양을 차지하기 위한 담판을 벌였다. 더이상 덮어두었다간 엉뚱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내린 결론은 3개월 동안 선의의 경쟁을 벌여 G양의 마음을 잡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5인방의 G양에 대한 애정공세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거금을 제의하기도 했고, 아파트와 차까지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 아예 술집을 차려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3개월 만에 G양을 차지한 사람은 L씨였다. 그는 당시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사람이었다. L씨는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그가 G양에게 제시한 것은 아파트 한 채였다. 다른 경쟁자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G양이 L씨를 택한 까닭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쨌든 이 사건은 당시 재벌 2세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화제거리였다. 이 일로 인해 재벌가 내부에서도 자식 단속에 부쩍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정선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