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SBS |
이정수는 그리스,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통쾌한 슛을 기록, 남아공 월드컵 득점랭킹 공동 2위에 오르며 ‘골 넣는 수비수’의 진가를 보여줬다. 이는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의 계보를 잇는 진기한 기록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 중앙 수비수로 나간 홍명보는 스페인전, 독일 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월드컵 해설자는 “홍명보는 한국의 기형적인 축구 시스템이 낳은 기형아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며 입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한 바 있다. 이정수는 홍명보와 동일하게 중앙 수비수란 위치에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단 한 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시켰다. 조별리그 1차전과 3차전, 각각 중요한 순간에서 골을 넣었단 점도 홍명보와 닮은꼴이다.
이정수가 뒤늦게 대표팀에 발탁된 점은 ‘대기만성형 스타’ 최진철과 비슷하다. 최진철은 1997년 8월 10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로 오랫동안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었다. 전북 현대 한 팀에서만 뛰며 자랑할 만한 커리어도 국가대표 경력도 없었던 그다. 그러나 2002년 거스 히딩크의 눈에 띄어 최종 수비수로 발탁됐고, 상대 공격의 맥을 짚는 커버 플레이, 붕대를 동여매고 뛰는 ‘투혼’을 보여주며 한국 수비의 귀감이 됐다. 이정수 역시 K리그 간판 수비수로 자리를 굳혔지만 태극마크와는 인연이 없었다. 처음 대표로 선발된 2005년 7월 동아시아연맹 선수권 때는 불의의 허벅지 부상으로 ‘본프레레호’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힘겨운 재활기간을 거쳐 완벽하게 부활했지만 2006년 ‘아드보카트호’ 승선에도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28세에 태극마크를 단 늦깍이 주전, 이정수는 2010년 남아공에서 화려하게 비상했다.
철저한 노력과 자기관리로 수비수로서 부족한 부분을 완벽히 채운 점은 ‘마스크맨’ 김태영을 빼닮았다. 김태영은 투박하고 거친 플레이로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템포의 강약을 조절하는 법을 습득함으로써 2002년 월드컵 당시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완벽하게 제압하며 명수비수로 거듭났다. 공격수로 안양 LG(현 FC서울)에 입단한 이정수는 프로 2년차에 수비수로 전향했다. ‘스피드는 있지만 날카로움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뛰어난 위치선정, 빠른 스피드, 제공권 경합에 능하단 장점을 살려 우리나라 수비라인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