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장충리틀야구장. 사진은 2007년 새롭게 재개장한 가운데 한국 대표팀이 일본 리틀야구 국가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벌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1억 명이요? 앞으로 28년이 더 지나보시오. 1억 명은 고사하고 1000만 명도 넘기 어려울 거요.” 5월 30일 ‘제6회 남양주 다산기 전국 리틀야구대회’ 왕중왕전에서 만난 한 원로야구인은 ‘프로야구 1억 명 시대가 도래했다’는 소릴 듣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리틀야구계의 잔칫날에 어째서 그가 풀죽은 목소리를 내는지 궁금했다. 이유는 자명했다.
“아이들의 ‘꿈의 구장’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꿈의 구장’은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 끝자락에 있는 장충리틀야구장을 말한다.
1972년 개장한 장충리틀야구장은 한국 리틀야구의 메카이자 산증인이다. ‘리틀야구’ 자체가 생소했던 1970년대 장충리틀야구장 건설을 주도한 이는 야구인도 정치인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고 육영수 여사였다. 육 여사는 1971년 어린이날 행사에서 만난 김종락 대한야구협회장으로부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야구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즉시 리틀야구장 건설을 지시했고, 1년 뒤 공사가 완료되자 기념 화환을 보냈다.
장충리틀야구장이 효과를 나타낸 건 1984년이었다. 장충리틀야구장에서 꿈을 키운 한국 리틀야구 대표선수들이 그해 열린 세계리틀야구선수권대회에서 타이완, 일본, 미국 등 세계 강호를 물리치고 사상 첫 우승컵을 거머쥔 것이다. 전국에 리틀야구장이라곤 장충리틀야구장이 전무했던 시절이라, 세계대회 우승은 일종의 ‘기적’으로 통했다.
그즈음 장충리틀야구장을 밟은 대표적인 이가 박찬호(뉴욕 양키스)였다. 2000년부터 고향 공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박찬호기 리틀야구대회’를 개최하는 그는 공주 중동초등학교 재학 당시 처음 장충리틀야구장을 밟았다. 그곳에서 박찬호는 ‘제2의 선동열’을 꿈꿨고 이윽고 그 꿈을 이뤘다. 박찬호 뒤로도 장충리틀야구장이 배출한 스타는 이승엽(요미우리), 조인성(LG), 홍성흔(롯데), 정근우(SK), 김주찬(롯데), 윤석민(KIA) 등 셀 수 없이 많다.
‘한국리틀야구의 메카’ 장충리틀야구장에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온 건 개장 20주년이 되던 해였다. 1992년 서울시는 장충공원 정비를 내세워 장충리틀야구장 철거를 계획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3년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당시 야구계는 “대체구장 논의 없는 일방적 철거는 무효”라며 극렬하게 맞섰고, 마땅한 대안이 없던 서울시는 철거 계획을 원점으로 돌렸다.
2007년 스포츠토토 지원금 등 10억 원을 들여 최고급 인조잔디를 깔며 전체 구장을 개축했을 때만 해도 장충리틀야구장은 영원히 ‘리틀야구의 메카’로 남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가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하나로 장충리틀야구장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두 번째 위기가 닥쳤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오세훈 시장의 시정 목표인 ‘디자인 서울’의 기본 전략과 연계해 남산의 경관을 보호하고 효율적인 이용 방안을 모색하자는 게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취지”라며 “녹지와 산책로를 만들어 남산의 자연을 복원한다는 취지에 맞추려면 부득이 장충단 공원 옆에 자리 잡은 장충리틀야구장을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서울시의 방침대로 장충리틀야구장이 철거된다면 2007년 12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 동대문야구장에 이어 한국 야구사를 대표하는 구장이 또 다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한영관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은 “미국에선 야구장이 ‘볼파크(Ballpark)’ 즉 공원이고, 야구도 스포츠를 넘어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어째서 서울시가 생태공원을 짓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아이들의 야구공원인 장충리틀야구장을 철거하겠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회장은 지난해 연말부터 정·관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장충리틀야구장 철거계획의 부당성을 알렸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철거를 강행하려 하자 장충리틀야구장 앞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를 계획하기도 했다. 대한야구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가 팔짱을 낀 채로 방관하는 가운데 한 회장이 이처럼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6년 20개 남짓했던 리틀야구팀이 올해 110개로 불어나며 가뜩이나 부족한 리틀야구장이 더 부족해졌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쳐 리틀야구장이라고 해봤자 장충리틀야구장과 경기도 남양주 리틀야구장 둘뿐이다. 대회라도 치르려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서울 장충동과 남양주를 오가며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만약 장충리틀야구장이 사라지면 그건 리틀야구의 종언과 함께 한국프로야구의 미래가 끊기는 걸 의미한다.”
한 회장은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국가적 사업임을 잘 안다. 그래서 무턱대고 반대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환경을 복원하려는 나라의 계획과 어린이들의 꿈이 함께 공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체야구장 건설이다.” 한 회장이 내놓은 솔로몬의 지혜다.
애초 리틀야구연맹은 서울시에 장충리틀야구장을 철거하는 대가로 대체 리틀야구장 3면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대체구장 건설에 난색을 나타내다 지난 3월 2012년까지 강동구 고덕동 인근에 대체구장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리틀야구연맹은 동대문야구장 철거 당시 서울시가 6개 대체구장을 건설한 예를 들어 고덕동 대체구장에 야구장 1면을 추가로 조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단 서울시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서울시 푸른도시국 고위 인사는 5월 말 한 회장과 만나 “고덕동 대체구장 부지에 리틀야구장 2면을 짓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틀야구계의 대체구장 2면 요구를 서울시가 수용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제 장충리틀야구장 철거는 확실해졌다.
한때 구장 존폐 논란이 벌어졌던 일본 효고현의 고시엔구장의 한편엔 ‘아이들이 뛰노는 이곳이 자연이고 천국’이란 팻말이 있다. 오래된 야구장을 허물고 새로운 야구장을 짓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에게 자연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