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이구택 포스코 회장 | ||
현대차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이고, 포스코는 철강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현대차와 포스코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현대차와 포스코가 맞붙은 곳은 한보철강의 인수를 놓고서다. 한보철강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이끌던 기업으로 부도가 난 이후 벌써 네 번째 매각 시도를 맞고 있다.
한보철강은 한때 권철현씨가 이끌던 AK캐피탈에 팔리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고 채권단의 ‘미완의 과제’로 전락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보철강 기업 자체의 매력요인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상황이라는 게 증권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공장이 풀가동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생산규모와 기존의 입지적 파워에서 볼 때 중국의 철강수요가 늘고 있는 요즘 한보철강의 메리트가 만만치 않다는 것.
한보철강은 A지구와 B지구로 나뉘어 있는데, B지구의 경우 아직까지 공장이 완공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A지구에서는 연간 1백20만t 정도의 철근이 생산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연간 1백20만t의 생산량은 국내 철근 생산 규모의 11%가량에 해당되는 물량으로, INI스틸(생산량 32%), 동국제강(18%), 한국철강(12%)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누가 한보철강을 인수하느냐에 따라 업계의 판도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아직 가동이 되지 않고 있는 한보철강 B지구의 경우 자동차용 강판을 만드는 원료를 생산할 예정이어서 현대차와 포스코로서는 여간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두 그룹 모두 한보철강이 꼭 필요해서 인수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곳으로 뺏길 경우 타격이 크기 때문에 꼭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현재의 상황을 정리했다. 결국 내가 가져오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남 주기에는 아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결국 한보철강은 인수의사를 밝힌 현대차 컨소시엄, 포스코 컨소시엄, 한 차례 실패한 AK캐피탈의 한판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중 현대차와 포스코 컨소시엄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현대차와 포스코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한보철강 인수에 대해 조심스런 분위기.
현대차 관계자는 “인수할 의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황은 좀 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 한보철강은 부도 이후 네 번째 매각시도에 들어간 상태다. | ||
2년 전 두 그룹에서 일어났던 자존심 대결이 그대로 재현되는 구도이다 보니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지난 2001년 두 그룹은 자동차의 주요부품인 핫코일을 둘러싸고 포스코가 공급 중단을 선언해 시비가 붙었다. 당시 이 문제는 두 그룹의 수장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유상부 포스코 회장의 신경전으로까지 번져 최악의 고비를 맞았다.
결국 공정위가 현대차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이후 현대차나 포스코가 서로를 보는 눈이 고울 리는 없는 상황.
이번에 한보철강 인수에 뛰어든 현대차와 포스코의 전력은 얼마나 될까.
현대차는 현재 그룹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INI스틸(옛 인천제철)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포스코는 포스코-동국제강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그러나 이들이 각각 군침을 흘리고 있는 대상은 다르다.
현대하이스코와 포스코는 핫코일을 생산하는 열연공장(B지구)에 관심이 있고, INI스틸과 동국제강은 고철을 원료로 철근을 만들어내는 봉강공장(A지구)에만 관심이 있다.
현재로서는 더 다급한 쪽은 현대차그룹으로 보인다.
현재 자동차용 강판시장에서 1위는 현대하이스코이고, 2위는 포스코. 현대하이스코는 현재 연간 1백20만t, 포스코는 연간 70만t을 생산하고 있으나, 한보철강의 열연공장은 연간 1백80만t까지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대차로서는 만약 포스코가 한보철강을 인수할 경우, 자동차용 강판에 대해 사실상 종속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
특히 핫코일 문제로 한 번 홍역을 치른 현대하이스코는 포스코에만큼은 뺏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가 하면 한보철강이 노리는 A지구의 경우도 INI스틸이 인수하느냐 동국제강이 인수하느냐에 따라 업계의 1위가 달라지는 상황이어서 업계 관계자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보철강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큰 난제가 하나 있다. 인수대금은 물론, 한보철강의 B지구 등 공장가동을 위해서 향후 투입돼야 할 자금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당초 권철현 전 연합철강 회장이 이끌던 AK캐피탈이 한보철강 인수에서 실패한 이유도 자금력 부족 때문이었다. 때문에 채권단에서는 이번에 인수자 선정에 자금력을 최우선으로 하고, 업계의 시너지 효과 등도 살핀다는 방침이다.
한보철강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차 컨소시엄과 포스코 컨소시엄이 입찰의향을 밝혔다”며 “어느 기업이 인수를 하든 철강업계의 판도변화가 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구택 포스코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한보철강 인수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특히 정몽구 회장의 경우 인천제철을 기반으로 한보철강을 더할 경우 장기적으로 현대차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연 이번 한보철강 인수에서 현대차그룹과 포스코 중 어느 곳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 아니면 제3자가 한보철강의 새주인이 될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